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진료과목 해결, 의사부족? VS 장기 플랜의 부재?
36% → 20%, 소아청소년과 정원 확보율 하락의 의미는?
의료계 “의료 인력 무분별한 증가는 지역별 불균형 심화”
정치권 “의대 정원 확대, 혼란한 정국 국면전환용 활용?”

[뉴스엔뷰]  정부는 최근 국립대 병원 집중 육성을 골자로 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과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목표로 하는 '의사 인력 확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의대 정원을 1000명 늘리는 방안 추진을 발표한 이후 후속작업의 일환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립대학교병원 필수의료의 중추로 육성, 충분한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의사 수 확대 등 필수의료 혁신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립대학교병원 필수의료의 중추로 육성, 충분한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의사 수 확대 등 필수의료 혁신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의대 정원 확대는 고교 2학년이 치르는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에 묶여 있어서 의대정원 확대 추진이 이루어진다면 17년 만에 대폭 증원되는 것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인 13.6명의 56%의 수준이지만 의사 수입은 OECD 최상위권이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지방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응급실 뺑이돌기’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의사협회 등의 반대에도 정치계와 시민사회 등은 이번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대체로 긍정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의사수를 증가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 즉 증가되는 의사인력을 이용해 구멍난 공공의료, 지역의료와 소아과 및 산부인과 등 비인기진료과목의 붕괴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뚜렷한 중장기 계획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증원수 1천명이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의사계의 반대로 실시하기도 힘들지만, 실행하더라도 그 파장까지 적용시키지 못한, 준비가 부족한 의료 정책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두고 의대정원 확대를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한 것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기대하던 의대정원 확대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과 수치는 빠진 채 지금까지 복지부가 공식적으로 이야기해왔던 ‘의사수 확대’의 원칙만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의료 전문가들은 전문의는 의대 입학 이후 10년 이상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부족한 의사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단기-중기-장기로 나누어 얼마나,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유동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수 부족으로 당장 크게 당면한 문제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진료과목 쏠림 현상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진료를 하려는 불균형 상황 등 기존의 의사 인력조차도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비인기진료학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의사 부족으로 인해 수도권 소재 병원들이 소아청소년과 입원치료와 응급실 야간진료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며 소아청소년 진료체계 붕괴가 우려되는 가운데, 2023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에서도 소아청소년과 확보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필수진료과목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과목은 소아청소년과로, 모집정원 확보율은 20%에 불과했다. 이는 2021년도 36%, 2022년도 22%에 이어 또 하락한 것으로, 올 상반기 전체 확보율인 84%의 4분의 1이 채 안 되는 수치다.

이외에도 흉부외과의 경우 확보율은 지난해 26%에서 올해 상반기 49%로 상승했지만, 레지던트 모집정원이 있음에도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한 병원이 18곳이나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필수의료 문제는 우리나라 전체 의료체계와 직결되는 만큼 필수진료과목 인력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 같은 인력 확충과 필수진료과목 및 치명질환을 다루는 과목에 수가 정책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1천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3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인력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충원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8%가 응급의료 분야를 꼽았다. 이어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62.5%, 치매 등 노인성질환 및 노인요양 36.9% 순으로 응답했다.

위와 같이 일반 시민들도 이미 비인기진료과목을 접하면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하락되고 있다는 점을 크게 인지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심지어 병원은 있지만 의사가 없어서 그 기능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일례로 목포중앙병원의 경우 지난 2018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조건부 지정돼 이후 평가를 받았으나, 흉부외과 전문의 채용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2022년 지정이 철회됐다.

심뇌혈관 분야 의사가 지방에선 거의 양성되지 않고 있어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나 3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나 3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연봉 3억6000만원,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산청의료원 의사 

의사부족 사태로 임산부가 진찰을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하는 상황은 이미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경남 산청군은 연봉 3억6천만원을 제시했지만 4차모집까지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지난 5월, 4차 채용 공고 당시 뽑혔으나 돌연 근무를 포기했던 의사를 설득해 겨우 산청의료원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내과 전문 공중보건의가 전역 한 뒤에 1년이 넘도록 의사를 구하지 못했던 산청군은 현재 채용을 했음에도 2년 뒤 재계약을 못하면 다시 의료원 공백 사태가 되풀이 될 것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방 의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의 의료 인력도 줄고 있다. 최근 3년간 국립대병원 의사와 간호사의 30% 이상이 1년 이내 퇴사하고, 50% 이상이 2년 이내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퇴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의사 1년 이내 퇴사한 의사 비율은 2020년 36.8%, 2021년 35.3%, 2022년 9월까지는 32.6%에 달한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3년간 1년 이내 퇴사한 의사의 비율이 50%를 넘었다. 

지방 의료계는 인력이 없어서 아우성인 것에 비해 서울 등 수도권의 의료 인력 상황은 상당히 양호하다. 즉 지역간 의료 서비스 질에 더욱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활동 의료인력과 병상 현황 자료를 살펴본 결과, 지역별 의료인력자원과 병상의 분포가 불균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인구 천명당 활동의사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서울이 3.3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대전 2.56명, 대구 2.55명 순이었다. 가장 낮은 세종은 1.23명으로 서울과 2.73배 차이 났다.

이어 경북(1.38명), 충남(1.54명) 순으로 낮았다. 특히 2022년 기준, 17개 도시 활동 의사 수 순위에서 하위권을 기록한 충남(15위)과 경북(16위)은 전년보다 각각 3명, 2명 씩 의사 수가 줄었다.

신현영 의원은 이와 관련 “의료인력 및 자원의 무분별한 증가는 지역별 불균형 격차 심화시키기 때문에 수급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서비스 불균형이 심각한 가운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은 지방환자 비중과 진료비 부담이 점차 커져 지방 국립대병원과 지방 의료 집중 육성이 필요하다는 정책 방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서울대병원 환자 및 진료비 현황'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서울대병원 환자 수는 95만여 명이고 서울 외 지방주소지 원정환자는 48.9%, 46만 5천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방 의료서비스 인프라와 우수한 의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 국립대병원 지원 예산 중 서울대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세여서 지방 국립대병원 지원과 투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교육부가 제출한 ‘2020~2024년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지원 현황’에 따르면 5년간 3,890억 원 중 서울대병원 지원액은 660억으로 전체 지원액 중 1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예산도 올해 788억 원에서 내년 1,037억 원으로 31.5% 증가했으나, 서울대병원에 대한 투자 비율은 2022년 15.9%, 2023년 17.6%, 2024년 20.3%으로 매년 증가했다. 

안민석 의원은 “서울로 치료를 위해 상경하는 환자들의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부담과 고통이 크다”며 “고령화시대, 지방소멸시대 지방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지방 국립대병원을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 육성하고 지방 의료 인프라에 국가 차원의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 대치동, 목동 학원가에는 유아 대상 ‘의대준비반’이 생겨 

갈수록 심화되는 직업난 속에서 의사는 고액 수입이 보장되는 전문 직업으로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부분의 고등하교 전교 1등이 의대 진학을 목표이다 보니 기초과학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인력 낭비다. 당장 의대 정원 확대를 정부가 선언한 이후부터 학원가는 요동치고 있고 상위권 대학생들조차도 의대 입학을 위한 자발적 재수생들이 양상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2020~2023 학년도 전국 정시모집 의대 신입생 선발 결과’를 분석한 결과, 모든 해에 17개 지역 중 서울 소재 고등학교 출신 의대 합격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2023학년도에 서울은 정시에서 36.3%인 460명이 정시모집으로 의대에 진학했고 4년 평균 36.7% 였다. 주목해야 할 점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최근 4년 동안 고3 재학생은 의대에 6.7% 밖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3학년도 인천과 충북에서는 고3 재학생이 한 명도 합격하지 못했다. 

현재 ‘지방대학 및 지역인재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인하여 의학 계열에서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의무화되었지만, 정시모집에서는 서울 학생들이 더 많이 의대에 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강득구 의원은 “서울 소재 고등학교 출신 합격자 수가 많은 것은 사교육의 영향과 재수 이상을 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배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대, 그 중에서도 인기진료과목, 또 그중에서도 수도권 의료 시설로의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의대 증원이 불길 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증원한 의대생들이 장차 인력이 부족한 의료시설로 어떻게 하면 골고루 잘 배분될 수 있는지, 인구 격감에 따른 의사 필요수를 어느 시점에 조절해 나갈 것인지 등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정책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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