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 탑승 제한과 적정 인원 초과 시 알림 기능 필수
지하철 출퇴근 시민들,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밀집 공포'
전문가, 압사 이외에 화재 시 더 큰 사고 가능성 배제 못해

[뉴스엔뷰] “출퇴근 시 지하철 환승 계단에서 제 의지와는 다르게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게 돼요. 지하철 타기가 겁이 나요.”

“9호선 급행열차를 탈 때마다 다투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워낙 복잡한 구간이라 사람들이 모두 예민해져 있는데, 이 상황에서 누가 밀기라도 할까 봐 두려울 지경이라니까요.”

사람들이 양방향에서 한꺼번에 몰릴 경우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이태원 참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태원 골목 못지않게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한 시민은 콩나물시루처럼 빡빡한 지하철 안을 볼 때마다 이태원 참사의 장면이 떠올라 괴롭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지하철 9호선의 아침 풍경. 작년 최대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구간은 9호선 노량진에서 동작으로 가는 구간으로, 185%의 혼잡도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지하철 9호선의 아침 풍경. 작년 최대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구간은 9호선 노량진에서 동작으로 가는 구간으로, 185%의 혼잡도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 숨 막히는 대중교통…지하철 공포로 번진다

얼마 전 벌어졌던 이태원 참사는 많은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강모(42세) 씨는 “서울의 지하철은 당연히 복잡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동안 위험하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면서  “감기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돌 때 사람들과 붙어있는 지하철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번에 이태원 참사를 보고 복잡한 지하철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겠다는 강한 공포심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평소 출퇴근 시 복잡한 지하철의 내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 밀집도가 높은 혼잡한 곳이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인천시에서 서울시 성수동까지 출퇴근하는 김모(38세) 씨는 오후 5~6시 사이만 되면 성수역 바깥으로 길게 뻗어있는 계단과 도로 위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볼 때마다 TV에서 봤던 이태원의 재난 현장이 떠오른다고 호소했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과도하게 붐비는 모습만 봐도 혹시 나에게도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2021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작년 최대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구간은 9호선 노량진에서 동작으로 가는 구간이다. 혼잡도란, 실제 탑승 인원을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를 말하는데, 전동차 한 칸 표준 탑승 인원인 160명을 기준으로 혼잡도의 기준점을 삼는다. 

문제는 노량진에서 동작으로 가는 구간의 혼잡도가 185%라는 것이다. 승객들은 혼잡도가 150%만 돼도 열차 내 이동이 불편해진다. 모든 좌석에 승객이 앉아있고, 좌석 앞으로 7명씩 4열, 출입문 사이에 4명씩 4~5열로 서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9호선 개통 초기에 200%를 넘는 구간도 있던 것에 비하면 혼잡도가 개선됐지만, 여전히 ‘밀집’ 상황에 시민이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에 전문가들은 축제나 야외의 행사장처럼 참여자 각자의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위로 움직이는 상황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한정된 공간에서 밀집도가 높아지면 사고 발생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한상필 부교수는 “출퇴근 이외의 시간은 밀집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지하철 탑승객은 대개 가려고 하는 노선과 동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고 유발성은 축제보다는 낮을 것”이라며 “다만, 지하철 내의 밀집도가 가해지면 아무래도 사고 발생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혼잡도로 인한 사고도 문제지만, 화재 시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배기구 등 각종 장비를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혼잡도로 인한 사고도 문제지만, 화재 시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배기구 등 각종 장비를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 화재 땐 ‘더 큰 일’…인원 초과 알림음 등 부가 시설 필요

서울교통공사는 현재 지하철의 혼잡도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와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열차 운행 방식을 개선해야 할지, 시설물 개선이 필요할지, 인력 운영에 있어 대책이 필요할지 수립을 강구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동안 안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러시아워 시 혼잡한 주요 환승 역사를 위주로 역당 10명씩 지원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혼잡 역사는 ▲신도림 ▲사당 ▲종로3가 ▲교대 ▲신림 ▲홍대 입구 ▲충무로 ▲서울역 ▲합정 ▲시청 ▲군자 ▲천호 ▲서울대 입구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이다. 현재 이 역에는 오전과 오후에 5명씩 투입해 인원 분산 및 승객 통제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승객 대부분은 안전사고 예방 지원 근무자의 활동이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김포공항역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허모(40세) 씨는 “김포공항역의 경우 9호선과 공항철도가 마주하고 있는데, 9호선 급행 시간에 맞춰 인천에서부터 들어오는 공항철도에서 내린 수백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9호선으로 밀려들기 시작한다”며 “달려오는 소리가 마치 전쟁터의 말발굽 소리를 연상케 해 두려운데, 현재 안전요원으로는 관리 및 통제가 전혀 되지를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탑승 제한이고, 이게 불가하다면 알림 기능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한상필 부교수는 “탑승 인원 제한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이럴 때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인원이 초과하면 알림 기능이 울리는 것처럼 지하철에도 기계적으로 알림 기능을 설치하는 것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밀집도가 높은데다 평균 지하 5~6층에 해당하는 지하철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상지대학교 소방안전학과 전용한 교수는 “화재로 피난할 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려 몇 명이 방에 있을 때 피난할 수 있는지 연구했을 때, 가장 위험한 곳이 지하철”이라며 “지하철 시설 중 가장 나중에 생긴 것이 스크린도어인데, 스크린 도어가 닫히게 되면 안에 있는 연기가 배출이 안 돼 위험성이 배가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그 이유로 현재 각 역사의 배기구 대부분은 기차가 들어오는 곳, 즉 차량 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에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주기 위해 바깥 공기를 안으로 끌어와 공기 청정을 해준다. 하지만, 불이 났을 때는 거꾸로 안에 있는 공기를 바깥으로 빼주게 되는데, 팬을 반대로 돌리려면 적어도 15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에 기준 없이 배기구가 세워진 곳이 많고, 역마다 배기구 생김새 또한 다 다르다”며 “각 역을 전면 조사 해 배기를 할 수 있는 장비를 꼼꼼하게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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