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된 익명, 진실 혹은 불만의 표출…‘소셜 미디어’
혐오와 차별의 ‘말·말·말’…젠더 갈등 부추기는 사회
클릭 수에 목메는 언론, ‘갈등 조장’ 정치권이 ‘문제’

[뉴스엔뷰] 대한민국이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녀 갈등은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작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층이 즐겨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여론에 의해 선동된 자극적인 키워드와 특정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말해 일반 사람들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 강도 높은 목소리는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가령, 평상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이 남녀갈등이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젊은이들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정치권의 좋은 양념이 되기도 한다. 논란과 갈등은 잠재우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곳에서 우리 사회의 격렬한 젠더 갈등을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치는 것이다.

2017년  안티페미협회 회원들이 ‘페미, 여성계’ 해산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이같은 젠더 갈등은 정치적 전략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진/뉴시스
2017년 안티페미협회 회원들이 ‘페미, 여성계’ 해산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이같은 젠더 갈등은 정치적 전략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진/뉴시스

◇ ‘혐오’로 가득한 세상…실체는?

얼마 전 우리나라의 유명 배우가 영국인 연인을 공개하자 며칠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우매한 김치녀보다 서양인이 훨씬 낫지”, “얼마나 한국 여자에 질렸으면 유럽인을 만날까?”라며 논점에서 벗어나 한국 여성 자체를 비하하는 남성으로 가득했다. 이에 질세라 여성들은 “이때다 싶어 한국 여자 비하하는 남자들은 무뇌충”이라며 남성들을 향해 강한 비난을 던졌다. 

‘여초’와 ‘남초’로 구별되는 특정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의 세상은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군상들의 집합체와 같다. 특히 이곳에서는 유독 ‘페미니스트’를 가리키는 ‘페미’라는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남여 전쟁을 일으키는 주력 키워드가 ‘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애나 결혼생활에서의 답답한 마음을 고민의 형태로 털어놓는 글에는 “너도 페미구나?”로 시작되는 피드백이 달리고, 곧이어 남과 여로 패를 나눈 사람들의 논쟁으로 수백 개의 댓글이 연달아 달리곤 한다.

원래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 해방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남성들도 평등을 외치며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여자친구가 페미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그렇게 열 내는 거 보니 너도 페미구나?’ 등처럼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페미’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날카로운 시선을 어김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즉,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꼬아 생각하며, 예민하게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덫을 페미라는 단어를 통해 씌우는 것이다. 혹은 ‘여성우월주의’에 빠진 운동권 여성으로 매도하며 적대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이런 온라인 글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한남충(한국남자+벌레)’, ‘이대남(20대 남성)’ 이라며 20~30대 남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한국 남성=여성혐오에 빠진 무뇌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된다. 대학생 A씨(남, 21세)는 “학교에서 젠더 갈등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을 딱히 겪은 적이 없다”라며 “인터넷에서 쓰는 용어도 실제 생활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B씨(여, 25세)는 “인터넷에서 다른 성별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물을 흐리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남성들이 남녀평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사실 마음속 깊이 불만이 있는데 표현을 안 하는 것인지, 익명이라는 점을 이용해 온라인 세상에서 가면을 쓰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의 성평등 인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젠더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의 성평등 인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젠더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공존’보다 ‘분열’ 조장하는 언론과 정치인

익명성을 무기로 한 온라인 세상은 사람들의 솔직함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황색 비난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본능에 충실한 비논리로 가득하기도 하다. 특히 이런 논리를 확장하고, 파생하는 역할을 언론과 정치권이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원정 부연구위원의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본 2021년 상반기 ‘젠더 갈등’ 논의 양상’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재작년 4·7 보궐선거 이후로 ‘젠더 갈등’ 관련 언급이 대폭 증가했다. ‘여성’, ‘남성’과 같은 일반적인 젠더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총 5만1386건의 인터넷 게시글이 있었고, 4월 7일 당일에는 790여 개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후 7월에는 국민의힘 유승민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발표하고, 하태경 의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시점에 맞춰 해당 공약과 관련한 첨예한 대립이 주를 이뤘다. 이후 7월 30일에는 하루에 846개의 젠더 이슈 관련 게시글이 올라왔는데,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국가대표 여자 선수의 페미니스트 관련 논란이 주를 이뤘고, 관련 언론보도도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클릭’에 민감한 저널리즘의 결과라 지적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내용으로 해당 커뮤니티의 내용을 받아 적어 보도하는 등 화제성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일부 특정 집단의 논쟁을 검증 없이 보도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키운다며 비판했다. 

젠더 갈등은 정치적 전략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 대선이 특히 그랬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와 3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58.7%, 52.8%였다. 반대로 20대와 30대 여성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58%, 49.7%)으로 향했다. 6·1지방선거에서는 젠더 쏠림 현상이 더욱 극명해졌다. 20대 남성의 65.1%는 국민의힘을, 20대 여성의 66.8%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다. 30대도 이런 성별 차이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런 젠더 쏠림 현상은 정치권이 젊은 층의 표를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들의 심리를 자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관련 무고지 신설 공약을 내걸었고, 이재명 후보는 ‘개혁의 딸’이라는 의미의 ‘개딸’임을 강조했다. 

M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평등한 유년 시절을 보내왔고, 성평등 의식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처지에 불리한 상황을 야기하는 사건이나 정책에는 목소리를 높인다. 즉, 정치권은 입시, 취업 등으로 불안한 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었고, MZ세대는 자신들을 더 끌어올려 줄 것 같은 정당에 표를 던진 셈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젊은 층을 역이용하는 정치권과 이에 휘둘리는 표심이 극단적인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 마음껏 분풀이 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젠더 갈등’이 심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2030 세대가 앞장서 끌고 가는 형태라기보다는 이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확대 및 재생산하는 사회적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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