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이어 또 다시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을 잡아야 한다” 등 정부의 책임 전가를 위한 오염된 의도

[뉴스엔뷰] 2016년 촛불시위는 행사 중 참석자 간 충돌이나 행사 뒤 쓰레기 더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시민의식을 드러냈던 대한민국은 군중 통제 선진국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고 나니 후진국이 되어 있었다.

세월호로 국민적 트라우마가 잊혀 지기도 전에, 또 다시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221029일 오후 1015분경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 다수의 인파가 뒤엉키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희생자(victim)가 발생되었다. 이것은 끔직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참사(Disaster)이다 .

참사 당시, 이태원에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을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데, 156명이 사망하고 대략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젊은 층이 대거 운집할 것이 예상 되었지만, 안전사고에 대비한 사전 대책은 물론 당일 현장관리 및 통제에도 나서지 않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이태원 참사는 어쩌면 천재지변이 아닌 분명한 인재이다. 거기에는 우리를 보호해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 삶의 안녕과 복지, 행정 등 국민을 보호 해주는 조직이다. 국민이 부여해준 권력을 가진 만큼 무한 책임 가져야 한다. 심지어 예측 가능하면 천재지변 까지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 국가이지만, 이태원에는 정부의 부재로 끔찍한 인재가 일어났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금의 정부는 어떠한가?

사고 당시에 밀었던 사람을 CCTV영상을 면밀하게 조사해 밀기 시작한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을 잡아야 한다, 경찰(112)에 신고 접수는 했지만, 경찰이 현장에 늦게 출동했기에 경찰에 책임을 전가 하려는 것은 현 정부의 오염된 의도가 숨어 있다. 정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무능한 경찰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력의 부재는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민을 보호해 줄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곳엔 시민구조대가 보여준 인간의 이타성이 있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환자를 옮기는 소방대원을 돕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민족은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투박하며 이기적인 것 같지만, 엄청난 재난 상황이 오면 이타적인 인간의 본성 중 더 엄청난 초인적인 힘(인간애)이 발휘되어 이타심들이 나온다. 그 커다란 힘의 원천을 무엇인가?

인간은 이기적 성향과 이타적인 성향이 모두 같이 존재한다. 나약한 인류가 여전히 생태계의 강자로 존재하는 이유는 재난 혹은 위기 상황을 겪게 되면 서로 돕는다는 것이다. ‘전략적 협력을 선택하여 일단 초월적인 위기를 이겨내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생존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안전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인명구조에 지연. 미흡한 잘못을 우리는 국가에게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의 물질적 손해배상도 중요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이 핼러윈을 즐기려 갔다가, 친구는 압사 당하고 혼자만 생존한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구는 죽고 본인만 살아남아서 죄 스럽고 미안한 마음. 그것이 생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생 트라우마의 고통 안에 갇혀 살게 될 것이다.

사고현장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현장에 자신이 계속 있는 듯한 재경험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의 파편 속에 선택적 기억 속에 고통을 받으며 평생 살아간다.

또한 5G 초연결망 사회에서 사고 영상이나 뉴스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피해자들이다.

필요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는 지금이라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심리안정을 위해 PTSD 겪는 생존자들에게 평생 동안 지속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치료를 해줘야 할 것이다. 또한 소방대원을 도와 한명의 생명을 살리려고 애썼던 선한 사마리안의 이타적인 시민들, 그들 역시 PTSD로부터 회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단지 살아남을 것인가, 더 잘 살아 갈 것인가?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이다.

                  김은주 교수 / 심리학박사
                  김은주 교수 / 심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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