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지지했던 가상의 인물 A씨의 입장에서 서술한 기사입니다. 고인을 지지했던 실제 지지자들과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터뷰는 기사 말미에 첨부했습니다.) 한 사안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담은만큼 다소 편향적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지지자다. 그가 오래 전부터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을 때부터 서울시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 난 그의 행보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항상 약자 편에 선 사람이었고 서울시장이란 중책에 올라서도 그러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7월 29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매체들이 쏟아내는 그의 사망 소식은 거짓말 같았다.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2020.07.13. /사진=뉴시스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2020.07.13. /사진=뉴시스

내가 아는 박원순은 성추행을 할 만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993년 있었던 서울대 우 모 조교가 A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 이른바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법 역사상 최초로 제기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다. 당시 박원순은 고소장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그는 이처럼 권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성추행 행위의 무서움을 아는 인물이었다.

박원순은 이종걸·최은순 변호사와 함께 피해자를 대리했고 6년간의 끈질긴 법적 공방 끝에 승소를 이뤄냈다. 그 공로로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에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며 여성 인권 상장에 앞장섰다. 지난해 11월 그는 한 행사에 참석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국 여성 인권을 다룬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고 절망감이 들었다"고 슬퍼했다.

그랬던 그가 비서를 성추행해왔다니. 나는 믿을 수 없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사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짜 뉴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연관됐다'거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유병언 구원파 교주의 죽음이 박 전 시장과 관련있다'는 식의 얼토당토 않는 내용들이었다.

보수 유튜버들의 행태도 눈쌀을 찌뿌리게 했다.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을 찾아가 마치 관광지처럼 소개하는 유튜버가 있는가 하면, 근거없는 음모론과 고인에 대한 모욕은 물론 "박원순의 오늘이 문재인의 내일이 될 것"이라는 비인격적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가짜 뉴스와 극우 세력. 이들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진보 정치인들을 떠올렸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던 이들은 모리배의 수작으로 무력하게 무너졌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박 전 시장의 가는 길 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박 전 시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지지자들은 그의 명예를 지켜야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만큼 추측보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고인의 명예는 지켜져야만한다.

다행히도 그의 장례는 서울시 주재로 5일간 진행됐다. 준비 과정에서 잡음이 있긴했지만 서울시장으로서 고인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나는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와 같이 고인을 지지했던 이들을 만났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분향소에는 지지자들이 꽃을 놓았고 빈소에는 동지들이 화환을 놓았다. 현직 여당 의원들과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도 있었다. 대부분이 박 전 시장이 더 나은 민주사회를 만들어 가던 과정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시 당대표는 고인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당대표라는 직책을 잠시 내려놓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의 가는 길을 배웅한 것이다. 나는 이들을 보며 함께 고인의 명예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지난 8월 26일 박 전 시장의 49재가 열렸다. 그동안 코로나19 재창궐, 역대 최장 기간 장마 등 크고 작은 사안들이 있었다. 그의 죽음도 잠시 잊혀졌다.

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경찰이 서울시청 직원들을 소환해 성추행 은폐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만 수사가 더뎌지고 있다. 그만큼 진상 규명도 늦어지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아무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아직 박원순이란 사람에 대해 해야할 이야기가 남았다. 우리는 박원순 시장과 관련된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그에 대해 계속해서 얘기해야 한다. 그것만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원순 지지자들 "그의 죽음은 큰 슬픔", "우리는 그를 추억한다"

 

윤 모씨(50대·남·직장인)

(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이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과거 인권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입지를 쌓아올린 인물이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부터 그를 지지했다. 그가 쓴 책들을 읽으며 그를 더욱 지지하게 됐다. 그를 '원순씨'라고 불렀고, 그의 소박했던 모습을 좋아했다. 서울시장이 된 뒤에도 다양한 복지 정책을 통해 자신의 정치 철학을 보였던 점도 좋았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 "박원순의 죽음은 큰 상처가 됐다. 주변인들이 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점도 씁쓸하다. 그래서 그가 죽은 이후 지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계속 봤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아직도 박원순 시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광복절 집회로 인한 코로나19 재확산도 박원순 시장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모씨(50대·여·주부)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 "처음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어쩐지 불안했다. 이후 성희롱 관련 보도가 나왔는데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박 전 시장의 평소 행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에 그의 사망 발표 보도를 봤을 때는 화가 났다. 아무런 말도 없이 지지자 곁을 떠난 박 전 시장이 미웠다. 하지만 CCTV 화면 등에 찍힌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마음을 돌렸다. 그의 모습이 쓸쓸해 보이고 지쳐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순박했던 '원순씨'를 동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박 전 시장의 고소인에 대해) "박원순이 죽고 나서 애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원순에 대한 애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범진보진영은 젠더 감수성이란 잣대로 여론이 갈렸다. 보수 유튜버들이 고인 모독을 일삼고 있는 와중에 한 뉴스는 박 전 시장을 겨냥해 "어떤 자살은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고 비판했다. 진보진영은 이렇게 안팎으로 힘든 상황에 닥친 것이다. 박원순에 앞서 노무현, 노회찬 등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공적과 정의로웠던 삶은 마지막 행보로 인해 모두 조롱거리가 됐다. 이들이 과연 조롱받는 삶을 살아왔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때문에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인 우리는 그를 추억하고 그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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