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적 연구 투자가 퇴보하는 R&D 로드맵 만들어
내년 원전 R&D 약 400억 원으로 2배 이상 확대 계획
글로벌 R&D 중 2,700억 신규 사업도 급조 가능성 높아
조승래 의원, “내년도 글로벌 R&D 예산 3분의1 표지갈이”
양향자 의원 “R&D 예산 살려 ‘소부장’ 국산화 연구해야”

[뉴스엔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침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여야간 충돌이 더욱 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 10조원이나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하면서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며 “이번 예산안에는 첨단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의 'R&D 예산삭감,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의 'R&D 예산삭감,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하지만 과학계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원전 중점사업으로의 회귀 등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역에만 집중적으로 R&D 예산을 증액시키고, 꾸준한 R&D 투자가 필요한 주요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품목에 대한 투자를 줄임으로써 국산화의 길을 요원하게 만드는 등 ‘R&D 예산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이지만 미래 대한민국 경제가 잃게 될 것이 너무 많다는 우려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원전은 맞고 재생에너지는 틀리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지난달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 기조에 중소·자영업자 R&D는 대폭 삭감 됐음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원전 R&D 확대 계획을 밝히며 친원전 드라이브 발 맞추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내년도 중기부 R&D 예산이 1조 7,700억 5,600만 원에서 1조 3,207억 9,000만 원으로 25%이나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소기업·소상공인 관련 R&D 11건은 전액 삭감됐으며 소재부품장비 R&D도 84%나 삭감됐다. 이에 김 의원은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R&D 예산 삭감 배경에 우리나라에 과학자는 필요없다고 주장한 천공이 개입한 것 아니냐 는 얘기가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가 R&D 삭감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고 잊지 않다 보니 이런 소문마저 도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실제 천공이 올해 1월 2일 업로드 한 영상에서 “우리나라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과학은 연구하지 않고 보기만 하면 된다. 서양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올려놓은 보고서를 보면 벌써 과학자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중소기업 관련 R&D는 삭감된 반면, 중기부는 올해 원전 중소기업 중장기 경쟁력 강화 방안을 통해 5년간 총 6,750억 원을 투입 하겠다고 밝혔다. R&D 1,500억 원, 민간펀드 250억 원, 금융지원 5천억 원 등 막대한 규모의 지원 정책을 세운 것이다. 이는 지난해 중기부가 원전 중소기업 기술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기존 R&D 사업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215억 원 규모의 원전 중소기업 R&D를 갑작스레 공모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다. 당시 윤 대통령의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신규 예산 편성 없이 사업 공모가 진행돼 전형적인 졸속 추진 정책으로 비판 받은 바 있다. 김 의원은 “중기부가 작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원전 R&D 를 급조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친원전 코드 맞추기에 나서는 형국” 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중기부는 작년 원전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방안 발표 시 2023년부터는 별도의 원전 중소기업 특화 R&D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예산에도 신설은 없었으며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도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중기부는 갑작스럽게 기존에 진행하던 3가지 R&D 세부사업(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 창업성장기술개발, 상용화기술개발)에 원전 중소기업 R&D를 편성했다. 작년 187억 원, 올해 188억 8,000만 원에 이어 내년에는 약 400억 원을 계획 중으로 올해의 2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김 의원은 “중기부가 말로는 원전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으나 원전 특화 R&D 신설조차 하지 않고 기 진행 중인 R&D 사업에 원전 끼워넣기를 반복 하고 있다”며 “대통령 입맛에 맞춰 원전 R&D 사업들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기존에 계획되어 있던 R&D 과제를 기대하던 다수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전세계적으로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에너지 투자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 연간 에너지 투자규모도 재생에너지가 원전에 비해 약 10배 이상 차지한다”며 “ 실제 국내 원전 업체의 해외 매출액도 2015년 1,343억 원에서 2021년 471억 원으로 1/3 토막 난 상황으로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원전 R&D 지원 정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질타했다. 또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약 8%로 OECD 최하위권 인데 윤석열 정부 들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향했다”며 “ 이런 가운데 재생에너지 R&D 마저 외면한 것은 국가 미래를 내팽개치는 초악수 를 둔 것”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원전분야 R&D 수행에 대한 중기부의 역량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어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지만 중기부가 원전분야 경험과 노하우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기부 R&D 전문기관인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원자력 분야 내부전문가와 전담부서도 현재 없는 상황인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결국 중기부의 원전 중소기업 R&D 정책은 윤 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발맞춘 생색내기용 투자 및 지원 정책에 불과 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 국내 경쟁력은 하락,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상승 

내년 글로벌 R&D가 올해 5천억 수준에서 24년도에 1.8조원으로 급증한 가운데 이 중 약 6,400억은 표지갈이식 사업이며, 신규 사업인 약 2,700억도 급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 R&D 예산 현황’에 따르면 글로벌 R&D 중 6,360억 원은 작년에 글로벌 R&D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업을 새롭게 편입시켰거나, 기존 사업명에 단순히 ‘글로벌’이름만 붙인 것으로 나타났다. 10개의 사업은 기존에 있던 사업 전체가 글로벌 R&D로 새롭게 분류되었으며, 11개 사업은 일부 내역 사업이 추가로 글로벌 R&D로 분류되었고, 과기부의 ‘집단연구지원’사업의 경우 기존에 운영하던 선도연구센터 사업을 글로벌 선도연구센터로 이름만 변경했다. 
이에 대해 조승래 의원은 “과기부가 당초 올해 6월에 편성한 글로벌 R&D 규모가 6천억 수준이었는데, 불과 두 달만에 1.8조원 규모로 3배 가량 늘리다보니 부실한 표지갈이식 예산, 급조한 신규 예산, 과도한 증액 등이 발생했다”며 “과기부가 어떤 근거로 글로벌 R&D 예산을 구분하는지 의문이다.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조차 자신들의 사업이 R&D 예산으로 분류되어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가운데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국내 생산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양향자 의원이 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매년 1,000만 달러(한화 약 130억 원) 이상 수입하는 주요 첨단산업 소부장 품목 중 30개는 국산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바이오헬스, ICT 등 5 개 분야 총 수입액은 3 조 3,550억 원, 수입 기업 수는 2만 5,000여 개에 달했다. 그리고 활용 분야가 다양한 범용산업 분야는 그 규모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철강, 기계, 전자기기 등 4 개 항목에서 국내 생산 가능성이 있는 품목은 총 105 개로 분석됐는데, 수입액은 15조 7,000억 원, 수입 기업 수는 3만 3,000 개에 육박한다. 내수화 가능성이 높은 품목을 직접 생산할 경우 방대한 크기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

 

정우성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구개발(R&D)예산 관련 현안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우성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구개발(R&D)예산 관련 현안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주요 수입 품목을 국산화하려면 초기 연구 개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내년도 중기부 예산안에 따르면 관련 예산은 올해 대비 평균 75% 감소했다. 이중 R&D 사업만 추리면 감소율은 86.5%에 달한다. 이에 대해 양 의원은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 속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며 “꾸준한 R&D 투자로 주요 소부장 품목을 국산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예산을 조속히 정상화해 공급망 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이번 R&D 예산 삭감에 대해 이전 문재인 정부의 주 52 시간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잘못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연구성과는 오히려 부실해지고 연구수행포기 건수가 늘어났다며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물론 사업 진행에 있어 수정 보완되어야 할 점은 있겠지만 막 뿌리를 내리고 있는 R&D 산업의 전체를 뒤흔들어 그 자양분마저 없애는 것은 과도한 국정 운영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것이 과학계에서 빈대를 없앤다고 초가산간을 태우려는 정부가 원망스럽다며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엔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