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 받은 선거비용 반납 안 해도 출마 제약 없어
선거 보전금 완납하지 않은 사람 78명 달해 '대책 무'
정치권 선거비용 미반납자 출마 제한법 추진 중
[뉴스엔뷰]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추징금을 내지 않고도 선거 출마를 막지 못하는 상항에서 선거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보궐선거 개선방안으로 원인 제공자에게 선거비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그동안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선거비용 보전금’ 30억 원을 반납하지 않은 채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다가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해 출마 논란이 일단락됐지만,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곽 전 교육감은 지난 2010년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후 공직선거법에 따라 35억3700만 원을 보전받았다.
공직선거법은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선거 비용을 100% 돌려받는다.
그는 이후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됨에 따라 보전 받은 선거 비용을 전액 반납해야 하지만 아직 30억 원을 미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곽 예비후보가 반납하지 않은 30억 원은 국민 세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추징금 등을 납부하지 않아도 출마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선거 출마를 규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전 받은 선거비용을 반납하지 않기 위해 압류 조치 전 재산을 숨기거나 축소하는 꼼수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배째라” 식 태도에도 제재할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인 셈이다.
곽노현 예비후보는 13일 입장 발표를 통해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교육감에 출마한 저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과 부당한 사퇴 압력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정당 정치인들의 교육감 선거 개입과 비방으로 상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기준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도 선거 보전금을 완납하지 않은 사람은 총 78명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191억 원이나 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도 과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10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논란이 됐다.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았는데도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보전 받은 선거 비용을 반납하지 않고, 선거에 또다시 출마하는 꼼수를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나경원 국회의원이 추진 중인 개정안에는 선거비용 미납자의 경우 후보 등록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미납자 명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민법상 선거비용 반환 시효가 소멸하더라도 미납자의 선거 출마는 제한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나경원 의원 전에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고, 재보선 원인제공 정당에 대한 무공천 법제화도 논의됐지만 정치권의 소극적 행태로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국민의힘 안철수 국회의원은 지난해 2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해 “부패 등 중대범죄로 인해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귀책 사유가 있는 정당은 공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당헌에 반드시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자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패에 연루됐을 경우 정당은 강도 높은 연대책임을 짐으로써 자기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너무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니 정당이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제 정당까지 책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보궐선거 귀책 사유가 있는 정당이 공천할 경우 해당 정당이 재보궐선거 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소속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가 부패범죄로 유죄 확정시 정당 국고보조금의 일정 비율을 삭감 또는 환수해 부패범죄를 저지른 정당에 연대책임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앞서 2017년 11월경에는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인 정당발전위원회(정발위)가 부정부패로 재보궐선거가 치뤄질 경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후보자를 내지 못하도록 하고, 재보선 선거보전 비용을 재보선 원인제공자로부터 전액 환수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입법화되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 정발위는 “부정부패로 재보선이 이뤄지면 선거관리 경비 등 막대한 부담이 국민에 전가되지만 원인을 제공한 후보자나 추천정당엔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재보선 비용으로 1470억 원의 국민 혈세가 사용됐다.
10년 전인 2014년 9월에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재·보궐선거 개선방안으로 차순위 득표자 승계방안과 원인제공자 선거비용 부과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입법조사처는 ‘재보궐선거의 현안과 쟁점’ 보고서에서 “차순위 득표자 승계방안은 지역구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후보로 하여금 결원을 채우도록 하는 방안”이라며 “비례대표의원의 결원시 차순위 명부후보가 그 직을 승계하는 것처럼 지역구에서도 동일하게 실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원인제공자 선거비용 부과방안은 당선인의 책임 또는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사퇴함에 따라 실시되는 재보선의 경우 그 선거비용을 사퇴자 본인으로 하여금 부담토록 하는 방안”이라며 “재보선으로 인한 행정공백과 막대한 선거비용, 그리고 유권자의 정치불신 심화 등을 고려할 때 당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발생한 보궐선거의 경우 선거비용의 일부 또는 전액을 사퇴자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사퇴자의 피선거권이나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고, 선거비용을 국가가 보조해주는 선거공영제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한계점으로 언급했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실시된 재보선 총 189건을 발생사유별로 분류하면 사직 63건, 당선무효 56건, 피선거권 상실 38건, 사망 24건, 퇴직 8건 순 이었다.
재보선 사유 대부분이 개인적 비리나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사직한 경우인 것이다.
이번 10.16 재보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소속 금정구청장 후보와 인천강화군수 후보는 모두 광역의원을 중도 사퇴한 인물들이다.
이들로 인해 내년 4월 이들이 사퇴한 자리는 국민 혈세를 들여 또다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또한 곡성군수 재선거도 민주당 소속 군수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치러지게 됐다. 정치권의 책임정치 강화를 위한 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