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의 피해자를 지지하는 가상의 인물 A 씨의 입장에서 서술한 기사입니다. 피해자 입장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과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터뷰는 기사 말미에 첨부했습니다.) 한 사안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담은 만큼 다소 편향적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가 과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는 결국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은 비겁한 성추행자로서 세상을 떠났다.

박 전 시장의 죽음은 그가 실종된 뒤 몇 시간 뒤에 알려졌다. 그가 유서로 추정되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살아 돌아오길 바랐다. 그의 죽음을 알았을 때는 안타까웠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 사진/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 사진/뉴시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한 배경에 비서 성추행 의혹이 있다는 점을 알았을 때, 난 그에 대한 동정심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피해자가 용기 내 내뱉은 목소리마저 무시했기 때문이다. 비겁했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의 과거는 시민운동가의 모범이었다. 그는 한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1993년 변호를 맡은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은 대한민국 법 역사상 최초로 제기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다.

당시 박원순은 고소장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 피해를 본다." 그는 이처럼 권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성추행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유명해졌고 서울시장이라는 중책에 앉았다. 서울시장이 된 이후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으며 좋은 평을 받았다. 덕분에 역대 최초 서울시장 3선이란 성과도 이뤘다. 그의 서울시장직이 길어질수록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덤이었다.

모범적인 시민운동가에서 시작해 서울시장 3선, 그리고 차기 대선 후보까지. 이렇게 박원순은 낮은 위치에서 작은 목소리와 함께하며 점점 높은 위치와 큰 목소리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은 삶의 말미에서 작은 목소리 대신 큰 목소리를 택했다. 그의 유서에는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가 없었다. 대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 '모두에게 미안하다'며  '안녕'을 고했다. 인권변호사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주변의 이익만 챙긴 '이권 변호사'로 삶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죽었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시작이었다. 그의 장례식부터가 그랬다. 그의 장례식은 서울시가 주재한 특별 장으로 5일간 치러졌다. '성추행 혐의자의 장례를 세금을 들여 특별 장으로 치를 수는 없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려야 한다며 특별 장을 강행했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많은 지지자가 찾았다. 고인을 기리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해찬 당시 당 대표는 동료의 가는 길을 배웅해주겠다며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국회 의석수 과반을 가진 거대 여당 대표의 뜻이었다. 이 대표는 박 시장 빈소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인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며 의혹 자체를 말하지 못하게 했다.

여당 내에서는 피해자라는 호칭 대신 '피해호소인'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게 근거였다. 이해찬 의원은 "피해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민주당 내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도 '피해 고소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피해 고소인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고소인과 가족의 안전이 지켜지고 일상이 회복되도록, 경찰과 서울시 등이 책임 있게 대처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에 일부 기자들은 그에게 해당 표현이 옳은지 물었다. 이낙연 의원은 "더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그는 어쩌면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더는 필요치 않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무서웠다. 피해자라는 개인은 정치권, 지지층, 공권력, 여론에 비하면 너무 작은 존재였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거대 양당이 박 전 시장을 두고 싸우는 소리만 들렸다. 민주당에 박 전 시장은 이제 아킬레스건이었고 통합당에겐 공략지점이었다.

여론도 이를 따라갔다. 지지층은 박 전 시장 추모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보수 여론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조롱하기 바빴다. 정의당의 두 의원이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애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자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피해자의 고소를 정치적으로 연관 지어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피해자의 얼굴을 찾아보겠다며 실시간 검색어 순위엔 관련 단어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피해자가 느꼈을 허무함도 떠올랐다. 경찰은 박 시장이 죽은 이후 피해자가 낸 고소 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될 것임을 밝혔다.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세상에 더는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면 '공소권 없음' 처리는 타당하다. 하지만 공소장은 종잇조각이 됐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겨우 냈던 목소리였다. 박 시장은 죽음으로서 그 목소리를 무시해버렸다.

박원순의 죽음이 비겁한 이유다. 피해자는 자신의 받은 상처는 물론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 박 전 시장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의혹을 벗기거나 피해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지난 8월 26일 박 전 시장의 49재가 열렸다. 그동안 코로나19 재창궐, 역대 최장기간 장마 등 크고 작은 사안들이 있었다. 그의 죽음도 잠시 잊혔다.

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찰이 서울시청 직원들을 소환해 성추행 은폐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만, 수사가 더뎌지고 있다. 그만큼 진상 규명도 늦어지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아무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아직 박원순이란 사람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았다. 우리는 박원순 시장과 관련된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그에 대해 계속해서 얘기해야 한다. 그것만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서울시청 대응 실태 감사를 위한 국민감사청구 제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서울시청 대응 실태 감사를 위한 국민감사청구 제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무의식적인 성범죄, 권력자들 때문"

 

 남 모 씨(30대·남·직장인)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 "생명에 경중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전날 그가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고, 그의 죽음으로 해당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이었고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직책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유) "여당이 박 전 시장 건에 대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봤다. 박 전 시장에 대한 지적이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그의 공적을 기리고 슬퍼하는 데 바빴다. 사적으로는 할 수 있으나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이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 공적 성격의 기관의 처신 문제기 때문이다. 세금을 들여서 5일씩이나 공적인 장례를 치르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느꼈다. 이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박원순을 회상하며 그가 순수했다고 회고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이들을 보며 나라도 피해자와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 모 씨(30대·여·직장인)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그의 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애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냥 슬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겨우 용기 내 피해 사실을 밝힌 피해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 아직도 바뀌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분노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해왔다.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이뤄졌던 건 지금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 때문이라고 본다."

(2차 가해 문제에 대해서) "일부 여론은 피해자에게 '당당하면 나오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내가 보기엔 이미 피해자에 대한 여론의 인격 모독은 이미 심각하다. 피해자는 이미 가해자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 심지어 가해자가 세상을 떠나버린 마당에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이 상황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피해자 입장에선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에선 그의 신상을 알아내려는 움직임도 있다. 포털에서 '박원순'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비서 미모'가 뜬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신상을 알아내려는 것도 모자라 이번 사태를 정치와 연관 짓고 '피해자를 찾아가서 참교육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정말 무섭다. 피해자가 아닌 내가 이렇게 무서운데, 피해자는 어떨까 싶다. 그래서 피해자와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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