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R&D 예산, 23년 대비 5조2000억 원 대폭 삭감
과방위 전문위원실, 정부 R&D예산 편성과정 위법 지적
“이공계 위기에 윤 정부의 R&D예산삭감은 무능의 극치”

[뉴스엔뷰]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작년 12월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올해 3월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과학계 이권 카르텔을 갑자기 언급하며 ‘R&D 예산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이 투자전략은 3개월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지난 8월 정부는 내년 정부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나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며 강행을 예고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과기부는 25개 출연연 총 예산을 13.2% 삭감했고, 주요사업비는 무려 25.2%나 삭감했다. 그 결과 국가전략사업에 해당하는 반도체 관련 사업,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의 주요 아젠다였던 탄소중립사업, 신재생에너지 등 국가 미래 먹거리의 핵심 사업 예산들이 줄줄이 삭감됐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김태년 의원은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국가 주도의 연구 개발은 곧 잠재성장력과 직결된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엇박자를 의미하며 국가 시스템이 붕괴 위기라고 경고했다. 조승래 의원은 “과기부가 큰 틀에서 R&D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해 출연연 예산을 삭감했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기관별 삭감률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과기부 스스로 명확한 근거도 없이 R&D 예산을 졸속으로 심사했다고 자인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지어 과기부는 R&D 예산의 비효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 조차도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고 있다”며 “이번 R&D 예산 졸속 삭감 사태야 말로 비효율 그 자체인 만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R&D 예산 편성 과정에서 과학기술기본법도 위반

기상청 R&D 예산은 전년 대비 17.5% 삭감되었다. 특히 외부 기관이 수행하는 주요 R&D 예산은 22.7% 삭감되면서 기상청이 본래 추진하고 있던 연구는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기상청의 ‘스마트시티 기상기후 융합기술 개발’과 같은 주요 R&D 사업은 예산 삭감으로 인해 17억 3,000만 원이 증발하여 연구개발기관에 혼란과 차질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비판에는 그렇게 과학을 강조하던 이 정부가 정작 과학이 필요한 R&D 예산에는 대통령 한마디에 왜 주먹구구식이 되어야 하는지 정말 안타깝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31일에 주최한 ‘2024년도 예산안 토론회’에서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R&D 예산 감액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도 R&D 예산 배분·조정 과정에서 심의·통보 시한을 넘겨 과학기술기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국회 상임위원회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제기됐다 . 주요 R&D 사업의 경우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조정에 앞서 과학기술기본법 제12의2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에 따른 과학기술자문회의의 예산안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심의를 거쳐 마련된 예산의 배분․조정 결과를 매년 6월 30일까지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알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기정통부의 2024 년도 R&D 예산안은 법정 시한 53일을 초과해 8월 22일에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마쳤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은 “위법한 예산편성을 국회가 용인하면 안 된다”며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 벌써부터 무너지고 있는 R&D 인력 시스템 

R&D 예산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력풀 사용과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축소 추진은 이미 R&D 산업에 빨간 불을 켜고 있다. 출연연 주요사업비 삭감에 따른 영향으로 박사후연구원, 학생연구원 등에게 지급해야 하는 내년도 외부인건비 감소율이 거의 3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정통부 소관 2024년 예산안 검토보고서의 출연연 주요사업비 비목별 분석자료를 보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14개 출연연의 올해 대비 내년도 예산안의 외부인건비 감소율이 평균 29.6%에 달했다. 과방위 전문위원실은 보고서 검토 의견에서 “인건비의 감소는 주로 비정규직 연구원과 학생연구원들에게 집중적으로 영향을 주어 후세대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과학기술 투자 및 인력양성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켜 국가 과학기술의 인적기반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공계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공학계열 석·박사 과정 중도 탈락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5년간 1만 6천여 명의 학생이 중도 탈락했으며, 다수 대학이 기술·공학 관련 대학원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 (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일반대학원 석사 충원율마저 각각 76.5%, 62.9%, 80.6%, 76.6% 에 그쳤다.

또한 취업이 보장될 거라는 반도체 관련 학과도 중도 탈락이 점차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2022년 전국 반도체 관련 학과 중도 탈락 현황’에 따르면 전체 31개 대학, 57개 학과에서 지난해 중도 탈락한 학생 비율은 평균 8.1%로 전년도 4.9% 보다 1.7배로 뛰었다. 이는 내년 국가 R&D 예산 삭감이 현실화될 경우 연구현장의 불안은 더 커져 이공계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안민석 의원은 “국가 발전 동력인 R&D 예산이 대폭 줄어 교육‧연구현장이 뿌리째 흔들리는데 정부와 여당은 제대로 된 삭감 이유도, 책임 있는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 R&D 삭감은 무능의 극치이며, 무능한 정부가 국가의 미래마저 망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과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번 정부의 R&D 예산 삭감 추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근시안적인 결과보다는 지속적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R&D라는 산업의 특성을 정부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과 삭감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즉 R&D에 대한 철학이 과연 윤석열 정부는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SBS D포럼'과의 특별대담에서 내년도 R&D 예산 축소 논란과 관련해 "정말 필요한 분야엔 과감히 투자할 것이고, 재임 중에 R&D 예산을 많이 늘릴 것"이라고 밝히며 AI와 디지털 기술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담을 접한 전문가들은 정말 필요한 분야가 명확하지 않으며 다시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 어느 시점인지, 자유와 민주주의 확장에 사용되는 과학기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가 운영을 위한 백년지대계 중 정부의 R&D 청사진은 과연 어디쯤 놓여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R&D 예산을 대폭 축소하면서 국가백년지대계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과학계는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축소에 깊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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