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탄압받는 현실 개선 기대”
정부 여당, ‘파업 조장법’ 강하게 반발

[뉴스엔뷰] 올해 윤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주요 정책으로 설정하고 주69시간을 제안, 화물노조 탄압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노동을 국정 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다. 화물연대 파업 당시 노동조합을 기득권으로 지목하고 대화와 타협이 없는 강경 대응 원칙을 내세우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효과를 맛본 반면에 ‘툭’던지고 보는 노동시간 연장은 강한 반대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되었고, 노조 탄압은 노-사-정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켜 노동계와의 대화 기조를 경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상을 걱정하는 원로모임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을 요구하는 사회원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상을 걱정하는 원로모임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을 요구하는 사회원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가운데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개정으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손배 폭탄’을 하던 악덕 관행을 멈추고, 하청노동자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배상비용에 보태라며 언론사에 성금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내온 데에서 유래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사태로 인하여 노조원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범위가 다시 쟁점화된 바 있다. 

이날 통과된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조에 규정된 사용자 범위를 원청업체로 확대해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원청 사용자들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원청업체의 일을 하면서도, 근로조건에 대한 교섭은 하청업체와만 할 수 있어 발생한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법원이 손해배상책임을 정할 때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해, 조합원 모두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부담하는 것을 막았다. 기업이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몰아 조합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남발하는 것을 제한했다. 

이 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사측이 과도한 손배소를 통해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흔드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고 발의 취지를 밝히며,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이 보장되어 노동자들이 탄압받는 현실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본회의를 앞두고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며 법안 통과를 막으려 했지만,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하고 퇴장하면서 표결이 진행됐다. 

◾ 노란봉투법은 ‘파업 조장법’?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정부 여당과 경제계는 노란봉투법은 ‘파업 조장법’, ‘민생 파탄법’, ‘민주당과 민노총의 야합’이라는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는 ‘노조법 개악 규탄 및 거부권 행사 건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발표문을 통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해 불법파억을 조장하고 확신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곳곳에서 연쇄 파업이 벌어져 파업 천국이 될 판”이라고 말하며 “끝내 밀어붙인다면 대통령께서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 개정은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소 제기와 가압류 집행을 제한함으로써 노동자의 쟁의권을 충실히 보장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으나, 사용자의 경영권 및 재산권 침해 여부나 민법 등 다른 법체계와의 정합성 등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3법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대한민국 건국 이래에 거의 일관적으로 기업친화정책이 진행되었던 탓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달 말쯤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26일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제기한 노란봉투법 권한쟁의심판이 기각된 바 있어 법률적으로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 법률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주혜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 법률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 52시간제, 강제 연장노동 우려

지난 13일, 윤석열 정부는 노동 시간 연장과 관련해 국민의 거센 반발로 실패한 지 8개월여 만에 주52시간 근로제를 또다시 가지고 나왔다. 이번에는 근로자와 사업주 포함 국민 6천명을 대상으로 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 주 52시간제에 국민이 48.2% 동의한다는 응답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운 발표였다. 

하지만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장시간근로 비율이 17.5%로 유럽국가 평균 7.3%보다 2배 이상이다. 그리고 연평균 근로시간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튀르기예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나라 중 4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어느 나라 보다 길다. 더군다나 보상 없는 연장근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포괄임금제 오남용에 대한 대안도 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주 52시간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경제가 어렵다,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유로 제일 먼저 희생을 강요받은 쪽은 기업가가 아닌 노동자였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에 올라선 지금도 여전히 정부와 정계는 노동권 축소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있다’라는 이유만으로 노동 시간을 늘리려고만 한다면 또다시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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