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괴롭힘 금지’ 시행에도 ‘태움’은 현재 진행형
고 강도·야간 근무 ‘스트레스’ …‘인원 부족’ 해결해야

[뉴스엔뷰] 우리나라 근로자의 73.3%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직장 괴롭힘 문제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이 회사 조직에서 이어져 온 관행이라며 방관하거나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어 피해자의 한숨은 더 늘어나기만 한다. 

그중, 간호사의 인권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태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뜻의 ‘태움’은 간호사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직장 괴롭힘’의 문제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흔히 ‘후배 교육’, ‘후배 길들이기’라는 명목 아래 간호사 직종의 엄격한 ‘규율’로 자리 잡았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고 서지윤 간호사 추모비 앞에서 열린 3주기 추모제 모습.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는 서 간호사의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태움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진/뉴시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고 서지윤 간호사 추모비 앞에서 열린 3주기 추모제 모습.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는 서 간호사의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태움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진/뉴시스

◇ 간호사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태움’

“출근 첫날부터 약물 믹스, 안티 조제를 시키더니 빨리하지 못한다고 재촉해 결국 앰플을 깨뜨렸습니다. ‘결국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며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며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바늘로 손을 찌르려는 위협도 가했습니다.”

“주말 데이는 막내가 간식 준비하는 거라고 해서 백화점에서 빵을 사서 갔더니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걸로 사 왔다며 온갖 욕을 퍼붓더라고요.”

최근 ‘태움’이라는 명목으로 후배 간호사를 괴롭혀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의정부 을지대병원의 간호사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의료계에서 자행돼왔던 태움이라는 악·폐습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을지대병원 측은 간호사 간 서면 인수인계 활성화, 병동 순회 당직제 등의 개선안을 내놨다. 또한, 1년 동안 퇴사 불가라는 특약 조항도 삭제했다.

간호사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면서 이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간호사 태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현직 간호사들은 ‘태움 문화’가 간호 서비스 질 저하를 가져오는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법적으로 처벌 조항을 강화하며 ‘간호사 태움’ 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다.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골자로 한 ‘태움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태움으로 고통받는 간호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가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가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간호사 태움’도 결국 제도적 환경 문제

‘태움’은 간호사라면 의례 당하는 관행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가 간호사 태움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현직 간호사 68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 간호사의 84.7%가 ‘태움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96.7%의 간호사가 태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답했다.

태움의 원인을 묻는 말에는 간호사 인력 부족 및 업무량 과중(51.3%)이 가장 많았고, 선배 간호사 개인의 성격 문제(38.2%), 신규간호사의 업무미숙(5.3%)이 뒤를 이었다. 이에 대다수의 간호사는 태움 문화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제한’이 필수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10년 차 간호사 A씨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태움은 한 사람의 육체와 감정을 완전히 다 소진하고, 스트레스를 가중해 의료사고로도 이어질 소지가 있다”라며 “태움 문화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 수를 늘려 1인당 환자 수를 적정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의 노동강도가 세다는 것이 문제”라며 “밤 근무 때문에 간호사의 급여가 세 보일 뿐, 실질적인 급여가 높은 편은 아니다. 국내에서 여성이 대다수인 직종에서 3교대를 서는 일은 드문데, 간호사들은 95%가 여성으로 이뤄졌지만, 밤 근무를 한 달에 8~9번 선다”라며 체력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신입 교육도 선배 간호사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렇게 높은 업무 강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경직된 조직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움 문화가 당연시되고 있는 문화에서는 퇴사율도 높다. 국립대병원 간호사 퇴직 현황을 살펴보면, 2021년 기준 54.4%의 간호사가 입사 2년 이내 퇴사했다. 입사 1년 이내 퇴사한 비율도 35.5%를 차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태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 현장 자체가 힘든데 제도적인 문제로 해결되겠는가?”라고 의문을 표하며 “태움을 신고해 조사한다고 해서 절대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병원의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도록 제도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문제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간호사 처우 개선 문제가 현재 의료법과 달라지는 내용 중 핵심적인 사안이 될 것”이라며 “의원급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도 한데 묶어 전반적으로 간호 업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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