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살아 있는 유물 군주제... 21세기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 봉착

[뉴스엔뷰] 지난 9월 11일(현지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운구차가 밸모럴성에서 에든버러 홀리루드 궁전으로 이동하던 중 군주제를 반대하는 두 명의 시위자들이 왕족 모역과 공공질서 위반을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BBC를 타고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이밖에 옥스퍼드시에서도 한 남성이 대중들 앞에서 군주제 반대 발언을 한 뒤 경찰에 연행되는 등 영국 각지에서는 다시금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 뉴시스([런던=AP/뉴시스] 5월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 스튜디오 아티스트들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밀랍 인형을 최종 손질하고 있다. 영국은 다음 달 2일부터 시작하는 여왕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22.05.25.)
사진: 뉴시스([런던=AP/뉴시스] 5월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 스튜디오 아티스트들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밀랍 인형을 최종 손질하고 있다. 영국은 다음 달 2일부터 시작하는 여왕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22.05.25.)

엘리자베스 2세 사후 재확산되고 있는 영국 군주제 폐지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가족 승계를 합법화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 권력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부여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왕실은 자격 조건과 상관없이 계승 순서에 따라 왕위가 이어진다. 

비록 입법, 행정, 사법 등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권력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외교적 측면에서 한 국가의 이미지와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권력을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시민이 정치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왕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아이러니한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 내에서는 조직적인 군주제 반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영국 시민단체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대변인은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 여론이 커질 것”이라며 “여왕 서거 발표 직후 24시간 동안 단체의 소셜미디어 계정 팔로워가 2천명 이상 늘고 신규 회원 가입도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여왕의 서거는 왕정의 종말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축하할 만한 이유”라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영국 내 군주제 폐지 운동 확산 촉발 

둘째, 왕실의 특권은 평등주의와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지난 9월 12일(현지시각) AFP 통신에 따르면, 영국 각지에서 게릴라 집회를 열고 있는 시위대가 왕실이 사용하는 예산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보도를 했다. 

이들은 2020~2021년 회계연도 기준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왕실 유지비는 8천6백만 파운드, 한화로 약 1천3백81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위대는 의회가 제안한 법안이 왕실의 이익에 반하면 왕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의회 협약(king's consent)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왕실은 법을 바꾸는 숨겨진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찰스 3세는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은 왕이라고 폄하했다. 

왕실 유지비 이외에도 왕실은 일반 국민들이 책임지고 있는 세금 납부의 의무를 지지 않으며, 일부 재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재산은 매매 또는 상속할 때에는 세금 납부 의무에서 제외되는 점도 특히 영국의 젊은이들로부터 반감을 가지게 만들고 있다. 

셋째, 군주제는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잔재물이라는 주장이다. 대영제국의 부귀영화는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식민지 지배 등에서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영국 국왕이 존재했다. 

영국의 식민지 개발과 착취로 그들의 산업혁명은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아직도 빈곤과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일본의 일왕과 더불어 자국민과 함께 다른 힘없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착취하여 한 국가가 온전히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 만큼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과거의 잔재물인 군주제가 현대 사회에서 유지된다는 것은 사회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어불성설인 것이다. 

특히 영국 국왕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14개 영연방 국가들의 상징적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아직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군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과거 대영제국을 그리워하는 향수일 수도, 영국인의 자부심일수도, 사라져야 할 과거의 잔재물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왕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70여년간 잠재워 왔던 여왕이 눈을 감았고, 영국 시민들이 왕위를 계승 받은 찰스3세와 왕실 가족들에게서 더 이상 여왕과 같은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진:뉴시스 ([런던=AP/뉴시스]19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관 운구 행렬을 찰스 3세 새 국왕 등 왕실 가족들이 뒤따르고 있다. 2022.09.19.)
사진:뉴시스 ([런던=AP/뉴시스]19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관 운구 행렬을 찰스 3세 새 국왕 등 왕실 가족들이 뒤따르고 있다. 2022.09.19.)

태국 왕의 부패 논란, 네팔은 군주제 폐지돼 

세계적으로도 군주제는 국민들의 견제와 폐지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국왕의 국가 운영에 대한 권력은 막강하다. 현재 태국 국왕인 라마 10세는 쿠데타 군사정권을 무마해주고 이 답례로 왕실 재산을 개인 재산으로 돌리면서 700억달러, 한화 약 80조원 이상의 재산을 축적했다. 

또한 라마 10세는 문란한 사생활은 물론 방탕한 과소비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으며 태국은 지금까지도 군사 독재 정권 타도와 함께 군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네팔은 왕실 내부의 문제와 국민들의 결정으로 군주제가 페지된 국가이다. 2001년 비렌드라 당시 국왕과 일가족이 디펜드라 왕세자에게 몰살당하면서 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즉위했다. 그는 국회를 해산하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이에 분노한 국민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왕정 지속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로써 네팔은 2008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헌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망 이후, 다시 불거진 군주제 폐지 논란은 비단 영국 내 논쟁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장 집권 여왕의 기록은 이제 역설적으로 군주제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주제는 왜 필요한가? 이제 '군주제의 시대'는 전면적 폐지 또는 종식에 관한 논쟁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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