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 위기, 청년창업 증가
열정페이 넘어 재능기부, 성장하지 않는 노동 가치
청년세대 노동시장 불안정 심화, 고립인구 증가세
[뉴스엔뷰]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논의체인 상생임금위원회가 지난 23일 토론회를 열고 학계 및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내달 중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청년세대 고립 해결
상생임금위는 지난 2월 임금의 공정성 확보와 격차 해소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 등 임금 문제를 총괄하는 사회적 논의체로 발족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고 학계와 현장 관계자, 정부부처 관계자 등 총 22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까지 네 차례의 회의를 통해 정책 대안을 논의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 장관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노동법제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받는 대기업·정규직 12%와 보호가 부족한 중소기업·비정규직 88%로 나뉘어 있다"며 "이러한 이중구조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미래세대 일자리를 위협해 청년들의 희망을 박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오늘 토론회에서 논의된 노동시장 내 격차 통계 분석과 해외 사례, 이중구조 원인 및 개선방안, 상생협력을 위한 ESG 확산방안 등을 발전시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담은 개선방안을 6월 중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장 문제는 청년세대의 고립과 연결되어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모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가 34.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세대의 고립도는 비혼 증가, 저출산 등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취업불안과 금리인상 등으로 경제적 불안도가 상승한 청년세대는 사회와 단절을 택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심리적 압박으로 은둔을 택한 청년인구가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성장 없는 노동 시장
청년세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사회에 진출해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세대이지만 취업난으로 ‘취준생’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결혼, 출산 등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취업난에 대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언급되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하다는 분위기다. 청년층의 눈높이에 대한 지적을 하기에는 노동 환경의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청년 구직자 3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청년세대 직장 선호도조사’ 결과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은 여전히 대기업(64.3%·이하 복수응답), 공공부문(공공기관, 공무원 등)(44.0%), 중견기업(36.0%) 순으로 나왔다고 24일 밝혔다. 중소기업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15.7%에 그쳤다.
중소기업에 대한 낮은 선호는 중소기업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청년들에게 중소기업 일자리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 ‘업무량에 비해 낮은 처우’(63.3%) ‘워라밸 실현 어려움’(45.3%) ‘불투명한 미래성장’(43.7%) ‘낮은 고용 안정성 우려’(39.3%)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37.0%) 등 순이었다.
팬심으로 재능기부
“열정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 휴일 없는 근무에 대한 신입 사원의 질문에 돌아온 상사의 답변이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년 개봉, 감독 정기훈)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개봉 당시 화제가 됐다.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 분)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담아 사회초년생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의도로 기획된 영화다.
그 후로 만 8년이 흘렀다. 노동 시장에서 요구하는 열정은 지난 시간만큼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은 ‘열정페이’라 불리며 청년 노동시장의 문제로 이미 지적된 바 있다. 최저시급 이상의 보수, 주휴수당 등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 보장이 노동 시장에서 이슈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당한 처우가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가 상당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취준생의 좌절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배우 김태리는 자신의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의 외국어 자막 번역 담당자의 구인 공고로 논란이 됐다. 그는 "유투브 댓글을 보니 정말 많은 나라의 팬분들이 계시다“면서 모두에게 자국의 언어 자막을 드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의 결론으로 자신의 브이로그 영상에 자막 외국어 번역 담당자 구인 계획을 알렸다.
'이 번역이 거긴가?'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30~40분 길이의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자막을 삽입하는 담당자를 모집하며, 이 영상을 번역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4~6시간으로 안내했다. 구인 계획 내에 보수 지급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에 기대 무보수로 ‘재능기부’를 할 사람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업계 통상 분당 5천원에서 만원 수준의 보수가 지급되는 업무임을 감안하며, 영상 1개당 최소 15만원에서 40만원 선의 보수가 지급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공고가 논란이 되자 소속사는 해당 채널의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전하며 ”해외 팬들이 영상을 즐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소속사의 해명은 논란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유투브 수익 창출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에 대한 보수는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인 공고 관련 논란은 앞서 가수 강민경의 쇼핑몰 경력직 직원 구인 공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책방지기로 일하는 평산책방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서도 있었다. 당시 강민경은 경력직 직원을 채용하면서 급여 조건은 정규직으로 전환 가능한 3개월 계약직에 연봉은 주 40시간 2500만 원을 제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와 관련 강민경 측은 ”담당자의 착오로 신입 채용 연봉이 기재됐다“고 해명했으나 여론의 뭇매를 피하지 못했다.
평산책방은 평산책방에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서, 종일 자원 봉사자에게만 식사를 제공하며 활동에 대한 대가로는 간식과 평산책방 ‘굿즈’를 제공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종일 근무자가 아니면 식사 조차도 제공 받지 못하는 조건이다. 평산책방 측은 문제가 된 자원봉사자 모집 계획을 철회하며 ”추후에는 재단 회원을 상대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겠다“고 알렸다.
취업보단 창업
개선되지 않는 채용 조건에 좌절한 청년층 상당수는 취업보다 창업을 택하는 분위기다. 올초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자영업자는 2018년 1~8월 기준 2.94%에서 지난해 1~8월 기준 3.4%로 증가했다.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에 유례없는 취업난까지 닥치며 청년 창업자 비율은 점차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청년층 창업이 증가하면서 정부도 지원책을 마련해 힘을 싣고 있다. 39세 이하, 3년 이내 대표자를 대상으로 하는 ‘2023 청년창업사관학교’, 공공기술을 활용해 청년 창업기업을 발굴·육성하는 ‘공공기술 창업 사업화 지원사업’, 29세 이하 예비 창업자를 지원하는 ‘생애최초 청년창업 지원사업’ 등을 운영 중이다. 대학 내 창업 열기 확산을 목적으로 권역별 창업중심 대학을 지정, 특화프로그램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