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오직 몽타주만 남았다. 지난 2006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20대 여성의 알몸 살인사건이 15년간 미궁에 빠졌다. 이른바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당시 여러 목격자가 있었는데도 뚜렷한 증거가 없어 범인을 잡지 못한 대표 미제 사건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 재수사 대상도 아니다.

[뉴스엔뷰]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오직 몽타주만 남았다. 지난 2006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20대 여성의 알몸 살인사건이 15년간 미궁에 빠졌다. 이른바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당시 여러 목격자가 있었는데도 뚜렷한 증거가 없어 범인을 잡지 못한 대표 미제 사건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 재수사 대상도 아니다.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오직 몽타주만 남았다. 지난 2006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20대 여성의 알몸 살인사건이 15년간 미궁에 빠졌다.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오직 몽타주만 남았다. 지난 2006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20대 여성의 알몸 살인사건이 15년간 미궁에 빠졌다. 

2006년 7월4일 새벽 2시 10분. 택시 기사 김씨는 소변을 보려 서울 영등포구 노들길 근처에 차를 세웠다. 노들길 아래 하수구에서 소변을 보던 그는 순간 얼어붙었다. 언뜻 살색 물체가 보여 다가갔다 알몸 시신을 발견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시신의 상태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알몸 시신의 코와 성기에는 휴지가 들어있었고 목은 끈에 졸린 흔적이, 팔은 테이프로 감긴 자국(삭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곧장 신원 확인에 들어갔다. 엽기적인 시신의 주인공은 관악구에 사는 서모(여·당시 23세)씨였다.

고향이 전북인 서씨는 대학 졸업 뒤 취업을 하려고 사건 발생 석 달 전에 서울로 왔다. 동생과 함께 살던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 홍대 주변에서 고향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녀는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택시를 타고 당산역 근처에 내렸다. 이후 서씨는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한 뒤 어두운 골목길로 갑자기 뛰어 들어갔다.

놀란 친구가 뒤따라갔을 때 서씨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서씨는 당시 취업 공부에 집중하던 터라 휴대전화도 정지한 상태였다.

서씨는 그렇게 검은 주검이 돼 돌아왔다.

경찰은 처음부터 애를 먹었다. 상식과 다른 증거들이 많았던 탓이다.

서씨는 실종 당시 술을 마셨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간혹 술을 먹지 않은 사람의 시신에서도 혈중 알코올 농도는 나온다. 하지만 이 사건은 되레 정반대였다.

보통 사람이 죽어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시체에 얼룩이 생기고 몸이 굳는다. 또 손가락과 관절이 딱딱해지고 각막은 혼탁하게 변한다. 법의학에선 이를 ‘시체현상’이라 부른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그녀가 12시간가량 살아있다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또한 이런 시체현상보다 시신의 코와 음부에 들어있는 휴지조각 등 엽기적 증거에 집중했다.

서씨 시신은 아랫부분이 훼손됐으나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깨끗했다. 겉옷과 속옷에서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는데, 범인이 한 번에 죽이지 못했는지 자국은 두 개였다.

팔에는 묶은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유류품은 당산2동 노인회관 앞에서 발견했다. 가방과 돈은 그대로였다. 휴대전화만 사라졌다.

경찰은 혼란스러웠다.

당시 서씨를 봤다는 학생이 있었다. 당산역 근처 빌라에 살던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성 두 명이 한 여성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근처에 차도 한 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실종 당시 빨간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씨는 베이지색 바지라고 진술했다. 수사에 진척이 없던 경찰은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성급하게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다. 경찰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이후 실종 당일 새벽 4시께 윗옷을 벗은 여성이 가슴을 가리고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환경미화원도 나타났다.

이 역시 노들길 살인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 서씨가 알몸 상태로 발견된 노들길에 차(아반떼 XD)를 대고 서성이던 수상한 남자를 봤다는 견인차 운전기사가 등장했다.

그는 “한 명은 운전석에, 다른 한 명은 하수구 근처에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견인차 운전기사의 진술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또 최면수사도 했다. 운전기사는 차량 앞 두자리 번호를 기억했는데 경찰은 이 번호를 가진 차량 1000여 대 소유자 중 남성만을 골라 유전자(DNA)를 채취했다. 결과는 허탕이었다.

경찰이 당시 목격자 진술에만 의존해 용의자를 남성으로만 좁힌 탓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의외로 여성 공범자가 많다는 기초 지식을 무시한 것이다. 서씨 몸에서 구타 흔적이 나오지 않은 것도 여성 공범자의 유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추정한 채 수사를 끝냈다.

서울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은 새로운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상태”라며 “그런 이유로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은 현재 다시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이른바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사건)에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계속 수사를 한다”며 “우리나라는 개별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실적 압박 풍토가 심하다 보니 이런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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