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창고시설에 한정된 화재안전기준…소형창고 시설 법제화 ‘시급’
공사 중에 사고 빈번한데도, 정부 “창고시설 인명피해 많지 않아”

[뉴스엔뷰] 물류창고 시설의 화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건물 특성상 적재물이 높고, 가연성 높은 자재들로 가득 차 있어 작은 불씨에도 대형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창고시설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한다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창고별 구조물의 특성을 무시한 일괄 적용, 소형 창고시설과는 무관한 안전기준으로 인해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다.  

지난 7월 8일 발생한 강원 고성군의 아야진항 어구 보관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모습.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창고시설 화재는 총 7388건이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7월 8일 발생한 강원 고성군의 아야진항 어구 보관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모습.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창고시설 화재는 총 7388건이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 창고시설 화재, 대형으로 번지기 쉬워…사고원인·유형도 다양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물류창고 화재는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들 수 있다. 이 화재로 인해 근로자 38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같은 해 7월에는 용인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근로자 5명이 사망했다. 이 두 사고의 원인은 작업 현장의 시공, 시설관리 과정에서 화재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해 빚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물류창고는 특성상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샌드위치 패널이나 우레탄 등 단열재에 용접이나 용단 불꽃이 튀어 화재가 나기도 하고, 발포 우레탄 뿜칠 작업 장소 인근에서 용접이나 용단 작업을 하다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레탄 단열재 혹은 인화성 물질이나 기타 발화재로 인한 화재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와 같은 창고시설 화재는 최근 5년간 총 7388건이 발생했고, 사망 61명, 부상 226명의 인명피해와 연평균 1748억원의 재산 피해를 일으켰다. 그런데도 창고시설의 화재는 연일 잇따르고 있다. 

16일에는 청주의 한 신축 창고건물 공사 현장에서 용접 중 화재가 나 차고 전면(200㎡), 지붕 417㎡이 타고 3960여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12일에는 전북 정읍시의 한 주택 내 부속 창고에 불이 나 건물 1개 동(40㎡)이 전소됐다. 10일에는 경기도 김포시의 김포종합운동장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창고 내부 천장이 부분 소실되고, 체육용품 소실로 인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소방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창고시설의 발화요인은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44.8%를 차지하고, 전기적 요인(29.1%), 기타(26.1%)에 의한 화재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창고시설은 가연성 건축자재와 복잡한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작은 불씨에도 대형화재로 이어지기 쉽고, 불이 난 후 소방관이 침투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어 화재 진압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지난 8월 소방청은 창고시설에서 발생하는 대형화재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창고시설의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옥내소화전 설비 및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화수조 수원 기준 상향 ▲스프링클러 대상 창고시설에 대해 전 층 경보방식 적용, 대형 유도등 및 피난유도선 설치 ▲분전반 및 배전반 내부에 자동소화장치 또는 소 공간용 소화 용구 설치 등이다.

◇ 화재 취약한데도 창고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법 안전망

전문가들은 대형창고시설의 경우 앞으로 화재 사고 예방이 더욱 강화될 거라 내다봤다. 일정 규모 이상의 창고는 이미 소방시설이 법제화돼 있는 데다, 올 12월부터는 개정된 법령에 의해 소방안전관리사가 상주를 해야 하는 등 좀 더 법령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은 규모의 창고시설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소규모 창고는 약 800여곳에 달한다. 게다가 창고 특성상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물로 만들어진 곳이 대다수인데도 현행법상 화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례로 작년 울산 북구의 한 소규모 물류창고에서 불이 났지만, 물품이 많고, 전시대가 좁게 설치돼 있는 건물 구조 때문에 소방대원의 진입이 힘들어 삽시간에 불이 퍼져 4개 동 중 3개 동이 불에 탔다. 게다가 화재 현장 곳곳에는 부탄가스도 널려 있어 더 큰 화재로 이어질 위험성도 컸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피해가 더 컸다고 분석했다. 2022년 8월 시행한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현행법상 면적 5000㎡ 미만의 창고 시설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고, 점검 대상도 아니다. 또한, 연면적 1500㎡ 이상이거나 지하층과 무창층 또는 층수가 4층 이상인 곳 중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곳에만 옥내소화전 설비를 설치하도록 돼 있어 작은 규모의 창고는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소방청 소방분석제도과 관계자는 “모든 소방 시설설치기준이 대상물의 수용인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규모에 따라서 소방 관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전용한 교수는 “창고 형태의 건물은 추운 겨울 난방이 시작되면서 겨울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창고는 소방시설이 법제화돼 있지만, 작은 시설은 법제화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래도 창고에는 사람이 거주를 안 하므로 소방시설에 대해 관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소방청 소방분석제도과 관계자는 “창고시설은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거의 없다”라고 일축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의 한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물류센터는 구조적인 특성상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진/뉴시스
지난 5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의 한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물류센터는 구조적인 특성상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진/뉴시스

◇ 공사 중 화재 빈번…관련 안전 기준도 세워야

전문가들은 창고시설 화재가 규모에 상관없이 안전기준이 시급한 이유는 증축이나 패널같은 부분을 용접으로 펴는 등 공사를 하다가 대형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사 중에는 창고 규모에 상관없이 소방법에 저촉되지 않아 화재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소방시설은 건물이 다 지어진 상태에서 들어가게 되므로, 공사 중간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저촉되거나, 임시 소방시설 관리기준에만 해당한다. 하지만, 임시 소방시설 관리기준은 그야말로 임시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까다롭지 않다. 

전용한 교수는 “공사 중에는 안에서 사람들이 용접작업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위험물이 있는지 잘 모르는데도 소화기 같은 옥내 소화 시설 정도 밖에 명시돼 있지 않다”라며 “공사 시 임시 소방시설 설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법령이 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임시 소방시설 설치 대상을 보면, 연면적이 3000㎡ 이상이거나 지하층이나 무창층, 4층 이상 총바닥면적이 600㎡ 이상인 층에 간이 소화장치를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옥내 소화전이나 대형소화기가 있으면 면제기준에 들어간다. 비상 경보장치 역시 자동화재탐지설비나 비상 방송설비가 있으면 면제 대상에 포함된다.

또 다른 문제는 건물주들이 대부분 소방시설을 설치할 때 성능보다는 가격을 주로 따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제품의 기계적 결함이나 오류로 인해 화재경보기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며, 최소한 요구 조건만 갖춘 값싼 제품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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