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과 정부, 골 깊어지는 의대 정원 증원문제
보건의료노조, 의대 정원 증원 요구하며 총파업
정부, 복지부 압박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야”
대한의협, “인력 과잉 등 부작용 발생” 반대

[뉴스엔뷰] 의대 정원 증원은 오래 전부터 시작된 해묵은 이슈지만, 갈등을 둘러싼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보건의료노조의 파업까지 불러왔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양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2020년 이후 3년만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사진 / 뉴시스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2020년 이후 3년만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사진 / 뉴시스

국민 66%가 증원 찬성

지난 1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는 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임금교섭 등을 주장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이틀간 벌인 총파업 이후 지난 17일부터는 아주대의료원, 한림대의료원, 국립교통재활병원지부 등은 오는 17일부터 현장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총파업은 145개 의료기관에서 4만5000명이 참여한 19년 만의 대규모 파업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통해 의대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등 의사인력 확충을 비롯해 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수 1대 5로 환자 안전 보장, PA간호사(진료보조인력) 등 불법 의료행위 근절 ,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공공의료 확충과 코로나19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등을 요구했다.
지난 4월에는 보건의료노조가 국민 66%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의사인력 확충을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건의료인력 현황과 확충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8.4%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지역별로 의사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지역은 81.3%로 전남이 가장 높았고 울산 69.7%, 전북 69.4%, 충남 68.7%, 대전 65.7%이 그 뒤를 이었다. 수도권 거주자의 57.7%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의사가 부족해 겪는 가장 큰 불편사항으로는 응답자의69.7%가 진료 대기시간을 꼽았다. 그 뒤로는 진료 예약 어려움(57.9%), 짧은 진료시간으로 충분한 상담을 받지 못한 것(50.0%), 진료·검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한 것(37.1%), 응급상황 대처 지연(36.5%) 등이었다. 의사 부족으로 의료 사고를 당했다는 응답도 9.6%에 달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조사로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적정의료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며 “정부는 더 늦추지 말고 불법의료 근절과 의대 정원 확대, 적정의료인력 기준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총파업 대회 사진 / 뉴시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총파업 대회 사진 / 뉴시스

논의 지지부진에 울상 짓는 복지부

보건복지부 역시 오는 2025년 대학 입학 정원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관련 논의에서 지자체, 의료계의 반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국회는 복지부를 맹공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대 정원 증원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 날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요 대학병원 분원 붐이 일어난 상황을 지적하며 의사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병상이 늘어나면서 지방 의료 공백이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원이 의원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 건립을 추진 중인 대학병원 분원은 총 11곳으로 병상수는 6600개다.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 배곧신도시에 800병상 규모 분원을 2027년 개원할 계획이고 서울아산병원과 연세의료원도 각각 인천 청라와 송도에 800병상 이상 분원을 세울 예정이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 역시 각각 서울 송파 위례신도시(1000병상), 경기 김포(500병상)에 분원을 지어 세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경희대의료원은 경기 하남(500병상), 아주대의료원은 경기 평택과 파주(각 500병상), 고려대의료원은 경기 과천과 남양주(각 500병상), 한양대의료원은 경기 안산(병상수 미정)에 추진 중으로 알려졌다.

김원이 의원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전국에 개설된 대학병원은 총 16곳. 그중 절반이 넘는 9개가 수도권에 자리했다. 소속된 의사 수는 총 4298명이지만, 절반에 가까운 1959명이 수도권에 근무하고 있다. 김 의원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가 쏠리고 지역 간 의료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의료 불균형을 더 심해지리란 우려가 높다”며 “지방 의료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6월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윤석열정부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6월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윤석열정부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의사 고령화와 생산성 하락으로 증원 필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역시 같은 자리에서 “의료계와 공감을 이룰 사안이 아니라 복지부가 주도를 해서 밀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이미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향후에도 관련 논의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의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점검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지 체크하겠다”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근무 여건 개선 등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강구해 2025년에는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병상 확충에 대한 지자체장들의 관심이 높아 분원 설립을 제한하는 것엔 다소 어려움 있다”고 전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복지부 주관 전문가 포럼에서 의사 인력 증원을 뒷받침하는 주장들도 제기됐다. 얼마전 복지부가 개최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 한 적정 의사인력 확충 방안 논의를 위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에서 의사 인력의 고령화와 여성 의사 비율 증가 등 생산성 하락과 실효인력 감소에 따라 의사 인력 수급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

데이터에 따르면 향후 2050년 기준 약 2만 2000명 이상의 추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의대 정원 5% 증원 시나리오가 최상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사협회의 반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큰 과제가 있다. 의사협회는 오랜 시간 의대 증설을 ‘의사 인력 과잉’이라는 이유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의료현안협의체 11차 회의에 의협 대표로 참석한 이광래 인천시의사회 회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의대 증원, 의사 확충은 수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라며 “국민 의료비는 늘어나고,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 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붕괴시키고, 의대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 이공계 파멸을 야기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과 의사 확충은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 뉴시스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과 의사 확충은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 뉴시스

의협, “이공개 파멸 야기할 것”

지난달 20일에는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문제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왕규창 원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한희철 이사장과 안덕선 원장,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신찬수 이사장,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김장한 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과 간담회를 갖고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의협 이필수 회장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수한 의료 인력이 기피분야에 자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의료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필수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을 통한 법적분쟁 부담을 해소해주고 기피분야에 대한 두터운 보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인력 확충이 고려돼야 한다면 확충된 인력들이 고스란히 필수·지역의료 분야에 유입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며 “의사인력과 관련한 합리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의학교육계 단체들과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협의 목소리는 내부 갈등까지 빚는 모양새다. 의협 대의원회는 오는 23일 의협 회관에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집행부 불신임안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표결하기로 결정했다.

의협 대의원들이 이필수 회장 등 집행부 불신임으로 인한 탄핵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이유 역시 바로 의대 정원 증원 이슈다. 의협 내부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을 대부분 반대하고 있지만 집행부가 이에 반해 독단적으로 정부와 합의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의대 정원 증원은 지난 2020년 국정감사 당시 여당 의원들이 의료인력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의대상 국시 거부로 인한 PA 인력 활용 등을 내놓으며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슈를 정면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코로나19 방역 체계로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잠정적 합의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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