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돈을 딴 ‘쾌감’ 혹은 원금 ‘만회’
고민·불안에서 탈출, 일시적 만족감이 ‘습관’
스마트폰 발달, 10대들도 도박 사이트 ‘중독’
가족, 질책이나 비난보다 여가생활 함께 해야

[뉴스엔뷰] “학교에서 짠돌이라 불릴 만큼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도박에 딱 한 번 손을 댔는데 그 쾌감을 잊지 못해 이번 달에만 벌써 10만원을 잃었어요. 끊고 싶은데 너무 하고 싶어요. 어떡하죠?”

“남편이 도박에 빠져 벗어나질 못해요. 저에게 걸린 횟수만 몇 번인지 몰라요. 남편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위해 한 방을 노리겠다는 핑계만 댑니다. 시어머니 명의로 카드론까지 받은 상황이에요. 이혼밖에 답이 없겠죠?”

“우울증은 약이라도 있죠. 도박중독은 약도 없어요. 사방에서 유혹이 쏟아지는데 그걸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해요.”

도박중독 치료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람들의 고민글이다. 도박은 단순한 호기심, 놀이로 인한 즐거움과 돈을 땄다는 쾌감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잃은 돈을 되찾아 돈을 벌어야겠다는 비합리적인 사고에 도달하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도박에 관심이 없더라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각종 도박 사이트로의 연결이 쉽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최근 5년간 도박중독으로 치료받은 환자 중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0~20대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사진/뉴시스
최근 5년간 도박중독으로 치료받은 환자 중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0~20대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사진/뉴시스

◇ 도박에 빠진 MZ 세대…최근 5년간 225.6% 증가

도박은 놀이와 다르다. 놀이의 개념으로 시작하지만, 도박에 빠지면 이미 놀이의 기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도박은 ‘그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에 돈이나 가치 있는 것을 거는 모든 행위’라고 정의했다. 만약 기원에서 바둑을 두면서 돈을 건다면 이것도 도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쉽게 큰돈을 따고자 하는 욕구, 스릴과 흥분, 짜릿한 쾌감 등의 즐거움,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기대와 환상이 모두 도박중독으로 가는 길이다.

도박중독이 되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의 한계를 넘어서 자제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도박을 하게 된다. 흔히 도박중독 환자라고 하면 중·장년층이 하우스에 가서 화투를 하거나, 성인 오락실과 카지노를 들락날락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PC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불법도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돈을 걸고 도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도박중독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83.7% 늘었다. 지역별로 살펴봐도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울산, 대전, 경기 등 17개 광역시 모두 도박중독 환자 수가 5년 전보다 증가했다. 

눈에 띄는 점은 도박중독으로 치료받은 환자 중 가장 많이 증가한 연령대가 10~20대라는 점이다. 2017년만 하더라도 39명이었던 10대 도박중독 환자 수가 2021년 127명으로 225.6% 증가했고, 20대 도박중독 환자는 349명에서 754명으로 116% 증가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발간한 ‘2022년 청소년 도박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처음 도박을 경험한 나이는 11.3세였다. 재학 중 청소년 도박 문제 위험집단은 4.8%로 나타났는데, 이중 문제군(Red)이 0.9%로 문제군의 1.1%는 남학생, 0.7%는 여학생이었다. 참고로 위험군은 경미한 수준에서 중증도 수준의 조절 실패를 겪는 집단이며, 문제군은 심각한 수준의 조절 실패를 겪는 집단을 뜻한다. 

청소년의 대다수가 경험하는 첫 도박의 종류는 단순 돈내기 게임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25.8%가 돈내기 경험이 있다고 대답할 정도로 흔하다. 오프라인에서는 ‘뽑기 게임(77.1%)’, ‘내기 게임(26.6%)’, ‘스포츠 경기 내기(23.7%)’, ‘카드나 화투(16.9%)’를 많이 했다. 온라인에서는 사다리 게임, 달팽이 등 ‘온라인 그 외 내기 게임(12.9%)’이 가장 많았고 ‘온라인 카드 및 화투(7.8%)’, ‘온라인 카지노(3.5%)’ 순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돈내기 게임에 사용한 금액은 평균 2만7142원이며, 잃은 금액은 평균 7554원, 빌린 금액은 평균 3289원이다. 하지만, 문제군이 잃은 금액은 7만5216원으로 위험군(1만3948원)과 비문제군(3538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빌린 금액 역시 문제군은 평균 5만7863원으로 위험군(3749원)과 비문제군(924원)보다 훨씬 높았다.

문제군은 돈내기 게임에 참여한 시간대 역시 가리지 않았다. 59.2%의 학생들이 주로 주말과 공휴일에 돈내기 게임에 참여했고, 하교 후 집에 와서 쉴 때(33.1%), 학교 후 집에 가기 전에(21.3%) 게임을 했다고 대답했지만, 문제군은 수업 시간과 등교 시간에도 게임을 했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불법 도박 사이트 모습. 도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박자 및 가족·지인들은 국번없이 1336으로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진/뉴시스
불법 도박 사이트 모습. 도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박자 및 가족·지인들은 국번없이 1336으로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진/뉴시스

◇ 스마트폰의 발달로 도박 접근성 쉬워져…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아

전문가들은 도박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이유로 온라인의 발달을 꼽았다. 제주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요인 중 하나”라며 “청소년도 불법 사설 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온라인에서 불법도박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성인인증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 접근하기에 쉽고, 중독성도 강하다. 심지어 사다리 게임, 달팽이 등 익살스럽고 귀여운 디자인에 현혹당하는 청소년도 많다. 한 청소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친구 따라서 게임을 했는데, 온라인 불법도박인 줄 모르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주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관계자는 “청소년은 또래문화가 강하다 보니 친구들과 만나서 도박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성인의 경우에는 도박에 빠지는 이유가 좀 더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이 관계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박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고, 도박하면서 느끼는 쾌락이나 스릴감은 물론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도박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 재정적, 사회적 문제 야기…혼자 끊기 어려워

도박은 중독으로 가면 절대 혼자 끊을 수 없다. 아무리 끊고 싶어 자제하더라도 인터넷에 팝업으로 뜨는 각종 광고와 주변의 유혹은 그동안 잃은 원금을 생각나게 하고, 도박할 때의 짜릿한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전문가들은 도박에 중독되면 자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고, 삶의 중심이 도박으로 바뀌게 된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각성이나 흥분, 본전 만회를 위해 도박에 거는 베팅 금액이 증가하고, 도박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제주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관계자는 “도박을 끊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스스로 조절 능력을 상실해 계속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중독이라 한다”며 “중독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면 원금을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만 하는 등 비합리적인 사고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도박중독은 환자 혼자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도박행위를 주변에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경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은 스스로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국 14곳에 도박문제관리센터가 있고, 시별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언제든지 상담이 가능하다.

더불어 불법도박과 합법적인 게임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합법적인 게임이라 하더라도 중독의 위험은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사행산업은 한 경기당 베팅금액과 운영일, 시간 등이 법률로 정해져 있다. 종류는 ▲복권(복권위원회) ▲카지노(강원랜드) ▲체육진흥투표권(국민체육진흥공단) ▲소싸움(청도공영사업공사) ▲경마(한국마사회) ▲경정(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국민체육진흥공단, 창원경륜공단) 등 7가지다.

이외에는 모두 불법도박이다. 불법도박은 베팅액수의 제한과 장소, 시간의 제약이 없어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달팽이, 사다리, 로하이, 파워볼, 소셜그래프 등 불법도박은 중독성이 강해 주의해야 한다. 만약 불법도박을 하다 적발되는 경우에는 특별법에 따라 형법상의 도박죄보다 엄중하게 다뤄진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에 대한 예방 교육을 제대로 실행하고, 중독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재활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 단도박 모임과 가족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이와 함께 가족의 도움도 중요하다. 광주서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따르면, 가족의 지나친 비난이나 집착, 질책은 환자의 도박 행동을 더 강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도박을 안 하는 시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에 빠졌던 사람들은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자였던 가족이 도박을 안 한다고 좋아하기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같이 의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도박중독 진단기준이다. 지난 12개월 동안 4개 이상 해당하면 치료받기를 권한다.

1. 원하는 흥분을 얻기 위해 액수를 늘리며 도박했다.
2. 도박을 줄이거나, 안 하면 안절부절못하고 과민해진다.
3. 도박을 조절하려는 노력이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4. 도박에 집착한다.
5. 괴로울 때 도박한다.
6. 도박으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음날 다시 도박한다.
7. 도박한 사실을 숨겼다.
8. 도박으로 인해 일자리, 교육적인 기회를 잃을 위험에 빠졌다.
9. 도박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 조달을 남에게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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