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재위 70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그 굴곡의 96년 삶

[뉴스엔뷰] 지난 9월 1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이 지난해 5월 먼저 세상을 뜬 남편 필립공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묘 옆에 묻히면서 70년간 재임한 여왕시대의 막을 내렸다. 

사진: 뉴시스 ([런던=신화/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7일(현지시간) 런던의 패딩턴역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노선 개통식에 참석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노선은 오는 24일 대중에 개통하는 지하철 노선이다. 2022.05.18.)
사진: 뉴시스 ([런던=신화/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7일(현지시간) 런던의 패딩턴역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노선 개통식에 참석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노선은 오는 24일 대중에 개통하는 지하철 노선이다. 2022.05.18.)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순히 영국의 상징적인 의미의 왕으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70여년간 영연방 14개국의 정신적 지주 역할과 더불어 세계인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다. 지난 9월 8일 여왕이 서거하자 BBC는 "여왕이 떠나며 역사의 순간이 멈췄다“며 영국인들의 아쉬운 마음을 대변했다. 

군주제에 대한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인물이었다. 그들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면에는 여왕이 걸어온 삶이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운명처럼 다가온 여왕이라는 자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26년 4월 21에 태어났다. 큰아버지가 왕세자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 서열은 3위였다. 그러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왕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혼녀와 결혼하면서 왕위를 포기,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세자가 되면서 여왕은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여왕은 바로 육군에 입대하여 영국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존경을 받게 된다. 2년 뒤인 1947년에는 해군장교였던 필립공과의 열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장남인 찰스3세와 앤 공주를 출생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2년에 아버지 조지6세가 서거하면서 26세의 나이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왕위 즉위식 후에 영연방 국가들을 포함한 세계 순방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영국의 정치와 외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차남인 앤드루 왕자와 막내인 에드워드 왕자까지 태어나며 꿈꿨던 다복한 왕실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최초로 왕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허용하며 탈권위적인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왕은 영국 지배 하에서 반감이 큰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사과를 전하는 등 영국 내 국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대외적으로는 힘이 약해지고 있는 영연방의 연대의 끈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왕실 가족들의 리스크... 거세지는 군주론 페지 여론 

1981년 당시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결혼했다. 왕세자빈은 서민적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내외적 활동을 펼쳐나가면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찰스 왕세자의 유부녀와의 불륜으로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왕세자빈이 파파라치들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영국 왕실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커졌다. 

이러한 실망감은 군주제의 불필요함과 더 나아가서 폐지까지 주장하는 여론에 불을 지피게 된다. 이때 여왕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애도하는 연설을 했으며 군주제 폐지론은 잠시 수그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셋째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과 손자인 해리왕자와 그 부인인 메건 마클이 왕실과의 갈등을 언론에 밝히고 독립을 선언하는 등 아직도 왕실 가족들을 둘러싼 리스크는 높아만 가고 있다. 

나빠져만 가는 여론을 항상 잠재우고 달랬던 여왕의 부재가 앞으로 영국 왕실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은 현재 영국 왕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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