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파란눈의 신부'로 유명한 정일우(본명 존 데일리) 신부가 향년 79세로 2일 오후 7시40분 지병으로 선종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땅을 방문했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 왔다.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정일우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 연구소를 설립하여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쳤다.
이후 정 신부는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돌리게 됐다. 당시 개발 논리에 밀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를 하였다.
198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동지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 공동 수상을 하기도 했다.
정 신부가 속한 예수회 한국관구는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일우 신부의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이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려, 많은 신자들이 그의 선종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