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입장에서 설치된 ‘음성 안내’, ‘시각 장애인’에 유명무실
시각장애인 연합회 관계자 “눈을 가리고 정류장에 서 보시지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의 입장으로 깊이 생각하는 게 우선

[뉴스엔뷰] “100번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돼 있는 ‘음성 서비스’는 시각 장애인이 시내버스에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비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착각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정류장마다 음성 안내 서비스가 있더라도 많은 시각장애인이 활동지원사와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장애물은 그들을 안으로 움츠러들게 한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많이 발전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구조 개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각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과거부터 지속해서 이어져 왔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눈이 아예 안 보이는 전맹도 있지만, 저시력자도 상당수 존재하고,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 모두가 점자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편견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의 이동 편의 시스템은 음성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실상 시각장애인의 삶으로 들어가보면 음성 서비스 역시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설치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자블럭 위를 지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지하철은 ‘OO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와서 시각장애인이 타기 쉽지만, 내리는 문의 방향과 정류장을 알리는 음성이 작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진/뉴시스
점자블럭 위를 지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지하철은 ‘OO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와서 시각장애인이 타기 쉽지만, 내리는 문의 방향과 정류장을 알리는 음성이 작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진/뉴시스

◇ 시각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교통 약자 시스템’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외출을 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할지, 버스를 타야 할지, 콜택시를 불러야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수도권을 예로 들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동 경로나 환승 구간까지 찾아가는 여정이 길고 고되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대외전략국 이리나 국장은 “앱으로 소요 시간을 계산해봤더니 비장애인보다두 배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동하는 노선의 저상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려면 적어도 3~4대의 버스를 보내야만 겨우 탈 수 있다. 버스정류장의 연석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결국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하기에는 콜택시 만 한 것이 없지만, 이마저도 수량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사전 예약을 하더라도 1시간 넘게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시위를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하지만, 지하철 시위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의해 진행되다 보니 ‘시각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작년 하반기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교통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시각장애인 이동 편의 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시각장애인 수는 5만4000여명으로 전체 도민의 0.4%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연천, 여주, 가평, 양평 등 도농지역에서 시각장애인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시각장애는 후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에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뭘까. 디지털시각장애인연대가 시각장애인 25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교통수단은 콜밴 〉 지하철 〉 버스 순이었다. 버스의 경우 정차 위치와 노선번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거주지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가 난관이라는 응답자도 많았다.

서울특별시 시각장애인 연합회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를 탈 때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버스의 경우 몇 번 버스가 오고 있다는 음성안내를 하긴 하지만, 문제는 정차했을 때 제 위치에 서는 경우가 드물고, 동시에 여러 대의 버스가 들어올 때는 어떤 버스인지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시력자라고 해도 시각장애인의 시력은 0.04 미만으로 거의 글씨가 안 보이는 상황”이라며 “힘들게 버스를 탔다 하더라도 버스마다 카드 단말기와 하차 벨의 위치도 달라서 내릴 때 애를 먹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은 활동지원사와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타며 외출할 자유를 박탈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이 외출하고 싶은 날짜와 시간대가 있어도 활동지원사와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택시 요금 중 25%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하루에 4회(월 40회)까지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 택시는 그나마 시각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게다가 택시 기사들도 장애인이 탑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시각장애인에게 심적인 안정감도 부여해준다. 그러나 도로교통 상황이 복잡한 서울이나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는 택시 기사가 내려서 안내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고, 시각장애인 자신도 택시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기에도 힘든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 

시각장애인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대중교통은 버스다. 정차 위치와 노선번호를 제때 파악하기 힘들고, 카드 단말기와 하차 벨의 위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시각장애인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대중교통은 버스다. 정차 위치와 노선번호를 제때 파악하기 힘들고, 카드 단말기와 하차 벨의 위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 무료 승차보다 시각장애인 의견 수렴해 시스템 개선해야

현재 만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은 지하철에 무료로 탑승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이 탑승하기에 가장 쉬운 대중교통 수단이다. 

지하철의 경우에는 ‘OO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탑승하기에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타고 나서가 문제다. 내리는 정거장과 내리는 방향을 안내하는 음성안내가 작게 들리는 경우가 많아서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혹은 안내견과 동반할 경우 여전히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부 시민들도 존재한다.

버스의 경우는 서울시 기준으로 올 7월부터 무료 승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조금 지원 정책보다는 장애인의 실질적인 편의성을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버스는 정차 위치와 노선번호를 제때 파악하기 힘들고, 카드 단말기와 하차 벨의 위치가 제각각이어서 시각장애인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대중교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는 장애인이 탑승하기 전에 버스 운전기사에게 ‘장애인이 탑승하기 전입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오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서울특별시 시각장애인 연합회 관계자는 “대중교통은 시민들과의 약속인데, 버스 기사가 내려서 장애인을 승차시켜 착석시키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시각장애인 전용 모바일앱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의 앱과 버스회사를 연동해 노선과 버스 정차 지점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담고, 버스 안에 안내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하차 벨의 위치와 하차하려는 정류장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려준다면 지금보다는 시각장애인의 버스 이용이 원활할 거라는 말이다.

서울시 시각장애인 연합회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고 싶다면 눈을 가리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음성 안내 형태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기 힘들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은 대중교통에 접근하는 순간부터 어려움이 따른다”라며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비장애인 시민이 나서서 안내해주거나 안내견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거둬주는 등 조금만 배려해준다면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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