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원전 감소 추세, 한국은 ‘역주행’ 평가
정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핵발전소 건설 추가”
신규 원전 후보지 ‘삼척’ “강원도 또 희생 ‘반대’”
정부, ‘RE100’ 인식 있나?…‘재생에너지’ 육성 절실

[뉴스엔뷰] 탈원전 백지화를 주장했던 윤석열 정부가 결국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검토를 공식화했다. 일각에선 전세계가 탈원전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시대 역주행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위원장)이 지난 7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9차 에너지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위원장)이 지난 7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9차 에너지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재개

지난 10일 열린 제29차 에너지위원회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전력 수요 증가에 적기 대응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원전·수소 등으로 새로운 공급 여력을 확충할지 검토해야 한다”며 “전력망을 적기 확충하고, 전력시장 제도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개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사실상 2024년부터 2038년까지 적용될 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새 핵발전소 건설을 추가해야 한다는 발언이다. 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달 말 착수 예정이다. 이번 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5년 나올 예정이었지만 신규 원전 추진을 위해 정권 초반에 앞당겨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계산으로 해석된다. 

향후 15년간 전력 설비 확충 계획의 밑그림을 그리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 주기로 작성된다. 지난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올해 초 발표됐다. 신규 원전의 구체적 규모는 계획에 담길 예정이지만, 업계는 문재인 정부 때 백지화됐던 신규 원전 6기가 이번에 반영될 가능성을 점친다. 산업부 당국자는 “초안 공개까지는 통상 6개월가량 소요된다”며 “신규 원전 규모 등 확충해야 할 전력 설비 규모 등이 담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윤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WEF) “원자력 발전을 좀 더 확대해나갈 생각”이라며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말하며 신규 원전 추가를 공언한 바 있다. 내년 상반기 확정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정부의 뜻대로 신규 원전 건설이 담기게 된다면,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제7차 전기본에서 원전 2기 건설을 포함한 이후 9년 만이다.

지난 2015년, 강원 삼척핵발전소투쟁위원회(상임대표 박홍표)주최로 삼척시청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4주기 기념행사에 참석한 강원지역 수녀들이 삼척원전 건설예정구역 해제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 2015년, 강원 삼척핵발전소투쟁위원회(상임대표 박홍표)주최로 삼척시청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4주기 기념행사에 참석한 강원지역 수녀들이 삼척원전 건설예정구역 해제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삼척, 영덕 재개 논의 가능성 커”

이같은 정부의 방향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늦은데다 원전 밀집도가 1위인 한국이 원전 의존도를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져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전 후보지를 둘러싼 논란이 급격히 일고 있다. 

업계에서는 새 원전 추진 방향이 정해진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주민 수용성 등을 고려해 부지 선정 등 상당 부분 사업 진척이 이뤄졌다가 백지화된 경북 영덕 천지 1·2호기와 강원 삼척 대진 1·2호기의 재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 2014년 원전 건설이 추진됐던 영덕과 삼척은 당시 주민 투표에서 압도적 반대가 표출됐다. 당시 삼척 시민들이 자체 실시한 삼척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투표에서 총투표자 2만 8867명 중 반대가 2만 4531명으로 반대표가 84.97%였다. 2015년 11월 경북 영덕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에서도 1만 1201명이 투표해 이 중 91.7%가 반대했다.

지난 3월  녹색당 김찬휘 대표와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핵발전소 폐쇄 및 탈핵 촉구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 3월  녹색당 김찬휘 대표와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핵발전소 폐쇄 및 탈핵 촉구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야당 앞다퉈 정부 결정 비난 

더불어민주당 강원특별자치도당도 정부 발표 직후 논평을 통해 “정부가 또다시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해 삼척을 원전 부지로 거론하는 것은 이제 막 강원특별자치도로 출범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강원도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 희생을 강요받아 온 강원도에게 또다시 희생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원전 우선 정책 추진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라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와중에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안하무인식 국정운영이 기가 막힌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강원특별자치도당 역시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후쿠시마 오염수로 가중된 국민의 불안감을 전부 무시한 것”이며 “현재의 전기를 위해 미래 세대의 안전을 담보로 거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어 “삼척은 원전 건설을 주민투표로 막아낸 지역”이라며 “정부는 지역공동체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 신규건설을 당장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삼척시도 “40년동안 갈등을 빚었던 원전 문제가 또다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월 20일 종교환경회의 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방류 중단과 핵 발전소 생산 중단을 촉구하는 순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 7월 20일 종교환경회의 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방류 중단과 핵 발전소 생산 중단을 촉구하는 순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우려

무엇보다 탈원전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게다가 기존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대한 해결책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 원전 건설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많다.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할 예정이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마련은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핵폐기물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규 원전을 지으면 핵폐기물 문제가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전세계의 탈원전 움직임이 잠시 주춤했다 하더라도 이는 일각의 흐름이라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다. 실제로 에너지 시장조사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원전의 발전량 비중은 9.2%로 2000년(16.8%)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세계 원전 투자 규모 또한 약 41조원으로 재생에너지 투자규모(약 659조) 대비 6.2%에 그쳤다. 여기에 신규 투자 지역도 중국, 러시아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앞으로도 원전의 비중은 지속 감소할 전망이다.

수도권 반도체 특구 필요전력을 원전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에 대해서도 정부가 RE100 캠페인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최근 RE100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만 ‘나홀로 역주행’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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