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가신그룹은 보스와 함께 정치적 소멸
영남 중진 ‘언더 찐윤’ 거론…탄핵에도 건재
‘당원 소환제’ 도입…계엄·탄핵 세력 겨냥
[뉴스엔뷰]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3金 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의 성이 모두 김씨(金氏)라는 동일 성씨 외에도 그들이 걸어 온 정치적 행보에서 각 계파의 보스라는 공통분모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거주하는 동네 이름을 붙여 가신그룹을 상도동계, 동교동계, 청구동계로 불렸다.
또한 이들 가신그룹의 공통점은 대부분 보스와 함께 정치적으로 소멸했다는 것이다.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였기에 보스의 뒤를 이어 스스로 발광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권노갑·한화갑·김옥두·최재승·설훈·남궁진·윤철상 등 동교동 비서 출신들은 1997년 9월 대선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할 경우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해 어떤 임명직 자리에도 결코 나서지 않겠다”라고 용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때도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최측근인 양정철·전해철·이호철 등 이른바 ‘3철’이 “선대위에서 맡고 있는 직책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던지겠다”라며 퇴진했다.
지난 2022년 당시에도 이재명 대선 후보의 측근 그룹인 ‘7인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저희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 이재명 정부에서 임명직은 맡지 않겠다”라고 전격적으로 ‘용퇴’를 선언했다.
이후 정치 보스의 ‘성’(姓)을 따서 친노(노무현), 친이(이명박), 친박(박근혜), 친문(문재인)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3김 시대처럼 출발과 성장을 같이한 확실한 정치적 보스와 계파의 성립이 아니다보니 이름 하여 ‘라인’을 잘 타는 정도의 관계인 것도 ‘친’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박근혜 측근들은 친박, 찐박, 멀박 등으로 세분되어 불렸고, 윤석열 측근들은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친윤 등으로 불렸다.
보통 대통령이나 당대표 같은 정치적 보스들은 공천권 등을 무기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라인’으로 우선되는 정도인 것이다.
공천권을 무기로 가열차게 권력을 행사한 대표적 인물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당대표 3명(이준석, 김기현, 한동훈)을 쫓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친윤계 등 측근 그룹들은 대통령의 뜻을 수행하는 돌격대가 되어 당대표를 쫓아내는 데 앞장섰다.
최근 정치권에 갑작스럽게 부상되는 신조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언더 찐윤’이라는 신조어가 그것이다.
정치권 한편에서는 이 신조어의 출현에 대해 ‘친한동훈계’가 당권을 거머쥐고, 차기 대선에 한동훈을 대권후보로 밀기위해 기존의 쌍권(권영세, 권성동)외에도 선수가 높은 영남인물들을 정리하기 위해 흘리는 말인 듯하다는 귀뜸도 있다.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것은 드러난 쌍권(권영세, 권성동)만이 아니고, 당을 움직이는 숨은 인물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별다른 토론 없이 당론이 정해진 것 등이 ‘언더 찐윤’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1일 “찐윤 세도정치는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언더 찐윤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한 발언이다.
한마디로 실제로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인물은 따로 있고, 쌍권 등은 ‘가게무샤’(그림자 무사)인 셈이다.
실제로 당을 움직이는 세력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영남의 3선 이상 중진들이라는 이야기도 회자하고 있다.
과거 정치권에서도 ‘언더 찐윤’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석기 전 국회의원이다.
이 의원은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전 의원은 통합진보당 안팎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숨은 실세라는 소문이 퍼진 바 있다.
보통 정치 보스가 탄핵 등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으면 그 가신그룹들은 ‘폐족’의 길을 걷는 게 순리다.
하지만 친윤계는 윤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총선 참패 및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뭉쳐있다.
특히, 친윤계인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6월 말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선을 그었다.
송 원내대표는 “우리 당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간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친윤계가 윤석열을 손절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정치 보스와 가신그룹의 관계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현상이다.
‘순장’(권력자나 귀족이 사망할 때 주변인을 강제로 또는 자진하여 함께 매장하는 장례 풍습)처럼 보스의 정치적 소멸은 가신 그룹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윤계가 소멸하지 않는 이유는 윤석열이 보스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윤석열이 친윤을 픽업한 게 아니고, 친윤으로 불리는 영남권 등 중진들이 윤석열을 대선후보로 간택한 셈이다.
즉,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연 배우였다면, 언더 찐윤은 배우를 결정하는 제작진이었던 것이다. 결국, 윤석열이 사라지면 또다시 제2의 윤석열, 제3의 윤석열을 다시 옹립해 그들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쌍권’의 대선후보 교체 실패도 이들 ‘언더 찐윤’이 김문수를 대선후보로 밀었기 때문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집단지도 체제가 아닌 단일지도 체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고위원 제도를 폐지하고, 당대표에게 힘을 집중시키려 하고 있다.
고려 말 무신들이 나라를 이끌어가던 무신정권처럼 ‘언더 찐윤’이 국민의힘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장치로 최고위원 제도 폐지를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이다.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안철수 국회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최고위원제를 없애고 중앙당무위를 만든다는 구상을 지적했다.
혁신위는 잦은 비대위로 인해 당대표 리더십이 흔들린다며 단일지도 체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최고위원을 없애고, 당대표가 간택하는 당직의원들로 최고 의사결정 기구를 구성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안철수 의원은 “(당대표) 리더십 강화를 위해서는 속칭 ‘이준석 조항’을 폐기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를 쫓아낼 때 개정했던 ‘최고위원 4명 사퇴 시 비대위 구성’ 당헌을 삭제하면, 비대위 난립도 막고, 당대표 또한 최고위원의 단체행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13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과나 반성하지 않는 의원들은 당을 떠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총선 공천 이후 계엄, 탄핵, 대선 패배의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에 나서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인적 쇄신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혁신위 차원이 아닌 당원 소환제를 마련해 당원의 의지로 쫓아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혁신위의 계획대로 당원 소환제가 도입되어 당원들에 의해 ‘언더 찐윤’에 대한 ‘폐족’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