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뉴스가 모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관련해 내뿜는 기사로 가득하다. 올해만큼은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미소로 서로를 마주하자고 약속했던 세계인들은 잔뜩 찡그린 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엔뷰] 세상 뉴스가 모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관련해 내뿜는 기사로 가득하다. 올해만큼은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미소로 서로를 마주하자고 약속했던 세계인들은 잔뜩 찡그린 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 더 이상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면서 칼럼을 시작한다.

영화 황산벌 스틸컷 
영화 황산벌 스틸컷 

전쟁은 무척이나 참혹하지만, 영화에서는 조금이나마 코미디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허용된다.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전쟁이었어도 모티브가 돼서 코미디 전쟁영화로 탄생하는 일도 생긴다. 이 같은 영화로 2003년에 제작된 ‘황산벌’을 꼽을 수 있겠다.

‘황산벌’은 영화소개란에서 코미디로 분류돼있다. 하지만 여기엔 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코미디라면 코미디라고 볼 수 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블랙코미디에 가깝고, 오히려 전통사극영화보다 더욱 역사에 기초한 전쟁영화라는 평가가 나왔던 작품이다.

당시에도 그렇지만 미디어나 전통사극에서 사투리는 낮은 계급의 언어로 웃음을 유발하는 소개로 희화화된다.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양반가 대부분이 지금의 수도권 출신이 아니었던 점을 고려했을 땐, 다들 제각기 출신지의 사투리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국가가 각자 사투리를 쓰는 것도 고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비교하기엔 꽤나 먼 시대적 배경의 영화이긴 하다. 세계1차, 세계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있고 ‘태극기 휘날리며’와 ‘고지전’과 같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물론 좋은 영화다. 그래도 ‘황산벌’을 선택한 이유는 전쟁이 가진 참혹함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면서 이를 좋은 배우들이 명연기로 받쳐줬기 때문이다.

특히 ‘황산벌’은 대사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가 남달라 영화를 관람한 후에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중에서 영화 속 계백 장군이 전쟁에 나가기 전 자신의 가족을 죽이려는 장면에서 계백의 처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선아가 속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를 듣고 반박하는 대사가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이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면서도 과거 전쟁사에서 목숨을 바쳐야 했던 많은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선 화랑의 관창이 나와 혼자 적진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당시 화랑 중에 한 명을 뽑자는 회의에서 “화랑하면 관창, 관창하면 화랑”이라며 관창이 뽑힌다. 결국, 화랑도 자신의 이름값이 높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사기진작을 위해 죽어야 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영화에선 연개소문이 나오는데, 황산벌 전투에선 당연히 보이지 않지만 명대사를 하나 선사해준다. 영화 속에서 당나라의 황제였던 당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나서 자리에 올랐다는 것과 신라의 무왕이 서자였다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정통성’과 전쟁을 연결시켜 나오는 대사다.

“전쟁은 정통성 없는 놈들이 정통성 세울려고 하는 거야.”

마치 이 대사는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러시아와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가 명분을 정통성으로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것과 같다. 독일 나치도 민족 우월주의를 기반 삼아 자신들인 게르만족의 정통성을 앞세워 과거 영토를 되찾고 타 민족을 학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 지금의 러시아도 과거 소련의 영토 회복과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을 흡수해 소련의 정통성을 이으려는 것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전쟁이 얼마나 하찮은 명분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소멸시키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낸다. 그중에 화랑의 관창이 죽어서 시체로 돌아왔을 때,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또 다른 화랑을 보내라고 지시한다. 여기서 우리가 머릿속에 새겨야 할 대사가 나오는데, 이 대사는 관창의 아버지인 김품일이 김유신에게 “형님 미쳤냐”라고 말한 다음 김유신 역할의 배우 정진영의 연기까지 더해져 일품이다.

“그래 미쳤다. 자식 죽으라고 보낸 너는 안 미쳤냐? 제 식구들 쳐 죽이고 나온 계백이는 제정신이겠냐? 다 미친 거야. 미쳐야 하는 거야. 전쟁은 미친놈들 짓인 거야.”

영화에서 이 대사가 나오는 부분 만큼은 코미디 색깔은 전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은 미친놈들 짓’이라는 대사처럼 지금의 러시아가 벌이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너무나도 참혹하고 미쳐버린 결과를 만들었다. 어쩌면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명대사 이외에 영화 장면 중 짚어볼 만한 부분은 마지막이다. 백제가 전쟁 참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백 장군은 도망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남아서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실제 역사에서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영화에서의 계백은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만약 계백이 살아서 도망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자. 우선 황산벌 전투는 신라의 승리였겠지만, 계백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김유신은 계백을 죽이기 위한 전투를 또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이 끝까지 목숨을 내놓고 싸운 건, 자신이 죽어야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죽음을 택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장군인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병사들의 죽음을 막겠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 도망갈 수 있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끝까지 수도에 남아서 항전한 것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전쟁이 나면 왕이 먼저 도망을 치던 전통을 갖고선 근대에 들어 대통령도 이를 따라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번 전쟁은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 보다 지혜롭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매듭지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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