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상담사들이 120콜을 받기 위해서는 한 명당 약 4분 이내로 통화를 마쳐야 한다. 대기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통화 가능 시간은 단축된다. 복잡한 보험제도를 2, 3분 이내에 설명하기는 어렵고 국민은 알 권리를 박탈 당한다는 주장이다. 

[제227호 뉴스엔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국민과 공단 사이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 10년 연속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한국산업 서비스품질지수(KSQI)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배경에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 생리휴가를 요청한 상담사에게 입증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보험공단의 민간위탁 구조와 성과관리시스템이 드러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원은 민간 위탁업체 소속 노동자다. 이들은 하루 평균 120콜 이상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원은 민간 위탁업체 소속 노동자다. 이들은 하루 평균 120콜 이상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공공기관 고객상담센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간위탁됐다. 직고용이던 상담사들은 IMF 이후 민간업체 소속 노동자가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고객센터 업무를 민간 업체들이 경쟁입찰 하여 위탁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현재 전국 7개 권역에서 국민에게 건강보험제도를 설명해주는 상담사 1600여 명은 모두 위탁 운영업체 소속이다.

상담부문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과관리시스템’이 탄생했다. 수탁업체들은 2년마다 진행되는 도급계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콜 수’라는 계량화된 수치로 업체의 효율과 성과를 증명했다. 상담사 한 명이 짧은 시간, 다수와 통화할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관련해 김숙영 건보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은 <뉴스엔뷰>와의 통화에서 “민간 위탁업체는 공단으로부터 매달 도급비를 청구해서 받는다”면서 “업무 수행 실적에 따라 비용을 차감하기도 하는데 응대건수와 응대율이 평가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 지부장은 “응대건수가 평가점수가 높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콜 수 압박도 받는다”면서 “지난해 건보는 상담사 한 명당 평균 120콜 이상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지부 측에서 자체조사해보니 하루 180콜 이상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성과관리시스템은 노동환경도 악화시키지만, 최종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상담사들이 120콜을 받기 위해서는 한 명당 약 4분 이내로 통화를 마쳐야 한다. 대기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통화 가능 시간은 단축된다. 복잡한 보험제도를 2, 3분 이내에 설명하기는 어렵고 국민은 알 권리를 박탈 당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응대율을 높이라며 관리자들이 압박하는 탓에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0.01초로 안 쉬고 전화를 받는다. 공들여 상담해야 하는 고객임에도 통화가 4분 이상 넘어가면 관리자들이 옆에서 오지랖 부리지 말고 끊으라고 화낸다”면서 “특히 12월부터 건강보험료에 소득과 재산세 변동분이 적용되기 때문에 피부양자가 대거 탈락되고 있다. 바뀐 제도에 대해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해 드려야 하는데 콜 수 압박 탓에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실제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건강보험 및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 총 1060개 업무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질병관리본부 1339업무’까지 겸하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사회보장제도와 정책이 쏟아지는 만큼 업무 이해도가 높은 숙련노동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2년마다 수탁업체가 바뀌는 탓에 근속연수가 긴 노동자가 적다. 연차가 쌓여도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콜 수 압박 등으로 근로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김 지부장은 “오래 버티는 사람들은 최저시급이라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들"이라며 “대부분 아르바이트 일환으로 가볍게 거쳐가는 사회초년생”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최상의 상담서비스를 위해 4대 보험을 다루는 공공기관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2018년, 2019년 각각 근로복지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콜센터 상담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바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내부 직원 간 이견 조율에 실패하면서 정규직전환이 미뤄졌고 현재까지 민간위탁 구조를 유지 중이다. 

김 지부장은 “현재의 도급계약 구조로는 실적과 생산성만 강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최종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라면서 “공공기관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다시 직접고용 구조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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