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도 예외는 아니다 ‘직폭’의 현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해도 ‘과태료’ 처분
‘버티면 산다?’ ‘참거나 모르는 척’
피해자 입장의 엄정한 처벌 있어야

[뉴스엔뷰] “회사 생각만 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일요일 오후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죠. 심장병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편두통처럼 머리도 지끈지끈 아팠어요.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자 이런 증상들이 싹 나았죠. 남들은 제가 활달하게 직장생활 잘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는 걸 아무도 몰랐죠. 지금 생각하면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병원 안 가고 버틴게 용할 정도예요.”

3달 전 회사를 관둔 A씨의 고백이다. 그는 지속적이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힌 팀장 때문에 힘들어하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직장갑질119가 2022년 6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7.6%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고, 23.6%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응답했다. 사진/뉴시스
직장갑질119가 2022년 6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7.6%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고, 23.6%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응답했다. 사진/뉴시스

◇ 폭언·따돌림부터 폭행까지…동료는 ‘모르쇠’ 일관하거나 ‘동조’

50명 규모의 중소기업에 다녔던 A씨는 3년간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일하다 최근 퇴사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정시 출퇴근 시간이지만, 이 시간에 출퇴근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A씨를 힘들게 했던 건 출퇴근 시간이 아닌, 팀장의 교묘한 따돌림과 괴롭힘이었다고 한다.

A씨는 “프로젝트 때문에 주말에 일해야 했는데, 점심때가 막 지나서야 팀장이 왔다. 그러더니 ‘점심 먹었지? 난 안 먹었으니 회의실 가서 혼자 먹을게’라더니 자료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팀원과 주말 근무를 할 때는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오더니 고생하는데 같이 먹자며 챙겨주고, 자료도 봐주더라. 그걸 보면서 대놓고 이렇게 차별하는 게 유치하면서도 서럽더라”고 한탄했다.

A씨는 이 팀장의 팀으로 배정받고 나서부터 지속해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생각을 말하면 ‘제멋대로 하려고 하는 직원’으로 치부하고, 업무를 검토하지 않은 채 사장에게 보고한 후, ‘무능력한 직원’이라 보고했다. 

문제는 이런 차별과 따돌림이 교묘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른 팀원 앞에서는 좋은 팀장으로 변신하고, A씨와 있을 때만 이런 가면을 벗었다는 것이다. 그는 “퇴근하려는 나에게 팀장이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나에게 팀장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막상 회의에 들어가니 그건 다른 팀원의 생일파티였다. 그때 느꼈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내 생일은 챙겨주지 않더라. 다른 팀원들도 팀장의 눈치만 보고 내 생일은 챙겨주지 않았다. 하지만, 팀장의 생일 때는 팀원들 모두가 돈을 모아 챙겨줬다”라며 A씨는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이외에도 팀장은 복도에서 A씨를 보면 눈을 흘겼고, 서류를 던지기도 했다. 3일 내내 야근하다 오랜만에 정시에 퇴근하는 A씨에게 다른 팀원들 업무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이기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직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어 사장에게 보고했다. 정작 A씨가 야근할 때는 모두 퇴근하고 A씨만 사무실에 남아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은 비단 A씨만 겪은 것은 아니다. 10인 규모의 개인회사에 다니는 B씨는 새로 들어온 팀장으로 인해 업무 능력이 저하됐다고 호소했다. 마케팅 담당자인 B씨는 보고 체계상 작성한 자료를 팀장에게 먼저 보고했다. 하지만, 팀장은 항상 수정을 요구했고, 수정 방향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팀장의 요구대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B씨는 본부장에게 수정한 내용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본부장에게 돌아온 반응은 ‘실망했다’는 말이었다. 결국 자신이 작성했던 원래의 자료를 가지고 본부장에게 보고했더니 그제야 ‘이게 훨씬 낫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에도 이런 식의 과정은 되풀이됐다. 

B씨는 “내가 원래 제안한 방향이나, 보고서는 항상 팀장이 반박했고 고쳤다. 심지어 나에게 ‘뭘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팀장이 수정한 내용을 본 본부장은 어김없이 ‘왜 이렇게 했냐’는 말을 했다. 본부장은 최근 들어 내가 보고서를 이상하게 작성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무능력한 직원이 된 것 같아 억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어느 날은 갑자기 퇴근 시간에 광고 건으로 미팅이 있다고 하더라. 미리 스케줄 공유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나에게 밥은 먹지 말고 인사만 하고 가라고 했다. 미팅 자리에서 식사 하며 중요 안건을 얘기할 텐데 난 인사만 하고 일어났다. 마치 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더 웃긴 것은 룸에서 홀로 나갔는데 구석의 한 테이블에 회계담당자 두 명이 식사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고급 일식집에서 미팅이 있다고 하자 회계담당자들이 ‘부럽다’고 했고, 사장의 친인척의 친구였던 그 직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내 앞으로 할당된 식사비용을 그런 식으로 청구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라고 했다.

B씨에 따르면, 해당 팀장은 퇴근 시간만 되면 카톡으로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는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도록 강요했다. 본부장에게 들킬 걸 뻔히 알았지만, B씨는 시키는 대로 했고 결국 B씨가 시말서를 쓸 정도로 혼날 동안 팀장은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B씨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질책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팀에서 해당 팀장에 대한 말이 나오면, 팀장은 ‘너가 내 욕했지? 너가 내 말하고 다녔지?’라며 소리를 질렀고, 영문을 모르던 B씨는 팀장에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 얘기도 안 했다’고 말하면 ‘어디서 거짓말이야?’라며 사무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기 일쑤였다고 B씨는 호소했다.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은 일명 ‘직폭’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은 일명 ‘직폭’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 접어들었지만, 여전한 ‘괴롭힘’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은 일명 ‘직폭’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는 일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KLI)이 2021년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자의 고용변동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한 근로자 비율은 38%로, 이 중 65%의 근로자가 경력을 단절하고 싶거나 이직하고 싶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피해를 봤는데도 여전히 근로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조사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022년 6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7.6%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고, 23.6%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응답했다.

직장인이 경험한 괴롭힘으로는 ‘모욕 및 명예훼손’이 19.4%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부당 지시(16.1%), 따돌림 및 차별(13.4%) 순으로 나타났다. 괴롭힘의 심각한 수준을 묻는 말에는 39.5%의 응답자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는 비율도 11.5%로 높았다. 

그런데도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기관이나 상담 기관의 도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8%로 낮았다. 대부분 진료나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기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괴롭힘을 받은 직장인의 대다수는 업무능력이 저하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괴롭힘으로 인해 받은 영향으로(중복응답) ‘직장을 떠나고 싶다고 느꼈다(49.0%)’, ‘근로의욕 저하 등 업무 집중도가 떨어졌다(47.6%)’,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인 건강이 나빠졌다(28.7%)’, ‘직장 내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생겼다(22.3%)’, ‘직장 내 대응 처리 절차 등에 대해 실망감을 느꼈다(22.0%)’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사용자는 사실 확인을 해야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또한,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직장인은 직장 내 괴롭힘이 교묘한 수법으로 악의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정확한 정황을 알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원 수가 적은 회사는 입단속도 쉽고, 오래 근무한 직원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우가 높아 현실적으로 신고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대부분 상급자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편에서 증언하다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어 알고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괴롭힘 가해자에게 동조해 조직적으로 따돌림을 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사업장과 사장도 책임을 지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도 체계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교육을 한다는 것은 기업에서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9.4%의 응답자가 ‘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서열이 분명한 우리나라 직장 문화 특성상 ‘직장 갑질’은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다며, 수직적인 문화를 수평적인 문화로 바꾸려는 기업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고 경영진이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 존중하도록 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소송에서 내려지는 최고 형량이 대부분 과태료 처분인 것이 현실인 지금, 해당 사업장을 대상으로 더욱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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