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소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23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주의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선 써준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씨가 23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는 13일 자살 방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강씨의 재심 재판에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의 결정적인 근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김기설씨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노트·낙서장 필적을 감정한 감정결과였다.

검찰은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김씨가 쓴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국과수에 김씨의 평소 필적과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동일한지 감정 의뢰했다.

국과수는 감정결과 회신에 “김씨의 평소 필적은 정자체이지만 전대협 노트·낙서장은 흘림체여서 감정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비교가능한 부분을 찾아 감정한 결과, 김기설씨의 평소 필적과 전대협 노트·낙서장 필적에 7개의 유사점을 발견했다. 두개가 동일 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씨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본 것이다.

유서 대필 사건은 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정부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검찰이 1991년 5월8일 분신 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동료인 강기훈씨가 대필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공안정국을 몰아온 사건이다. 강씨는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007년 진실화해위가 “유서는 김기설씨가 쓴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고 강씨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다.

2009년 서울고법이 진실화해위 조사결과를 인정해 재심을 결정하자 검찰이 불복해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3년을 끌다가 2012년 10월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1991년 수사 당시 국과수가 필적 감정을 감정인 1명에게 맡기고도 여러 명이 공동으로 감정한 것처럼 법정에서 허위 증언한 사실을 재심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며 심리를 더 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재심 재판에서는 진실화해위 조사에 참여했던 감정인, 전대협 노트·낙서장을 발견한 김씨의 친구 한아무개씨 등이 증인으로 나왔고 국과수가 전대협 노트·낙서장과 김씨의 평소 필적을 감정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렸다. 189년대 프랑스에서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필적 때문에 석연찮게 반역죄로 몰려 종신형 선고를 받아 에밀 졸라 등 당대 지식인들이 옹호하고 나섰던 것과 비유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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