[뉴스엔뷰] 윤석열 대통령은 31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대 주 69시간 근로시간 제도개편 방안에 대해 보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MZ 세대를 포함한 다수 근로자의 거센 저항과 정치권의 반발에 한 발 물러나며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발언으로 시작해 직접 진두지휘해온 노동정책 1호 공약으로 '69시간'을 밀어붙인 것인데 이제 와서 마치 남 예기하듯 재검토를 지시하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다.

52시간 노동이 법제화된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초과 노동과 공짜 야근에 시달리며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실정인데 연장근로 후 긴 휴가를 보장한다는 말은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에선 현실성이 없다.

정부는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 푹 쉬자'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노동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탁상개편안'이라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바쁠 때 더 일하고 한가할 때 몰아서 휴가를 쓰라는 것인데 이게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휴가 같은 것이 아니면 며칠씩 휴가 내는 것이 아직까지는 눈치 보이는 것을 떠나 결국 조직을 해치는 철없는 행동으로 비처지는게 현실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시스템 개선을 통해서 실질적인 근무 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역발상이다.

외국의 주요 외신들도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연장에 대해 "한국인들은 지금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오래 일한다"며 주목하고 있다.

특히 호주 ABC 방송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1년에 평균 1915시간을 일해 OECD 평균(1716시간)을 크게 넘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를 소개하며 '과로사''Kwarosa'라고 발음 그대로 표기 이를 연관지어 애둘러 비판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노동부에 노동시간 유연화 '69시간' 재검토를 비롯,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며 슬그머니 자신의 지시에 따른 책임회피성 '뒷북'을 치고 나섰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지난 15일 오전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입법예고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 법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청년들이 원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개혁'을 추진한다고 주장해놓고 이제야 청년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

특히 윤 대통령은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강조했다는데, 앞서 지난 6일 법안 발표 당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MZ세대는 권리의식이 굉장히 높아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하기 때문에 근로시간 연장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들에게 '69시간' 변경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가능성은 다 열어놓고 가는 것"이라며 물러섰다.

이어 대통령실은 16일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거듭 발을 빼고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의 보완 검토 지시는 사실상 MZ세대가 이번 근로시간 제도개편 방안에 반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노동현실을 무시한 일방적이고 독단 지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법안을 추진한 고용노동부는 각계의 반대에 부딪치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입장이 머쓱하게 됐다.

민주당은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정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윤 정부는 과로사 조장법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진정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기 바란다"면서 "4.5일제 혹은 주 4일제가 노동의 미래"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나온 뒤에 "하지 말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재검토 지시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가장 지금 중요한 것은 주당 52시간 이냐, 52시간 플러스알파냐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노동 약자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는 예를 들어서 포괄임금"이라며 "일은 시키고 수당은 안 주는 것 아니냐"고 물타기를 했다.

그리고 "말은 한 달간 휴가를 보내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직장다니는 현실에서 그게 과연 가능한거냐, 이런 부분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것도 같이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17시간)보다 311시간 길다.

이번 개편안은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개악으로 백지화돼야 한다. 노동자는 돌리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정부가 '세대 갈라치기'로 포퓰리즘에 기대 여론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 문제는 대통령이 지시한 '재검토해 보완' 하는 미봉책 수준에 그칠 사안이 아니라 이제라도 철회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자주 강조한 "법과 원칙 바로서는 나라 만들겠다"는 말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지 말고, 오히려 기존의 노동법상 법제화된 주당 52시간과 최저임금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정착시키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칼럼 니스트 배상익 대기자
칼럼 니스트 배상익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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