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 90% 이상 가정에서 발생…사회적 관심과 대책 절실
가정 내 감춰진 학대…적발과 방지 위한 전문 경찰 등 필요
학대방지 시스템 부재…시설 종사자 근무조건 등 처우 ‘열악’

[뉴스엔뷰]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오는 2026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인 인권 문제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갖은 폭력에 시달리며 학대받는 노인의 수가 나날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혹은 요양병원에서 언어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노인은 심한 수치심과 불안감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신고 접수된 노인학대 건수만 1만9391건으로 전년 대비 14.2% 늘었다. 문제는 노인학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행법상 노인학대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제3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노인학대 피해자가 사연을 전하고 있는 모습.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신고 접수된 노인학대 건수만 1만9391건으로 전년 대비 14.2% 늘었다. 사진/뉴시스
제3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노인학대 피해자가 사연을 전하고 있는 모습.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신고 접수된 노인학대 건수만 1만9391건으로 전년 대비 14.2% 늘었다. 사진/뉴시스

◇ 학대 행위자 중 상당수가 가족…기관에 맡겼더니 방임과 홀대 

최근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2013년(5.7점)에 비해 소폭 상승해 6.3점으로 증가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하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저소득층에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그중에서도 노인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6명이지만, 70대 이상의 자살률은 40명을 훌쩍 넘었다. 이들의 여가생활 만족도 역시 하락했다. 60대 이상에서 여가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겨우 18.8%로 10대의 대답(47.9%)과 비교했을 때 특히 낮았다.    

이런 문제는 노인의 인권을 제대로 정립하고, 방어해줄 제도적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가정에서 혹은 전문요양기관에서 암암리에 학대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노인학대 유형의 과반수는 정서적·신체적 학대다. 이외에 ▲방임 ▲경제적 학대 ▲성적 학대 ▲자기 방임 ▲유기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개 신체 및 정서적인 학대를 가하는 가해자는 배우자, 자녀로 나타났으며, 방임의 경우는 기관 혹은 자녀로부터 발생하는 비중이 높았다. 

학대가 주로 발생하는 장소는 가정이었는데, 92.6%로 가장 높았다. 이는 전년 대비 3.6% 늘어난 수치다. 이들이 가하는 학대 행위를 살펴보면 비난, 모욕, 위협 등의 언어 및 비언어적 행위로 노인에게 정서적 고통을 유발하거나 노인을 무시하고 대화 단절, 의사결정 등이 필요한 사건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다. 또한, 노인의 의사에 반해 경제권과 재산을 빼앗아 가거나 노인에게 의식주 및 의료를 적절하게 제공하지 않아 그들의 심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복지시설종사자에 의해 일어나는 시설에서의 학대 유형 역시 가정 내 발생유형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이 가하는 학대는 가족이 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가족의 분통을 산다. 학대 유형 중 구타와 욕설 등의 언어, 신체적 학대도 문제지만, 방임도 큰 문제가 된다. 일례로, 주 1회 이상 목욕을 시켜준다고 했지만, 거의 두 달 동안 목욕을 시키지 않거나 머리조차 감겨주지 않은 경우다. 전담 간병인을 배치하지 않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노인은 한 개의 그릇에 반찬과 국물까지 한꺼번에 부어 잡탕처럼 배식한 사실도 CCTV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고, 휠체어를 마구잡이로 끌고 다녀 벽에 부딪혀 멍이 들거나 낙상사고를 당하는 일도 흔하다.   

학대당한 노인은 심한 수치심과 불안감을 느끼며 매사에 지나치게 순정적이고 아첨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지레 포기하는 일이 잦고, 심한 배신감으로 분노의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억지로 억압하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 대인관계에서 공격적으로 표출하기도 하고, 대인관계를 기피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로 규정하고, 삶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학대당한 노인의 또 다른 특징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자녀에게 학대당했다 하더라도 과거 이들에게 쏟아부었던 정성과 감정을 생각해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대 피해 노인은 복합적인 감정적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주 북구 중흥3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관계자들이 지난 설 연휴에 노인에게 명절 음식 꾸러미를 전달하는 모습. 전문가들은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광주 북구 중흥3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관계자들이 지난 설 연휴에 노인에게 명절 음식 꾸러미를 전달하는 모습. 전문가들은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 근절되지 않는 노인학대…왜?

최근 노인학대가 증가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해 노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한 돌봄 스트레스와 노인과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봤다. 특히 가정 내 벌어지는 노인학대는 대부분 가족 내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에 사회 정서상 학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 문제는 엄연히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11개의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과 24개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통해 노인학대 신고접수(1577-1389)부터 현장 조사, 학대 피해 노인 및 가족에 대한 통합적 지원 등을 요청할 수 있다. 의료기관, 노인복지시설, 장기요양기관 등에 종사하는 사람은 노인학대 신고 의무자다.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노인복지법 제61조2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경찰에서 운영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 Anti-Abuse Police Officer)의 숫자도 더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야 노인학대 예방·인식 개선 및 신고 활성화를 위한 홍보부터 학대 우려 노인 모니터링을 통해 예방-수사-사후관리까지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시설에서의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시설 내 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저임금의 근로조건 등을 개선해 노인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의 생태계로는 인권 감수성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인력들로 노인요양시설의 종사자로 채우기는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종사자도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해 시설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의 성격이나 자질 ▲노인의 기질과 행동 ▲인력 부족과 인원 배치 어려움 ▲직원의 교육과 지식의 부족 ▲스트레스가 노인학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법적인 체계도 시급하다. 현재 노인학대를 규율하는 법률로는 ▲노인복지법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형법 등이 전부다. 하지만, 노인복지법은 학대 행위에 대한 규제와 처벌 위주여서 노인의 권리보호와 지원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시설의 장이 노인 학대 예방 교육을 평소에 실시하고, 학대 발견 시 즉시 신고하는 등 해당 업무에 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면책 규정에 적용받는다.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은 적용 대상이 가정 내 학대 행위로 한정돼 있어 노인복지시설 등에서 발생한 범죄는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지난 2021년 4월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노인학대를 예방하고 학대 피해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책무를 부여하는 학대 피해 노인 지원법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했지만, 현재까지 계류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가정과 시설에서 벌어지는 노인학대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여러 가지로 미비한 점이 많다고 꼬집었다. 이에 노인학대를 전담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 대한 법률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동일한 곳에서 학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기관장이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반복적인 캠페인을 통해 노인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역할과 업무에 대해 알려야 한다. 또한 누구라도 노인학대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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