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장난’ vs ‘도를 넘은 폭력’,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가 없는 현실
불거지는 유명인의 학폭 의혹…고백과 투서, 고발, SNS 등 미디어 영향
초등 1·2학년, 학폭법 적용 제외해야 vs 폭력과 피해의 정도가 기준 돼야

[뉴스엔뷰] 학창 시절 학교폭력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 한 학생이 성인이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다시 학폭에 대한 이슈가 불거졌다. 태국에서는 ‘더 글로리 타이(The Glory Thai)’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이 당했던 학폭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사례가 이어졌고, 유명 배우인 옴파왓은 자폐증을 앓고 있던 학생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학폭은 중범죄에 버금가는 폭력과 성추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처벌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학교나 학부모 몰래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데미지를 안겨주기 위해 악의적으로 치욕과 모욕감을 행사하는 정신적인 폭력의 상태로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가해 혐의를 명백히 밝히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초등 1·2학년까지 학폭의 법적, 제도적 처분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과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폭력의 정도와 피해 정도가 절대적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등 1·2학년까지 학폭의 법적, 제도적 처분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과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폭력의 정도와 피해 정도가 절대적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한 초등학생 엄마의 절규…피해자와 가해자의 뒤얽힌 진실싸움

“저희 아이는 한 아이로부터 1년 내내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조기 입학한 저희 아이는 또래보다 키나 체구가 훨씬 작아 겉으로도 나약해 보였죠. 상대 학생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 진단과 아스퍼거 증후군 의심 학생으로 폭력이 절제가 안 되는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저희가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한 학부모가 자녀의 학폭 피해를 호소하며 제보한 내용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에 따르면, 학폭은 봄 학기부터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급기야 눈에 피멍이 든 채 자녀가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 이외에도 목조름과 장구 궁채로 폭행하는 등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학생의 어머니는 “현재 우리 가정은 위기 상태다”라며 “아이는 정신적, 육체적 상처에 끊임없이 노출돼 정서적, 학습적으로 결손이 많이 발생했고, 나 또한 아이에게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 측의 방임을 막고자 육아휴직을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피해 학생)는 상대 아이에게 맞아가면서도 친구로서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참관수업 등 학교 현장에 방문하고서야 아이가 학폭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여러 차례 관련 기관에 호소했지만, 외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사기관에서 무혐의를 받았다. 지자체·경찰·검찰 등에서 전수조사를 받은 결과다. 학교 관계자는 “이 사건은 서로 간에 성향이 다른 초등학생 1학년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며 “예를 들면,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는 얌전하다가도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주변에서 가하면 욱하는 성향이 있다. 또, 피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를 건드리기도 했다. 물론,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어린이가 얌전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일방적으로 누가 잘못했다기보다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대책심위원회 조치 결과에서는 양측에 피해와 가해가 있는 것으로 결론 났고 피해 학생이라 주장한 아이는 상대방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는 학교 봉사와 특별교육 2시간을 각각 이행할 것을 조치 받았다. 보호자에게도 특별교육 2시간이 주어졌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양측 모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을 개선할 적절한 교육적 선도가 필요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학부모는 1년 넘게 진상 규명을 외치며 외로운 싸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학교 측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의 학부모는 관련 학생의 공감 자리 마련, 재발 시 가해 학생과 철저한 분리, 담임교사의 새 학년도 담임 배정 제외, 가해 학생 어머니의 방과후수업과 독서 수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학년 당 한 학급만 존재하는 소규모 학교라 철저한 분리가 불가능하고,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는 교육지원청 순회 강사에다 방과 후 수업 만족도도 높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엔 이런 성향이 다른 아이들과의 다양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했고, 처벌보다는 아이들이 갈등 속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신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 지도했으며, 집단상담과 가족 상담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 일들로 인해 두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7%(5만4000명)로 전년도 1차 조사보다 0.6%P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교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사진/뉴시스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7%(5만4000명)로 전년도 1차 조사보다 0.6%P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교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사진/뉴시스

◇ 상처로 남는 싸움…어디까지 학폭일까?

교육부가 16개 시도교육청과 공동으로 초등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7%(5만4000명)로 전년도 1차 조사보다 0.6%P 증가했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 3.8%, 중학교 0.9%, 고등학교 0.3%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 1차 조사 대비 모든 학교급에서 증가한 수치다. 특히 초등학교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2020년 피해 응답률 1.0%→2.5%→3.8%로 증가 폭이 크다.  

피해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 폭력(14.6%), 집단따돌림(13.3%)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1차 조사 대비 집단따돌림은 1.2%, 사이버폭력 0.2% 비중으로 감소했지만, 신체 폭력은 2.2% 증가했다.  

이번 실태조사와 관련해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재난 이후 폭력 등의 문제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사회적, 정서적 역량에 대한 기본 소양 교육이나 또래 간 갈등을 조절하는 경험이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한유경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초등학생은 중고등학생보다 학교폭력 감지 민감도가 높아 학교 수업 정상화에 따라 신체적, 언어적 상호작용이 증가하면서 습관성 욕설과 비속어 등에도 더 민감하게 학교폭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초등학교 1·2학년은 학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초등 1·2학년까지 법적, 제도적 처분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은 초등 1학년부터 고3까지 모든 학년을 학폭위 처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청이 있으면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폭위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일부 초등 저학년의 경우 ‘매우 사소한 일’로도 학폭 심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0년간 교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학교 폭력에 해당하지 않거나, 처분이 있더라도 매우 경미한 수위인 경우가 많다”라며 “아이들의 싸움이 부모의 싸움으로 확대돼 변호사까지 선임해 법정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폭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폭력의 정도와 피해 정도가 절대적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학폭의 피해 정도를 고려해 적용예외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고 해서 무조건 학폭이 경미하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며, 저학년 특성상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살펴 피해 학생의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사회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해 외로워지도록 만드는 것도 폭력의 일종이고, 이는 트라우마로 남아 인간관계에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등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고등학생과 구분되는 초등학생의 피해유형별 실태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진행한 후에 맞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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