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오늘 칼럼은 본격적인 주제에 앞서 10년도 더 된 영화를 짚어보려 한다. 영화는 지난 2009년 3월에 개봉한 ‘왓치맨’이다. 국내에 개봉했을 땐 단순히 히어로물 영화로만 알려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약 60만명의 관객동원에 그친 비운의 영화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반발해 두 번째 사직서를 낸 김오수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반발해 두 번째 사직서를 낸 김오수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영화 왓치맨은 미국의 코믹스 양대산맥인 ‘DC 코믹스’에서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다. 하지만 다른 DC 코믹스 히어로인 슈퍼맨과 배트맨 등은 세계관을 같이하지 않는 독립적인 작품이다. 그럼에도 원작 자체는 작품성이 높은 편으로, 만화 중에선 유일하게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 이후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왓치맨은 현재 영화화된 마블의 인기가 시작된 ‘아이언맨’이 개봉한지 거의 1년 만에 개봉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여러모로 비교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봤어야 할 영화다.

어떤 영화도 그 안에 숨은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왓치맨 만큼은 메시지를 순도 100%로 드러내고 있다. 왓치맨에서 나오는 핵심 메시지는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이다. 감시자, 즉 왓치맨은 막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들이다.

마블과 같은 일반적인 히어로물 영화에선 막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가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등의 서사를 그려낸다. 하지만 왓치맨은 굉장히 어둡고 짙은 영웅의 뒷면을 그려내고 있다. 더군다나 왓치맨에 담아낼 내용도 많아, 개봉 당시 많은 장면이 편집됐으며 감독판의 분량은 3시간 35분이나 된다.

감히 약 3시간을 압축한다면 ‘히어로를 누가 통제할 것이냐’라는 의문을 담았다고 보면 된다. 영화 속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들은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하며, 반정부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이들에게 ‘히어로’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지 슬슬 의문이 들 수 있다.

감시자들. 왓치맨 영화 속에선 막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현실로 가져와 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특정 집단이 감시자들이 된다면, 그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헌법은 국민에게 국가의 통치권이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보다 우위에 있는 기관은 없어야 하며, 국민 정서에 반하는 판단을 하는 기관은 마땅히 자세를 바꿔야 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것이 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감시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이어야 하고, 너무 막강한 힘을 가진 특정 집단은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우리나라가 삼권분립을 통해 각 기관이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다.

이쯤되면 이번 칼럼에서 다루는 주제를 눈치챘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영화 왓치맨은 최근 ‘검수완박’ 법안을 놓고 둘러싼 갈등을 놓고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검찰의 권한이 막강한 문제가 마치 감시자들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협의가 여러 차례 있었다. 공수처를 설치해 검사 역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만든 것도 성과일 수 있다. 당시 국회에선 육탄전까지 벌이면서 어렵사리 만들어진 법이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생겨났는데,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느냐를 두고 정치권에서 여야 간의 대립이 심화됐다. 특히 차기 대통령이 검찰 출신인 윤석열 당선인이고 차기 법무부 장관마저 검찰 출신으로 내정된 상태에서 일어난 논란이다.

검찰의 반발이 예상보다 심각한데, 자신들의 밥그릇이 빼앗기는 것이 못마땅한지 검찰총장부터 고검장까지 줄줄이 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초임검사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을 반대하고 있어 필자도 반대하는 이유에 눈길이 쏠렸다.

검찰은 수사권이 경찰에만 주어진다면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항변을 하고 있다. 마치 수사기법에서 경찰보다 검찰이 더 낫다고 보는 해석이다. 하지만 ‘별장 성접대 동영상’ 속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얼굴이 보이는데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며 무혐의 처분을 했던 검찰이 당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검찰의 수사권 범위를 놓고 여야간의 옥신각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겐 남일 같아 보이지만, 정치인들에겐 꽤나 중대사인지 뉴스에서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여당의 원안에 야당이 반대하자 국회의장의 중재안이 나왔으며, 이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파기된 모양새다. 이 상태로는 이번 정부 내에서 처리될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이번 칼럼에서 특정 방안을 지지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안이 꼭 더 낫다고 하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에선 더욱 이렇다.

개인적으론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라면 변화를 시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뀐 방안이 좋지 않다면 다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이게 또 정치다. 지금이야 여당이 과반 이상의 다수당이지만, 2년이 지나면 또 총선이지 않는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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