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모 제빵 회사처럼 기계에 끼이고, 건설현장 추락 등
선진국 대비 ‘산재사고 사망 만인율’ 3배 ‘후진국형’ 사고
정부, 소기업 지원 절실…제도적·문화적 안전의식 정착돼야

[뉴스엔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각종 통계에서 범죄율이 낮은 국가로 상위권에 랭크돼 있으며 CCTV의 설치 효율이 높아 범죄자 검거율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노동 현장은 그러지 못하다. 공사장 추락사, 기계 끼임 사고, 열차 충돌 사고 등 매년 비슷한 형태의 노동자 안전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기 안성시의 한 저온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이 내려앉아 작업자 5명이 추락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경기 안성시의 한 저온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이 내려앉아 작업자 5명이 추락했다. 사진/뉴시스

◇ 기업 규모 작을수록 사고 잦고, ‘중대재해처벌법’ 의무 사항 몰라

# 지난 14일 부산의 한 공장 신축 공사장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60대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1일에는 경기 안성시 원곡면에 위치한 KY로지스 저온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의 거푸집이 무너져 내려 노동자 56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 코레일에서는 올해 중대재해 사망사고만 4번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지난 6일 경기 의왕시 오봉역 구내에서 시멘트 벌크 화물 열차 관련 작업을 하던 30대 직원이 열차에 치여 숨졌고, 지난 930일에는 경기 고양시 정발산역에서 스크린도어 부품 교체를 하던 근로자가 열차에 부딪혀 치료받다 숨졌다.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올 1월부터 적용되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선 하루 평균 1.8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23분기 기준 사망사고는 483건이 발생했고, 사망자 수는 510명에 달한다. 업종별 사고사망자 발생 비중은 건설업이 50%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28%), 기타업종(22%)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작업 중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는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노동부 통계를 보더라도 사고 빈도는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9월까지 50인 미만의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각각 169, 69건의 사고가 발생했지만, 50인 이상의 건설업과 제조업에서는 74, 67건이 일어났다. 사고유형은 떨어짐이 199건으로 가장 많았고, 끼임 사고가 78건이 발생해 전체 사망사고 유형의 55.3%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소규모의 기업에서는 안전에 대한 문제를 작업장과 근로자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지만, 노동환경 개선에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운 5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제도의 테두리 바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50인 이상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대다수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을 잘 모를뿐더러, 안다고 하더라도 경영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 504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81.3%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상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 사항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50.6%에 그쳤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의무사항을 잘 모른다고 답했는데, 50~99인 기업의 경우에는 60.4%잘 모른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의 35.1%의무 사항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안전보건 전문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실제로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이 있다고 답한 곳은 31.9%에 그쳤다.

◇ 무리한 인원 감축·예산과 맞바꾼 작업환경… ‘후진국형 안전사고’ 원인 

기존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노동환경 안전성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전문가들은 국내 노동환경은 취약하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자 만 명당 사고사를 나타내는 수치인 산재사고 사망 만인율에 따르면, 기존 선진국에 비해 약 3 가량 높다. 사고유형을 보더라도 건설 현장 추락이나 얼마 전 발생한 모 제빵회사의 사고처럼 제조업의 끼임 사고 같은 후진적 형태의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일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오봉역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철도노조 측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오봉역은 평소 화물열차를 조성하기 위해 차량을 연결하고 분리하는 곳으로 통상 3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해 왔지만, 사고 당시에는 2명이 조를 이뤄 작업했다.

이유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에 따라 42교대를 시범으로 운영 중이었고, 이에 따른 필요 인력 증원을 요청했지만, 국토부에서 받아들여 주지 않아 2명이 일하다 참사를 겪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김선욱 정책기획실장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라며 최소한 3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오봉역은 작업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안전 통로조차 확보되지 않아 오래전부터 작업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산 문제로 방치됐던 곳이라고 토로했다.

김 정책기획실장에 따르면, 입환 작업 시 보통 열차는 기관차가 맨 앞에서 나머지 기차를 끌고 가는 형태지만, 오봉역의 경우에는 기관차가 맨 뒤에 붙어서 밀고 가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 기관사가 벽을 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아서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면서 열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선로 앞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업 통로만 있었어도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시멘트 벌크 화물 열차 관련 작업을 하던 30대 직원이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의왕 오봉역 철도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6일 시멘트 벌크 화물 열차 관련 작업을 하던 30대 직원이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의왕 오봉역 철도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원청과 하청 구조에 따른 고질적 문제도 무시 못 해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안전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도와 안전 비용 투자의 미흡함, 근로자 스스로 안전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의 저하가 가져온 참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원청과 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업무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떠맡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상황에 원청은 외주를 주면서 하청에 비용은 적게, 책임은 무겁게 떠넘기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아무래도 원청은 사업만 맡기고, 안전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 있다라며 원청 차원에서 하청업체인 협력사의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제도의 보완을, 사업주는 경영 이익이나 매출 대비 상대적으로 소홀한 안전에 대해 예산을 더 투입하고, 근로자 스스로 안전 규칙을 준수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근로자의 안전의식과 사업주의 안전장치에 대한 투자의 미흡함에 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어 누구의 문제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힘들다라며 사업주는 투자를, 근로자는 사업주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경영계와 노동계 및 관련 단체들의 입장을 반영해 산업재해중대법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며 이달 안에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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