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 특성과 기후 영향으로 불가항력적 확산
‘양간지풍’…시속 136km의 자동차와 같은 속도
소나무 군락 26.6%…발화점 낮고, 휘발성 강해
‘산불’, 무조건 대피해야…자신의 안전 확보 우선

[뉴스엔뷰]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왔어.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만 들고나왔어.”

얼마 전, 충남 홍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잿더미로 변해버린 텃밭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1년 내내 지은 농사는 물론, 앞으로 살길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많은 재산 피해와 이재민을 발생시킨 산불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산불이 발생했다. 11일 오전 8시 22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해안가까지 확산했다. 인근 주민은 대피소로 피했지만, 결국 전소된 한 펜션에서 사망자가 나와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샀다. 전문가들은 산불은 한 번 발생하면 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에 항상 매스컴에 촉각을 세우고 당국의 조치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 강릉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에 옮겨 붙어 안현동까지 피해를 입혔다. 사진은 안현동의 한 민가와 펜션이 전소된 모습. 사진/뉴시스
강원 강릉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에 옮겨 붙어 안현동까지 피해를 입혔다. 사진은 안현동의 한 민가와 펜션이 전소된 모습. 사진/뉴시스

◇ ‘부주의’로 인한 실화 대다수지만, 최근‘시설’에 의한 산불 ‘증가’

최근 산불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막대한 재산과 인명피해를 낳고 있다. 이달 초에는 충남 홍성군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나 주택 59채, 축사 20동, 창고 24동, 비닐하우스 48동, 컨테이너 등 시설 21동, 농기계 35대, 수도시설 4개, 태양광 1개 등 축구장 1300개 면적인 965ha 이상을 태우고 1158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이런 크고 작은 산불만 올해 들어 약 400건이 넘게 발생했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매해 481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상반기가 지나기도 전에 이미 평균 수치를 넘은 것이다. 

산불의 원인은 부주의로 인한 실화가 대부분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2~2021년 입산자 실화로 인한 산불이 34%, 논·밭두렁 소각(14%), 쓰레기 소각(13%), 담뱃불 실화(5%), 건축물 화재(5%), 성묘객 실화(3%), 어린이 불장난(1%), 기타로 인한 산불이 25%를 차지했다. 계절별로 살펴보면, 278건(58%)의 산불이 봄에 발생해 가장 많았고, 겨울이 24%, 여름 10%, 가을이 8%로 집계됐다.   

이번에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역적 특성과 기후적인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바람의 강도가 태풍급으로 세져 크게 확산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학과장 한상필 교수는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양간지풍,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양강지풍과 같은 지역 바람과 더불어 기후적인 요인까지 더해져 화재가 크게 번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양간지풍(襄杆之風) 혹은 양강지풍(襄江之風)이란 봄철 이동성 고기압에 의해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서풍으로 고온건조하고 풍속이 빠르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건조하기 쉬운 봄철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대형화되는 이유 역시 이런 지역 바람에 의한 원인이 많다. 이에 불을 몰고 온다는 의미로 화풍(火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삽시간에 번진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5년 낙산사를 불태운 고성군 산불과 2019년 고성과 속초 사이에 발생한 산불이 있다. 특히 이번 산불은 강풍에 나무가 전깃줄을 덮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원인 규명조차 애매해졌다. 

한상필 교수는 “이번 산불은 바람에 의해 전기와 관련된 변전설비, 전력공급 설비 쪽에서 발생한 화재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요소라 볼 수 없다”라며 “과거에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 화재가 잦았지만, 최근에는 이처럼 시설에 의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따라서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다”라며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 시설을 점검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강원 강릉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불어와 안현동 일대 펜션 밀집지역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뉴시스
강원 강릉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불어와 안현동 일대 펜션 밀집지역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뉴시스

◇ 화재 진압마저 무력화한 강풍…‘자기 안전 확보’ 중요

이번 강릉 산불의 쟁점은 바람이었다. 강릉시 연곡면의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27.7m에 달했고, 산불 현장의 평균풍속은 초속 15m, 순간풍속은 초속 30m로 센 바람이 불었다. 초속 30m의 강풍은 마치 고속도로에서 136km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다.

강풍은 8000L급의 초대형 진화 헬기조차 이륙하지 못하게 해 진화를 더디게 만들었고 소방대원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무려 26배 이상 빨라진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학과장 한상필 교수는 “이론상으로는 목재에 수분 함유량이 15% 이상이면 타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비가 흥건히 오지 않는 이상 산불 진화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라며 “게다가 양간지풍은 굉장히 빠른 강풍이기 때문에 산불은 순식간에 번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후적인 영향과 더불어 강원도가 산불에 취약한 이유는 주로 소나무 군락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숲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국토의 42%다. 이 중 소나무 군락이 26.6%로 가장 넓은 면적을 구성하고 있다. 

소나무는 침엽수로 활엽수보다 발화점이 낮고, 솔방울과 송진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소나무 군락지에서 한번 발생한 산불은 진화가 매우 어렵다. 소나무 군락의 대부분은 태백산맥을 따라 강원도와 경북 북부에 분포돼 있는데, 바로 이번에 발생한 산불 지역이다. 

산불은 빠른 진화가 생명이다. 또한, 민가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풍향이나 풍속 등 상세한 기상정보가 중요하다. 산불이 나면 기상청과 산림청을 비롯한 관계기관에서 제공하는 기상정보, 대피 방송 등을 귀담아듣고 따라야 한다.

한상필 교수는 “산불은 항상 돌발적으로 발생하고, 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에 자기 안전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라며 “산불이 난 인근의 주민들은 매스컴을 통해 동향을 살피고, 문자메시지를 주시해서 자기가 있는 지역의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작년 산림보호법 시행령이 개정됐지만, 산불 예방을 위해 좀 더 처벌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참고로, 산림으로부터 100m 이내 소각행위를 한 자는 100만원의 과태료, 불을 피우다 산물이 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산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화기 및 인화물질을 소지한 자는 1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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