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바뀐다. 곧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예정이다. 새로운 정부는 현재의 야당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진보정당의 정부에서 보수정당의 정부로, 진보 대통령에서 보수 대통령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어쩌면 더 나은, 혹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아직 선거결과만 나왔으니 말이다.

[뉴스엔뷰] 정부가 바뀐다. 곧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예정이다. 새로운 정부는 현재의 야당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진보정당의 정부에서 보수정당의 정부로, 진보 대통령에서 보수 대통령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어쩌면 더 나은, 혹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아직 선거결과만 나왔으니 말이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한때 필자는 도서관에서 정치에 대한 전공도서가 무수히 많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여러 책을 뒤졌던 기억이 난다. 정치학, 한국정치, 국제정치학, 정치철학 등 두꺼운 책을 아무리 뒤져도 민주주의를 쉽게 정의하는 책은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흔히 무언가를 결정할 때 “민주주의 방식으로 정하자”라고 한다면 ‘다수결’을 뜻한다. 누군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것도 안 돼?”라고 말한다면 그건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도 딱 이정도만 민주주의를 알고 있었던 때, 당시 도서관에서 눈에 띄었던 책은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정치학을 강의하기 위한 교재로 만든 책이었다. 내심 ‘서울대는 뭔가 다를 것이야’라고 집어 들었던 책에선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쉽게 정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정의하기보단, 민주주의의 속성을 물어보고 답하는 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해 조금 몰랐던 사실을 하나 배워보자. 민주주의의 속성 중 하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진보였던 사람이 오늘은 보수가 되기도 하고, 내일은 다시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중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를 한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아마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굳이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선거는 규모에 따라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행사다. 이런 돈을 들여가면서 뭐하러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할까?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한 사람이 독재를 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주의다. 우리나라는 기나긴 군부의 독재라는 어두운 터널을 뚫고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국민이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민주주의가 가진 주요한 속성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모여 국가를 운영하기엔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간접민주주의가 생겨났다. 국민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표자를 뽑고,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국가를 운영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에도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의견이 다른 사람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데, 대통령은 오직 한명만 선출된다. 결국, 한쪽은 쓴맛을 봐야하는 게임이 매번 진행되는 셈이다.

사실 우리가 선거를 하는 이유는 서로 편을 먹고 갈라서며 싸우자는 뜻이 아닐 것이다. 더 잘살아 보자고, 더 좋은 사람을 뽑아서 국가 살림을 맡기자고 투표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어쩐지 선거철 우리의 모습은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한 전투에만 몰두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인지 다시 곱씹을 때가 됐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소셜미디어)에선 대통령 선거 기호 1번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남성을 두고 ‘일번남’이라 칭하고, 기호 2번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남성을 두고 ‘이번남’이라 부르는 것이 논란이 됐다. 이는 다시 남성 커뮤니티로 불씨가 옮겨 붙으면서 ‘일번녀’와 ‘이번녀’로 여성을 나누는 젠더 갈등을 초래했다.

이처럼 이번 대선은 성별을 비롯해 계층, 집단, 이해관계 사이에 혐오를 낳는 선거로 얼룩졌다.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를 부추기며 표심을 노리는 갈라치기에 나섰다. 돌이켜보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기 바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거는 당선인을 자연스레 정해줬다. 당선되지 않은 다른 한쪽은 여전히 화가 잔뜩나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대선은 이제 옛일이 됐다. 대통령은 정해졌으니 이제 우리는 미래를 살아야겠다. 서로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어찌 싸우고만 있겠는가? 이제 앞을 보고 나아갈 때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치적인 토론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 이를 위해 모두 벽을 허물고 대화에 나섰으면 좋겠다. 싸우는 토론이 아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토론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짜 한국에 필요한 말싸움 문화다.

필자는 격주로 직장인 독서모임에 참석한다. 간혹 정치적인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왜 우리는 정치를 놓고 말싸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돌이켜보자. 그것은 정치적인 토론을 성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직장에서 어떤 직원에게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함부로 꺼내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다른 직원과는 정치적 의견이 다르지만 각 후보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정치 얘기는 이처럼 사회에서 불문율과도 같지만, 때로는 흥미있는 말싸움이 된다.

우리사회가 좀더 이러한 말싸움 문화를 키워볼 순 없을까? 학교에서도 매번 정답만 맞추는 고리타분한 시험을 줄이고 서로 대화를 통해 다른 답을 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어차피 정치는 인생과 같아서 정답이 없다. 그러니 이제 ‘누가 당선됐느냐’를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문화를 가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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