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전 세계 집중…‘글로벌 콘텐츠 가이드라인’ 될 듯
“콘텐츠 급증, 과도한 트래픽 발생 유지 보수 힘들어”
통신사 ‘사용료 요구’ VS 클로벌 콘텐츠 공급자 ‘불필요’
8차 변론기일까지 ‘팽팽한대립’, “망 사용료 이중 과금?”

[뉴스엔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망 이용대가 채무부존재 법적 분쟁이 평행선을 달린 채 해를 넘겼다. 최근 8차 변론기일까지 열리며 팽팽한 분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 인터넷 패러다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이슈인 만큼 유럽연합도 관련 입법 절차에 나설 정도다.

해묵은 갈등의 시작

먼저 망 사용료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망 사용료란 글로벌 콘텐츠 공급자(CP)인 빅테크가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을 처리하기 위해 국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ISP)인 통신사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넷플릭스와 SKB 간의 망 사용료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 /  픽사베이
2020년부터 시작된 넷플릭스와 SKB 간의 망 사용료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 /  픽사베이

망 사용료는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분쟁의 씨앗은 2020년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10여 년간 망 이용료를 둘러싼 갈등은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 과거 국내에서 망 이용료를 둘러싼 논쟁은 오히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역차별 문제로 거론돼 왔다.

지난 2017년 일어난 네이버와 구글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네이버는 구글을 향해 국내 매출, 망 사용료, 투자·고용 현황 등 공개를 촉구했다. 구글이 조세를 회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한다는 지적을 이어간 네이버는 우리는 2016년에만 734억원의 망 이용료를 지불했다면서 구글 측 답변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망 사용료가 2019년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바로 역차별 문제로 망 이용료 전선에 대립하던 토종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갑자기 통신사를 겨냥하며 연합전선을 펼쳤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비롯해 구글, 네이버, 넷플릭스, 왓챠, 카카오, 티빙, 페이스북은 입을 모아 "정부는 망 비용 구조의 근본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응해 국내 통신사들을 대변하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인터넷망은 통신사가 구축한 사적 재산이며, 상업적 거래에선 유료라면서 현재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추가 비용 VS 최초 접속료

쟁점은 간단치 않다. 인터넷망의 기본 원리는 처음 인터넷망에 접속할 때 누구든지 접속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만, 이후에는 통신사업자끼리 상호 접속에 의해 연결된다. 상호접속이란 통신사간 인터넷 트래픽을 교환하기 위해 인터넷망을 서로 연동하는 것이다. 이때 기업 규모가 비슷한 통신사끼리 추가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다.

프라이빗 피어링 방식을 두고 정산 합의 여부 및 정산의 정당성이 화두다.  사진 /  픽사베이
프라이빗 피어링 방식을 두고 정산 합의 여부 및 정산의 정당성이 화두다.  사진 /  픽사베이

때문에 한국의 경우 유일하게 트래픽 양에 따라 통신사 간 상호접속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을 망 사용료 분쟁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통신사와 콘텐츠 공급자와 개별적으로 맺은 계약에 따라 트래픽 비용 부담이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통신사들이 중심인 인터넷사업자들은 콘텐츠사업자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망을 유지 보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니 돈을 더 내라고 주장하는 반면 콘텐츠사업자들은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최초 접속한 곳에 접속료만 내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인터넷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의 계약에 대해 우리 정부는 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별로 계약 내용이 다르고 공개된 바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은 이미 높은 망 사용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가 국내 인터넷사업자에 지불한 금액은 2016734억 원, 2017년엔 1100억여 원이 넘는다. 카카오와 아프리카TV2016년 각각 300억 원과 150억 원을 냈다.

지난 202012월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대규모 CP에게 망 사용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처음 대표 발의했다. 이후 여야 모두가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법안 적용을 받는 대형 CP 중 메타(구 페이스북카카오·네이버는 망 사용료를 이미 내고 있지만, 넷플릭스, 유튜브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ISP)와 국내 소송을 벌이고 있다.

프라이빗 피어링으로 과금?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갈등은 첨예하다. 양사의 대립은 K브로드밴드가 2019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재정 신청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넷플릭스는 2020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협상 및 대가 지급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2016년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미국 시애틀 IXP(인터넷교환지점)‘SIX’를 통해 망 접속이 이뤄졌다. 퍼블릭 피어링이었다. SKB의 네트워크는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 즉 오픈커넥트와 시애틀에서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문제는 넷플릭스의 인기가 급증하며 트래픽도 함께 올라가며 시작됐다. 그동안의 퍼블릭 피어링 방식으로는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기 어려워진 것. 결국 넷플릭스는 20185월부터 일본 도쿄 IXP ‘BBIX’ 피어링을 하기 시작했다. 전용망으로 비유할 수 있는 프라이빗 피어링 방식이 트래픽 소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사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SKB는 기존 퍼블릭에서 프라이빗으로 피어링 방식이 변한만큼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간 계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기존 퍼블릭 피어링 방식에서는 특별한 계약이 필요 없어도 프라이빗 피어링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두 기업은 항소심 8차 변로기일까지 마쳤다. 지난 32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채무부존재확인 항소심 8차 변론기일에서 SKB는 네이버, 카카오 등 유사 거래 사례를 토대로 망 이용료를 계산하자고 제안했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가 기업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국제 전용회선 서비스 요금과 국내 ISP가 콘텐츠사업자(CP)에 제공하는 인터넷 전용회선 서비스 요금을 통해 망 이용료도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 SKB의 이유다.

넷플릭스가 제기한 항소심은 올해 하반기에나 결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  픽사베이
넷플릭스가 제기한 항소심은 올해 하반기에나 결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  픽사베이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유사한 거래 사례가 없다며 이마저 거절한 상태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넷플릭스 측에 감정 방식에 대한 의견서를 요청했다. 이후 감정 여부와 방식을 결정할 방침이다.

두 기업은 변론기일이 끝난 후에도 입장을 내고 갈등을 보였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20161월 넷플릭스 서비스가 국내에 개시된 이래 시애틀에서 무정산 피어링 방식으로 연결해왔고, 20185SK브로드밴드의 요청으로 도쿄, 홍콩으로 연결지점을 순차적으로 변경하면서 무정산 피어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며 망 연결지점까지의 비용은 각자가 부담한다는 무정산 피어링의 합의는 인터넷 업계의 확립된 관행에 부합한다고 전했다. 이어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의 피어링을 통해 막대한 트랜싯 비용 등을 절감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고 비난했다.

SKB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SKB넷플릭스가 인터넷 기본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사항들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상호 정산제도나 인터넷 시장 운영구조에 반하는 것으로, 관행으로서 법적 규범으로 승인됐다고 볼 수는 결코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망 이용대가 지급 여부에 관해서는 협상을 유보하고 추가 협의 사항으로 남겨뒀을 뿐 무상으로 합의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 입법 나선 UN

폭발하는 K-콘텐츠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OTT와 통신사의 갈등에 전 세계는 숨죽여 주목하고 있다.

1차 공판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제기한 재판에서 패소했다. 아울러 항소심에서 나오는 논의를 두고, 유럽의 규제당국은 물론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와 콘텐츠 사업자(CP) 사이에서도 재판의 진행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앞서 재판 재게 한달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도 ISP와 글로벌 CP 간의 논쟁이 거세게 맞붙었다. 호세 마리아 알바레즈-팔레테 텔레포니카 CEO는 기조연설에서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모든 플레이어가 공정하게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렉 피터스 넷플릭스 CEO는 기조연설에서 "넷플릭스가 통신 사업자에게 콘텐츠 제작 비용을 같이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반박했다.

해외에서도 법제화 요구가 빗발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빅테크 기업이 통신망 투자에 기여하도록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망 중립성'을 둘러 싼 국내 정책과 입법 방향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 /  픽사베이
'망 중립성'을 둘러 싼 국내 정책과 입법 방향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 /  픽사베이

문제가 커지자 유럽연합(EU)까지 망 이용대가 관련 입법에 나섰다. 집행위원회가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맞춰 규제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폭증하는 데이터트래픽으로 초래되는 막대한 투자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새로운 자금 조달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5월 중순까지 의견 수렴을 마치고 결론을 낼 예정이다. 넷플릭스와 SKB에 쏠린 시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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