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동양경제]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리자 두 기관간의 갈등으로 소송 당사자만 피해를 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재는 GS칼텍스와 에이케이리테일 주식회사에 대해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법 개정으로 실효(失效)됐는데도 대법원이 이를 효력 있다고 보고 각각 세금 707억원과 104억원을 물리는 판결을 한 것은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GS칼텍스는 지난 1990년 10월 기업상장을 신청한 뒤 자산재평가를 통해 국세청의 감세 혜택을 받았으나 GS칼텍스는 2003년 12월 상장 계획을 포기하면서 자산재평가를 취소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이 2004년 4월 그동안 감면받은 법인세(1990~1999년분) 707억원을 납부하라고 요구하자 GS칼텍스가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8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효력이 상실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실효되지 않았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으며 GS칼텍스는 파기환송심 계속 중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기각되자 2009년 6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형법조항이나 조세법의 해석에 있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 등 원칙상 엄격하게 법문을 해석해야 한다"며 "실효된 법률조항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형벌의 부과나 과세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을 법률해석을 통해 창설해 내는 일종의 '입법행위'로 헌법상 권력분립원칙,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 등 원칙에 반한다"며 GS칼텍스 측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경과규정 미비로 명백한 입법의 공백을 방지하고 형평성의 왜곡을 시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권한이고 책임이지 법문의 한계 안에서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법원이나 과세관청의 몫은 아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으로 GS칼텍스 등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은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 이미 확정된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법률의 해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기속력이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이처럼 법원이 재심을 기각할 경우 GS칼텍스 등은 다시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한 법률을 적용한 판결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헌재는 법 제68조 제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의 '법원의 재판'에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도 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며 한정위헌 결정했다.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두 기관의 힘겨루기에 소송 당사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처럼 법원과 헌재에서 모두 재판을 받고 이후 다시 재심과 헌법소원 거치게 된다면 소송 장기화로 인한 비용과 시간 등의 낭비는 고스란히 분쟁 당사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헌재 결정을 두고 GS칼텍스 측은 "민감한 사안이라 아직까지 재심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만약 국세청이 나서 헌재 결정에 따라 실효된 법규정의 적용을 취소해 사건이 조기에 종결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갈등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입법적으로 명확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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