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저작권 분쟁에 극단적 선택
제 2의 ‘검정고무신’사태 없어야 끝없는 불공정 계약 논란
K-콘텐츠 급성장 이면에 가려진 예술계 관행적 불공정 계약
공정위, 넷플릭스 등 국내외 OTT 불공정 계약 약관 조사

[뉴스엔뷰] 명절 아침이면 어김없이 지상파 TV에서 친근하게 방송되던 만화 <검정고무신>.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집' 포스터 문화예술 현장에서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다.  사진 /  픽사베이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집' 포스터 문화예술 현장에서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다.  사진 /  픽사베이

지난 311,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작가는 캐릭터 대행사와 저작권 분쟁 중이었다.

모든 사업 권리 대행사에 넘겨

작가는 15년 전인 2008<검정고무신>에 대한 모든 사업의 권리를 대행사에 위임하는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작가는, “2006년 잡지 연재가 중단된 뒤, 새 연재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대행사 대표가 캐릭터의 가치를 키워주겠다고 말해 계약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우영 작가는 지분을 27%, 대행사 대표는 36%를 가져가게 된다. 대행사 대표는 이어 2011년엔 27%였던 글 작가의 지분까지 사들여 53%의 권리를 갖게 됐다. 작가의 불행은 이 때부터 였다.

이후 작가는 <검정고무신>의 캐릭터를 자신의 다른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대행사로부터 고소당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에 사용할 수 없게 된 작가는 손발이 다 잘린 느낌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해, <검정고무신>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다. 이 역시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우영 작가는 대행사와 불공정 계약 후, 끊임없는 저작권 문제로 괴로워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갑질 피해, 보수 미지급, 불합리한 관행 등에 시달리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많은 현실이다. 사진 / 픽사베이
갑질 피해, 보수 미지급, 불합리한 관행 등에 시달리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많은 현실이다. 사진 / 픽사베이

'동화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도 내면에는 불공정 계약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평가 받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까지 차지한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은 물론 <달 샤베트> 등 내는 책마다 연이어 히트 시킨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지만 그 역시 불공정 계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3년 신인 작가였던 백 작가는 한솔교육에 <구름빵>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 이른바 매절 계약이었다. 이후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디피에스는 한솔교육과 계약을 맺고 구름빵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2차 창작물은 수천 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지만, 작가에게는 계약금 850만원과 추가 지급분 1000만원이 지급됐을 뿐이었다.

백희나 작가는 2016<구름빵>의 공동저작자로 표기된 사진작가 김모씨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이 <구름빵>을 백 작가의 단독 저작물로 인정한 것. 하지만 이후 한솔교육과 한솔수북 등 4개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는 패소했다.

작가는 항소했고 2심에서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하도록 한 계약서 조항이 불공정하다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캐릭터 저작권이나 2차 창작물에 대한 권리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례로 인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매절 계약을 금지하며, 일명 백희나 표준 계약서를 만들기도 했다.

웹툰 산업, 매년 약 50% 증가

그렇게 표면 아래로 가려졌던 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계약은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죽음으로 다시 표면 위로 부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인기가 뜨겁지만, 이면에는 아직도 관행처럼 뿌리깊이 자리한 관습이 남아있는 것. 성장세 이면에 가려진 불공정 계약과 플랫폼 업체의 갑질문제 또한 불거졌다.

지난해 12,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웹툰산업의 실태를 분석한 <2022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를 발간했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웹툰산업 매출액 규모는 약 15,660억 원으로, 전년도 1538억 원 대비 48.6% 증가했다. 웹툰산업 실태조사가 시작된 2017년의 매출액 3,799억 원에 비해 약 4.1배 증가하며 매년 급성장 중이다.

매출액 중 웹툰 관련 비중은 평균 76.5%로 전년(64.9%) 대비 11.6%p 증가하였으며, 매출 구분별로는 유료 콘텐츠(63.2%) 해외 콘텐츠(17.4%) 출판(6.0%) 2차 저작권(2.8%) 광고(1.7%) 순으로 나타났다. 2021년 새롭게 진출한 사업 분야는 자사 제작 스튜디오 설립(38.2%) 자사 IP활용 2차 저작물 자체 제작(31.4%) 자사IP 활용 굿즈 제작/판매(20.6%) 등으로 집계됐다.

웹툰 작가의 평균 연 수입은 최근 1년 내내 연재한 경우 11,870만 원, 최근 1년 이내 연재한 경험이 있는 경우 8,573만 원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3,749만 원, 2,905만 원 증가했다. 웹툰 창작을 통한 주 소득원(1+2+3순위 응답 기준)RS(수익배분, 64.8%) MG(최소보장금, 53.3%) 해외유통(24.3%) 순으로 나타났다.

계약체결 대상은 플랫폼과 직접 계약(45.3%)이 가장 많았으며, 에이전시(43.0%) 스튜디오(9.5%) 기타(2.2%) 순이다. 계약 조건 결정 방식으로는 63.2%제시한 계약 조건 그대로 수용한다고 응답하였으며, 36.1%조항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상호 협의 하에 변경 후 계약한다고 답했다.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 많아

문제는 불공정 행위 경험이다. 조사 결과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갑질 피해, 보수 미지급, 불합리한 관행 등에 시달리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많은 현실이다. ​​​​​​​사진 / 픽사베이
갑질 피해, 보수 미지급, 불합리한 관행 등에 시달리는 작가나 예술가들이 많은 현실이다. 사진 / 픽사베이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복수 응답)로는 제작사 및 플랫폼에게 유리한 일방적 계약(40.8%) 계약 체결 전 계약사항 수정요청 거부(32.1%) 특정 작가의 작품 등을 우대한 차별 경험(30.9%) 등을 꼽았다. 창작/유통 관련 불공정 행위(복수 응답)로는 금전적 대가나 명확한 기준 없이 담당자 취향에 따른 반복적인 수정 요구(28.7%) 마케팅/홍보를 해주지 않음(26.3%) 작품에 부당하게 개입(25.9%) 등 순이었다.

또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툰 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산업 내에서 불공정한 계약 또는 불공정한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작가를 대상으로 경험한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가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2차적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게 유리한 일방적 계약’(40.8%)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방적 계약을 경험한 작가들은 특정 계약금 지급 방식 또는 수익배분비율로 계약 강요’(43.8%)를 경험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또한 일방적 계약 해지를 경험한 작가는 작품 인기 하락으로 연재 중단(구독률, 매출, 평점 하락 등)’(35.3%)을 경험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일방적 계약 조건 변경을 경험한 작가는 정산 시기 및 방법’(37.3%)을 가장 많이 경험했고, 그 다음으로는 대가 유형 및 규모(MG, 원고료), 수익배분율(RS)’(35.3%), ‘계약해지 조건’(35.2%), ‘작가의 의무 등 구속사항’ (17.6%)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플랫폼에게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응답한 경우, ‘플랫폼 또는 플랫폼 자회사/계열사 소속 작가가 아니라서’(50.0%)가 차별을 받은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공정 계약 및 행위를 경험한 작가를 대상으로 창작/유통 과정에서 겪은 불공정 행위를 조사한 결과, ‘금전적 대가나 명확한 기준 없이 담당자의 취향에 맞을 때까지 반복적인 수정요구를 받음에 대한 응답 비율이 28.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조사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웹툰 콘텐츠 창작 생태계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웹툰 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예술인 권리 침해 사례는 분야를 막론하고 이어지고 있으며 피해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 “불공정행위 엄정히 살필 것

창작자들은 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해 예술인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우영 작가 사태 직후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계 단체들은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성명을 통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우영 작가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 괴롭힌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반드시 승리해 작가님의 명예를 되찾고, (‘검정고무신캐릭터인) 기영이, 기철이, 막내 오덕이와 그 친구들을 유가족의 품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2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이데일리퓨처스포럼에서 강연자로 나서 콘텐츠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분야 중 하나로 최근 양적·질적으로 성장했지만 거래관행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K- 콘텐츠의 공정한 거래 질서 정착을 위해 불공정행위를 엄정히 살피겠노라 다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우영 작가의 저작권 분쟁과 극단적 선택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사회적 이슈가 된 검정고무신 사건은 저작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한 전형적 사건이라며 권리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는 공정한 거래 관행이 뿌리내릴 수 있게 공정위가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드라마와 영화 등이 한류를 이끌고 있지만 불공정거래 관행이 상당히 만연한 상황이라며 올해는 이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얼마 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2회 공정거래의 날기념행사에서 “K-콘텐츠의 위상에 걸맞은 공정한 거래 질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저작권 제공을 강요하거나 불공정한 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신규 시장의 경쟁 구조와 불공정 관행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공정위는 출판사나 콘텐츠 제작사의 약관에 저작권, 2차 저작권에 관한 불공정 조항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반도체·앱마켓 등 디지털 기반 산업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빅테크 기업이 독점력을 남용해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에 엄정히 대응해 나가겠다고도 강조했다.

최근 공정위는 넷플릭스·티빙 등 OTT 사업자가 콘텐츠 제작사를 상대로 불공정한 계약 약관을 운영하는지 조사 중이다. 공정위는 국내 OTT 시장 구조와 경쟁 상황을 분석하고 OTT 시장 내 경쟁 제한·불공정 이슈 등을 검토하기 위해 ‘OTT 시장 실태 연구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공정거래법상 서면 실태조사도 병행한다고도 밝혔다.

공정위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 OTT 산업의 시장 현황·요금제·서비스 형태, OTT 사업자의 거래구조·방식·경쟁 제한 요소 등을 분석하고 OTT 사업자와 거래 상대방 사이에 불공정 계약 관행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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