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박원순 피해자 보호법'·'성폭력특위' 등 박차
이수정 교수 "성폭력 관련 입법, 규범적 효과 있어"
류호정 정의당 의원, '비동의 강간법 개정안' 발의

지난 7월 10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직후 정치권은 성폭력 관련 법안 논의로 뜨거웠다. 대책 마련 요구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는데, 미래통합당(현재 국민의힘)은 성폭력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폭력 관련 법안 개정에 박차를 가했고, 정의당은 '2차 피해 방지법' 등을 언급하며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마련해 힘썼다. 한동안 언론을 달궜던 박원순 사태가 다소 조용해진 9월 관련 논의는 현재 어떻게 나아가고 있을까.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22일 오전 서울의 한 모처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7.22. /사진=뉴시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22일 오전 서울의 한 모처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7.22. /사진=뉴시스

미래통합당은 박 전 시장 사망 직후 관련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7월 14일 통합당은 양금희, 김정재 의원을 필두로 법안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날 김정재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박원순 진상 규명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성범죄만 피고소인이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이 되고 진실 규명이 차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날 오후 양금희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성범죄에 대한 고소가 있고 난 뒤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가 자살 등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하지 않고 검사가 고소사실에 대해 조사하고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도록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박 전 시장 사례처럼 범죄 고소 사건이 '공소권 없음'이 되도 종결되는 것을 막는 법안이다. 현행법안은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피고소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검사가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하도록 해 더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개정안은 통합당 김정재, 정점식, 김미애, 서정숙, 전주혜 의원 등 국회 여성가족위 소속 통합당 위원들과 김태흠, 김용판, 황보승희 의원 등이 공동 발의했다. 특히 양 의원 등은 개정안을 '박원순 피해자 보호법'으로 명명하며 박 전 시장을 직접 겨냥했다. 또 법 시행 이전 고소된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 사망 경우에도 적용하도록 부칙을 두어 박 전 시장 고소 사건도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양 의원은 "피고소인이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된다"며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는 피해자의 절규에 귀 기울여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인권과 안전, 그리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당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발의 외에도 7월 20일 성폭력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다른 법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했다. 김정재 의원이 특위 위원장을 맡았고 위원장 외 위원 11명으로 구성됐다. 원내에서는 양금희·서범수·전주혜·황보승희 의원이 참여했다.

또 원외 인사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방송 활동으로 알려진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비롯해 김삼화 전 통합당 의원·김성경 한국여성변호사회 대외협력이사 등이 참여했다.

이후 8월 20일 성폭력특위는 첫 회의를 했다. 김정재 통합당 성폭력특위 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성 인지 감수성을 제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당헌·당규에 명시할 것을 요청할 예정"이라며 "권력형 성범죄, n번방, 스토킹,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만나 모든 성범죄를 아우를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특위는 첫 회의에서는 성폭력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성범죄 근절 대책 마련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3개 분과.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으로 나눠 관련된 법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8.20. /사진=뉴시스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8.20. /사진=뉴시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관련 법안의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뉴스앤뷰는 국민의힘 성폭력특위에 참여 중인 이수정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진행 상황을 알아봤다.

먼저 이 교수는 '첫 특위 회의 후 경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인해 회의 자체가 힘들다"며 "기존에 있던 성폭력 관련 법안과 개정안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교수는 "제가 성폭력특위 중 관여된 분과는 '디지털 성범죄'에 '스토킹 폭력' 등 여성 폭력 전반이다. 해당 분야를 위주로 관여하고 있고 '권력형 성범죄' 분과는 정치인들이 주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폭력특위의 법안 발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인 2개월 안에 이뤄진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입법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법안 발의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기존 법안들을 살피고 재개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며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는 지난 N번방 법안처럼 관련 개정안들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이 교수의 성폭력특위 참여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여러 차례 "정치하러 간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를 인식한 듯 이 교수는 "당 차원을 떠나 제 개인적으로는 '스토킹 방지법'의 입법을 목적으로 성폭력특위에 참여했다. '스토킹 방지법' 관련 법안을 입법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시장에 대한 논란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논란까지 번졌다. 이 교수를 포함한 성폭력특위는 이와 관련된 논의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는 이미 여성 폭력 방지 기본법을 통해 정의는 되어있지만, 피의자 처벌이 어렵다는 점에 있다. 입법하게 되면 해당 법안에 처벌 규정을 넣을 수는 있다. 그 부분도 '권력형 성범죄' 분과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교수는 2차 피해 문제는 법안도 중요하지만 인식 개선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2차 피해 처벌은 인터넷 등에서 익명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만큼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다만 법이라는 것이 처벌을 위해 입법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벌 규정을 만듦으로 서 사람들에게 '이것은 불법이다'라는 인식을 만드는 규범적 의미도 있다. 2차 가해 문제도 처벌 규정을 만들면 이것이 증거로 남으며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경계심이 생겨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2차 가해는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상대방의 동의여부를 중심으로하는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8.12. /사진=뉴시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상대방의 동의여부를 중심으로하는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8.12. /사진=뉴시스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외면당했던 '비동의 간음죄' 카드를 다시 꺼냈다. 지난 8월 12일 정의당은 류호정 의원을 필두로 '비동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정의당의 21대 국회 5대 우선 입법 과제 중 하나로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12명이 공동 발의했다.

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앞서 나왔던 안과 유사하다. 다만 성범죄 처벌을 다루는 형법 32조 명칭이 '성적침해의 죄'로 바뀌는 것과 형법 제297조 강간죄 성립 구성 요건에 ▲상대방 동의 없이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 이용 ▲심신상실 등의 상태를 이용해 성교를 맺는 경우를 명시해 처벌하도록 하는 등 기존 개정안보다 확장됐다.

현재 법(형법 297조 등)으로는 폭행·협박으로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강간죄가 성립된다. 이는 가해자들이 쉽게 법망을 피해갈 수 있고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류 의원이 발의한 비동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폭행을 동반한 위협이 없더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라고 판단될 경우 강간죄로 처벌이 가능해진다. 또 위계와 위력을 통한 성범죄 처벌 범위도 확대된다. 현행 헌법으로는 업무상 관계로 한정된 위계와 위력을 통한 성범죄만 처벌로 인정됐다. 이번 개정안은 위계 관계 범위를 대폭 넓혀 의사와 환자 사이, 종교인과 신자 사이 등 경우도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류 의원은 개정안 발의 당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으로 간음한 경우에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법원의 해석은 더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며 "6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강간죄, 이제 바뀌어야 한다.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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