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의 또 다른 이름은 ‘침묵의 살인마’다. 석면 섬유 한 가닥 굵기는 머리카락의 1/5000정도로 무척 가늘기 때문에 공기 중 떠돌다 체내로 유입되더라도 인지하기 어렵다. 몸 속으로 들어온 석면 입자는 폐 조직까지 뚫고 들어가 면역을 담당하는 대식세포를 사멸 시키고 염증을 일으키다 결국 폐암, 악성중피종, 난소암 등을 유발시킨다.

[제230호 뉴스엔뷰] 과거 4대강 살리기 사업현장에 1급 발암물질 석면을 납품해 논란을 일으킨 충북 제천에 위치한 A 채석장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경석에서 또 다시 석면이 검출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월 25일과 3월 10일 두 차례에 걸쳐 인천 송도 P아파트를 방문해 석면함유가 의심되는 조경석 시료 10개를 채취, 석면분석전문기관(ISAA)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트레몰라이트(tremolite) 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또한 단지 내 설치된 전체 조경석 161개 중 88%인 141개에서 석면함유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전했다.

인천 송도 p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석면이 함유된 조경석(왼), 해당 조경석 시료에서 검출된 트레몰라이트 석면의 전자현미경 사진(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인천 송도 p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석면이 함유된 조경석(왼), 해당 조경석 시료에서 검출된 트레몰라이트 석면의 전자현미경 사진(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해 10월 P 아파트에 조경석을 납품한 A 채석장을 방문,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석면 조경석을 절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주변에는 석면 조경석이 쌓여있었고 석재, 토사, 절삭수를 현장 채취해보니 인천 송도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한 트레몰라이트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당시 채석장을 찾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석면 조경석을 절단할 때 물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돌가루가 섞인 절삭수가 흘러 내려 마을 내 길가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지난 2010년 해당 채석장이 전국 210곳에 석면석재를 공급한 것이 드러나 혈세를 투입해 오염된 터를 복원했던 곳인데 또 같은 업체에 의해 무용지물이 됐다”면서 “환경부와 지자체가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석면 조경석의 불법 유통을 방치하고 주민들을 석면 위험에 노출시키는 등 먹통 행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을 가진 섬유 형태의 광물인 석면은 ‘기적의 물질’로 불린다. 산과 알칼리에 강하며 전기절연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열과 추위에 잘 견딘다. 또한 불에 타지도 않고 부식되지도 않으며 다른 물질의 침투도 잘 막는 특성을 가진다. 이런 탓에  건축자재, 마찰재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국내에서도 새마을운동이 한참인 1970년경 지붕개량목적으로 석면 슬레이트가 집중 보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석면의 또 다른 이름은 ‘침묵의 살인마’다. 석면 섬유 한 가닥 굵기는 머리카락의 1/5000정도로 무척 가늘기 때문에 공기 중 떠돌다 체내로 유입되더라도 인지하기 어렵다. 먼지 등은 호흡기 입구에서 걸러지지만 석면은 배출은커녕 폐 조직까지 뚫고 들어가 면역을 담당하는 대식세포를 사멸시켜버린다. 빠져나가지 못한 석면입자는 몸속에서 계속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폐암, 악성중피종, 난소암 등을 유발시킨다. 석면질환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발병되기 때문에 석면 노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실제 적지 않은 수의 석면타일, 석면천정 등이 사용된 건물에서 거주하거나 석면광산 근처 주민이 수십 년 잠복기를 거쳐 석면 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과 폐질환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1987년 세계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국내의 경우 1997년부터 순차적으로 제한하다 2009년부터 모든 석면의 사용, 제조, 수입 등을 전면 금지했다.(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트레몰라이트 석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시민활동가로 활동하며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이성진(30)씨는 ‘환경성 석면 피해자’다. 그는 “불과 만 18세에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만성진통제와 마약성 패치를 붙이며 살아가면서도 석면으로부터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씨가 악성중피종의 원인이 석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환경단체가 과거 이씨가 거주했던 일대를 조사하면서 부터다. 그는 “내가 살던 집의 지붕과 학교 천장, 복도 등에서 석면이 검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자라는 동안 도둑처럼 석면입자가 몸속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면 검출 소식에 불안한 주민들

이번 인천 송도 P아파트 시료 채취에서 검출된 ‘트레몰라이트’는 각섬석계 석면으로 입자가 곧고 뾰족하기 때문에 호흡기를 통해 폐 깊숙이 박히기 쉬워 발암성이 강하다. 

인천 송도 P아파트 석면 조사에 참여한 이씨는 “석면사용 금지가 법제화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침묵의 살인자인 석면에 아이들이 올라가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다. 일상에서 석면이 노출되어 저와 같이 청춘을 암 투병으로 보내는 사람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 역시 “석면이 다른 발암물질보다 위험한 이유는 일상적인 환경에서 노출되기 때문에 관련 질환이 발병되더라도 자신이 언제, 어디서 석면을 접했는지 모르는 것”이라며 “이번 송도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트레몰라이트 석면의 경우 나노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기 때문에 인체에 유입되기 쉬우며 입자가 매우 작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추척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석면에 노출된 사람은 석면관련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주기적인 건강진단을 통해 질병 발생 감시 및 조기 진단 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집단산재신청 예고]

석면이 검출된 인천 송도 p아파트
인천 송도 p아파트의 석면 의심 조경석 위에 아동들이 올라가 놀고 있는 모습. 환경시민단체에 의하면 잘게 부서진 석면 입자가 신발과 옷 등에 오염되면 집과 학교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17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생활환경에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인천 송도 내 온라인 커뮤니티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성토의 장이 됐다. 주민들은 “아파트 주변에만 유치원 3곳, 어린이집 2곳, 초등학교 2곳이 있다. 아이들 건강이 염려된다.”, “그 근처를 자주 지나가는데 이미 공기 중 석면에 노출됐으면 어떻게 하느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송도 내 다른 아파트도 전수 조사해야한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주를 이뤘다.

허점 드러낸 석면안전관리법

이번 인천 송도 P 아파트에서 발견된 석면은 ‘석면안전관리법’의 허점을 보여준 사례다. 2012년 4월 환경부는 석면안전관리법에 의거, 가공변형 된 석면함유가능물질의 석면허용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조경석은 표면에 석면이 노출되지 않아야 하고, 기타 가공 변형된 상태일 경우 ‘석면 함유량을 0.1% 미만’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완공된 이 아파트에서는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석면 함유 조경석이 불법 유통된 셈이다. 더욱이 석면함유 조경석을 유통하고 불법 가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A 업체가 이미 2010년 4대강 살리기 당시 석면 석재를 공급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는 점은 석면안전관리법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석면의 안전관리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석면 관련 질병은 앞서 밝힌대로 잠복기가 길어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래 이씨와 같은 피해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정숙 동국대일산병원 교수(석면질환연구회 소속)는 “석면광산에서 일하는 사람 및 인근 주민 등 광범위하게 노출된 경우가 많아 앞으로 환자수가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오는 2045년까지 석면관련 질환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를 진단하는 의사들조차도 국내 석면 유무와 그로 인한 위험성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일상적인 판독과정에서 석면 관련 질환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석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적절한 진단과 판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엔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