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아낌없이 주는 나무
딱따구리·하늘다람쥐 등에 내줘

[뉴스엔뷰] 산책을 하다 보면 나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중 특히 좋아하는 나무는 오동나무이다. 예전에 딸 낳으면 시집밑천으로 심는 나무(아들이면 잣나무)기도 했지만 나에게 오동나무는 동물들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오동나무는 가구재로 많이 쓰이지만 가볍고 깨끗하고 뚫기 쉬워 동물들이 많이 애용한다. 문은 원형이다.
 

오동나무는 가구재로 많이 쓰이지만 가볍고 깨끗하고 뚫기 쉬워 동물들이 많이 애용한다. 문은 원형이다. 사진/최종욱 수의사
오동나무는 가구재로 많이 쓰이지만 가볍고 깨끗하고 뚫기 쉬워 동물들이 많이 애용한다. 문은 원형이다. 사진/최종욱 수의사

오동나무 아파트의 첫 시공자는 주로 오색이나 청딱따구리들이다. 이들은 주로 새끼를 칠 둥지를 만들려고 부지런히 오동나무 겉을 파낸다. 그러다 보면 대나무처럼 깔끔하게 빈 안방이 나온다. 그 순간 그는 아마 ‘집짓기 끝!’하고 환호할 것이다. 자연이 만든 안방은 동굴처럼 조용하고 아득하다. 대나무처럼 층이 있어 위아래 바닥이 여유 있게 막혀있다. 그 위에 부드러운 바닥 깔고 그냥 눌러살면 끝인 것이다.

새끼 칠 둥지 만들려 속 파내
딱따구리는 그저 둥지만 이용할 뿐이다. 그렇게 금방 빠져나간 빈 둥지는 다른 모든 세입자들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자연은 곧 공유경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용한 것은 필요한 누구나가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단 그는 빈집을 찾을 만큼 부지런하고 또 빈 집을 찾을 이유만 있으면 자격이 충분하다. 자연은 이런 빈 곳이 넘쳐나기 때문에 경쟁도 그리 심하지 않다.

위가 찼으면 아래를, 아니면 다른 옆 나무를 찾으면 된다. 한 나무에 구멍은 많아도 사람처럼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일은 좀처럼 없다. 무릇 삶이란 특히 생활이란 이렇게 여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은 필요한 기간만큼만 이용할 뿐 대부분의 삶은 자연의 노숙자로 살아간다. 홈리스, 우리는 짠하다 생각하지만, 그들에겐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의 다른 방식일 뿐이다.

두 번째 이용자들을 특히 이런 번식기 봄여름 철이면 자주 만나게 된다. 물론 보려고 하는 이에게만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네 잎 클로버 같은 행운이다. 어느 날 유난히 구멍이 많은 커다란 오동나무 옆을 지나치다가 갑자기 위를 쳐다보다 마주친 건, 말로만 듣던 ‘하늘다람쥐’였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참을 그대로 못 박힌 듯 있다가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더니 두 마리 새끼를 데리고 나와 도망치듯 나무 위로 쪼르륵 올라갔다. 아! 순간 대게 미안했다. 마치 불청객인 내가 그를 놀라게 해 쫓아낸 것 같았다. 궁금하고 더 보고 싶었지만,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끌리듯 그 자리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나무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쓱 지나가면서 살짝 엿보았다.

역시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그가 얼굴을 내밀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됐다! 내가 몰아낸 건 아니구나!’ 그들은 도피의 삶이 일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여름 한 철을 하늘다람쥐와 숨바꼭질하며 즐겁게 보냈다. 어느 날 가보니 그들은 모두 하늘로 사라지고 없었다. 새끼들이 독립을 했을 것이고 엄마도 이제 다시 편안한 나무 도로 위 행복한 노숙 생활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하늘다람쥐)가 왜 나를 그렇게 피했는지는 다음 해 깨달았다. 이번에 다른 곳이었다. 비슷한 크기의 오동나무에 구멍이 있었고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누가 있을까 궁금해서 모른 척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황구렁이 한 마리가 그 뾰족한 얼굴을 내밀고 입구에 똬리를 튼 채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나무를 빙빙 돌면서 그 높은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을 것이다. 그의 목적은 사냥이었을 것이다. 땅에 사는 그가 굳이 나무 위의 구멍을 찾아 올라가는 까닭은 대개 무엇인가를 사냥하기 위해서다. 배가 불룩했다. 만일 작년의 그 하늘다람쥐처럼 계속 경계를 하고 경보를 울리고 긴급대피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뱀이 헛된 노력은 안 한 듯 보였다. 

올해도 오동나무는 5월에 초롱불 같은 아름다운 퍼플 꽃을 피워 온 산을 환하게 비추더니 초여름엔 연꽃 같은 커다란 잎을 내어 그늘을 만들고, 늘 그렇듯 아낌없이 동물들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큰소쩍새에게도 든든한 터줏대감
올해는 두 군데서 구멍 손님을 만났다. 이번엔 둘 다 ‘큰소쩍새’ 였다. 정말 이용하는 손님들이 다양한 것 같았다. 큰소쩍새는 하늘다람쥐보다 더욱 수줍었다. 좀처럼 몸을 끝까지 내밀지 않고 머리만 살짝 나왔다 금세 쑥 들어가 버렸다.

다행히 녀석 역시 상당한 위치의 포식자인지라 혹시 뱀이 오더라도 아마도 싸워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안엔 아마 귀여운 새끼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세 마리 혹은 네 마리? 지금쯤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체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에 의존하는 단계일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의 나래는 안에까지 스캔하게 만들었다. 그 나무 위로 갑자기 다람쥐 새끼 한 마리가 철모르고 쪼르륵 뛰어가다 나를 쳐다보았다.

 

‘아! 다람쥐 새끼들은 나무 위를 잘 돌아다니는구나!’ 대부분 땅 위에서 만나는 다람쥐를 나무 위에서 만나는 것도 다 아낌없이 자기 살까지 내어주는 오동나무 덕택이었다. 오늘도 오동나무는 오뉴월의 대나무처럼 쑥쑥 위로 옆으로 씩씩하게 크면서 자칫 칙칙한 산을 훤하게 비춰주는 든든한 터줏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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