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국수본부장 낙마, 학폭 사건의 교훈

[뉴스엔뷰] 자녀를 키우면서 성적만큼 중요한 게 ‘학교폭력’(학폭) 문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든지 학폭에 자녀가 연루되지 않도록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부모들의 반학폭 정서에 역행하는 역린의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의 학교 폭력 논란으로 임기 시작 하루 전 사의를 표명했다. 또 대통령실은 임명을 취소했다. 사진은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023.02.2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의 학교 폭력 논란으로 임기 시작 하루 전 사의를 표명했다. 또 대통령실은 임명을 취소했다. 사진은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023.02.26. chocrystal@newsis.com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불과 하루 만에 학폭 논란으로 목이 날아간 정순신 변호사.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이른바 잘 나가는 특수부 출신 검사였다. 정 변호사는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이며,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인 2018년 7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임명됐던 윤석열 사단 출신이었다.  

정순신 학폭 논란은 경찰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검사 출신인 정 변호사를 국수본의 수장으로 앉히는 데 대해서 경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공염불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내부 조직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찰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를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 변호사를 국수본 본부장에 낙점했다. 

검찰 출신 국수본 본부장은 임기 시작일을 하루 남겨 놓고, 임명이 취소됐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지난 25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7시 반 경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김 홍보수석은 “임기 시작이 내일 일요일인 만큼 사표 수리를 하는 의원면직이 아닌 발령 취소 조치를 취한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였다. 

인사 추천권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 경찰청장은 27일 오전 출근길에서 정순신 씨 추천 과정에서 학폭 문제를 검증하지 못한 데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추천권자로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지만 사과는 없었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 아닐 수 없다. 

정순신 씨 학폭 논란에 대해서 현실판 ‘더 글로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물이다. 

마침 학폭이 소재가 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정순신 학폭 논란은 국민의 반학폭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학폭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학폭 가해자는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비록 임기 하루를 남기고 낙마했지만 그 아버지는 국수본 본부장에 임명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왜 국민들이 ‘더 글로리’에 열광했겠느냐”며 “상식과 정의를 저버리는 모습을 갚아나가는 부분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컸을 것”이라며 분노한 국민의 심정을 대변했다. 

로펌시장에 넘어간 학폭,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 강구해야 

학폭 변호사비만 기본 1천만원이라며 학폭이 산업화되었다는 얘기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포털 사이트에서 학폭을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프리미엄링크에 학폭 관련 로펌과 변호사들의 광고가 줄지어 뜨는 걸 볼 수 있다. 

이윤경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은 “학폭이 산업화 된 지는 오래됐다”라며 “행정사, 변호사, 심지어 보험 상품도 있다. 저와 함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는 변호사 말이 학폭 건당 수임료가 1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학생들에게도 적용되는 시대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뿐 아니라 중학생도 특목고 진학 때까지 가해학생 조치를 생기부에 남기지 않으려고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몇 년 동안 끌고 간다는 건 학폭 담당 교사, 학폭 심의위원, 교육청, 교육부 등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라며 “학폭법의 원래 취지인 피해자 보호는 법령에만 글자로 존재한다”고 그 심각성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가해자 반성은커녕 1호~9호 조치가 면죄부가 되고, 피해자 보호도 불가능한 학폭법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본다”며 “교육청 초등과와 중등과에서 관리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만 적용하는 불완전한 학폭법은 떠들썩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처벌이 강화됐지만, 정작 언론에 나왔던 중대 사안들의 가해자는 학폭법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현 학폭법의 문제점을 질타했다. 

이 회장은 “범죄는 경찰과 법원에서 다루고 갈등은 학교의 생활교육위원회(구, 선도위)에서 다뤄야 한다”며 학폭법의 전향적인 개정을 촉구했다. 

비록 정순신 변호사의 국수본 본부장 임명이 무위에 그쳤지만, 이번 사건은 국민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다. 학폭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현실을 다시금 각인시켜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입니다 초동 수사단계에서부터 공판경험이 있는 수사 인력이 긴요합니다 이에 수사와 공판을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수사발전에 기여하고자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는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겠습니다”

정순신 변호사가 지난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하면서 밝힌 입장문의 일부 대목이다. 학폭 피해자를 오랜 시간 동안 괴롭게 했던 가해자의 부모로서 ‘국가수사발전에 기여’할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전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육부는 지방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학폭 근절 대책을 조속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빈말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당국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및 그 대응 과정에서 위법한 일이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학폭 피해 학생의 치유와 회복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정부, 국회, 교육청 등은 학폭법의 전면 개정을 포함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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