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급속도로 얼어붙은 중국-대만, 국제 사회 갈등의 뇌관

[뉴스엔뷰] 역사적으로 중국은 국공내전 이후 1949년 중국과 대만의 두 개의 국가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공통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고, 외압이 아닌 두 세력간 다툼의 결과였기 때문에 경제적, 인적 교류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대만이 경제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크게 부각하면서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중국과 대만, 즉 양안관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 발전해 왔을까? 양안관계를 제1기, 제2기, 제3기로 구분해 살펴봤다. 

8월 3일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타이베티 총독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타이베이=AP/뉴시스)
8월 3일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타이베티 총독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타이베이=AP/뉴시스)

제1기 :  평행선을 달린 양안 관계 

대만 정부는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조(淸朝)가 몰락한 이후 1912년 수립된 '중화민국'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국민당 주석을 지낸 장제스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內戰)에 패하여 1949년 12월, 중국 본토를 떠나 타이완(臺灣)으로 정부를 옮겼다. 이곳에서 장제스는 대만 국민정부의 주석으로 장기간 통치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1949년 10월 1일 수립된다. 이로써 중국은 대만과 분리된 국가로 대만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대만 또한 중국을 적대시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서로의 왕래가 금지되었다.

중화민국은 한때 제2차 세계 대전의 5개 주요 연합국 중 하나로,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자 프랑스, 소련, 영국, 미국과 더불어 유일한 아시아 국가 대표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대 상임이사국의 위치에 있었다. 냉전시대가 점유한 60년대 말까지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들 중 하나였고, 중화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중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국가로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즉 양안이 각각 양립하는 두 세력에 평행선을 그으며 공존하던 시기였다.  

제2기 :  뜨는 태양 중국, 그늘에 가려진 대만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국이 실용주의 노선으로 우회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평형을 이루던 양안 관계는 급속도로 중국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1971년 이후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중국은 중화민국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 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국가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여파로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중화민국의 손을 떨쳐내고 중국의 손을 잡았다. 중화민국은 대만이라는 섬에 갇히듯 국제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갔다. 정식 국가 명칭인 중화민국보다는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우호국가들과 ‘대표부’라는 명분으로 외교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1979년 덩샤오핑이 신년 교서를 통해 무역, 우편, 여행 3개 교류를 전면 실시하자는 이른바 3통(三通)을 제의했고, 이에 대해 장징궈 총통은 '본토의 중국 공산정부와는 정부 차원에서의 접촉, 담판, 타협을 거부한다'는 3불(三不) 정책으로 응답했다. 당시 대만은 미국과 단교하고, 유엔에서는 축출 당하는 등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중이었기에 3통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만은 '삼민주의를 통한 중국 통일'이라는 평화적 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옛 국민당 군인들이 본토의 가족, 친척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이산가족 상봉과 학문이나 예술 등 비정치 분야의 대륙 인사들의 대만 방문을 허락했다.
이후 양안은 정치적으로는 대립각을 이뤘지만 이주와 왕래의 자유 등 경제적, 문화적 관계에서, 북한과 대한민국과의 상황과는 다르게 제3의 국가들의 간섭과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활발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제3기 :  먹으려는 중국, 안 잡혀 먹히려는 대만

2013년 중국에는 시진핑, 대만에는 2016년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정권이 들어서며 양안 충돌이 시작되었다. 국제사회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진핑 정권의 야욕과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차이잉원 정권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오쩌둥-장제스 시절에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의 두 정권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은 중국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중국으로부터 영구 입국 금지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시진핑 정권은 대만과 가까운 지역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집중시키며 군력을 시연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해오고 있다. 이에 맞서 차이잉원 정권은 미국과의 관게를 더욱 공고히 하며 미국으로부터 공격형 무기를 도입해 군비를 증강시키는 등 추후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할 시에 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설 것이라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지난 7일 중국인민해방군(PLA) 동부전구 소속 항공기들이 대만 해협 일대에서 합동 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타이베이=AP/뉴시스)
지난 7일 중국인민해방군(PLA) 동부전구 소속 항공기들이 대만 해협 일대에서 합동 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타이베이=AP/뉴시스)

중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대만의 ‘미국 바라기’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지난 2일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양안 관계는 전에 없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중국으로서는 중국 본토 코앞에 놓여있는 대만이 미국의 대중 전략지로 강화될 수 있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기에 무력으로라도 대만을 점유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시하고 있다. 

대만에 대중국 강경파 정권이 집권하게 된 데에는 중국에 대한 대만인들의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다. 천안문 사태를 지나 최근 홍콩 민주화운동이 무력에 의해 진압되고, 민주주의 체제와 자유가 억압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만과 중국의 통일이 평등적 관계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대만이 중국에 먹혀지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만을 통제하려는 중국, 그 간섭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대만, 그리고 이 관계는 국제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중국과 그 세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력간의 힘겨루기로 대결구도가 확장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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