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대한방직 부지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크기만 23만565㎡로 바로 옆에 위치한 전북도청 부지의 두 배 정도 넓이를 보이고 있다. 지도로 보면 더욱 아이러니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넓은 부지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싶다.

[뉴스엔뷰] 새로운 달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마음을 다잡는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지난해 얼마나 치열하게 한 해를 보냈는가 생각해보자. 지난해 살아남은 우리는 승자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승자라고.

전라북도 전주시 서부신시가지 옛 대한방직 공장부지. 사진/ 카카오맵 갈무리 
전라북도 전주시 서부신시가지 옛 대한방직 공장부지. 사진/ 카카오맵 갈무리 

바둑 용어 중에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한두 개의 바둑알은 쉽게 상대의 돌에 둘러싸여 죽을 수 있지만, 많은 돌이 모인 바둑알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차곡차곡 바둑알을 쌓아 두면 그 안에서 집을 내어 살길을 모색할 수 있다.

바둑을 ‘땅따먹기’로 비유하듯이 부동산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부동산에선 개발이 예상되는 곳에 있는 건물을 팔지 않고 꾸준히 갖고 있는 것을 ‘알박기’라고 한다. 바둑알과 알박기라니 왠지 그럴싸하다.

세간에 알려진 알박기 사례는 찾아보면 무수히 많겠지만, 내가 아는 최신 사례 중 ‘대마’로 꼽을만한 이야기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다. 다만, 지금은 알박기를 시도한 회사가 해당부지를 팔았으니 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 꺼낼 얘기는 전주의 서부신시가지에 위치한 옛 대한방직 공장부지 문제다. 이 문제는 지역민과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대체로 그 속에 숨은 스토리는 모르고 있다.

전주에서 대한방직 부지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크기만 23만565㎡로 바로 옆에 위치한 전북도청 부지의 두 배 정도 넓이를 보이고 있다. 지도로 보면 더욱 아이러니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넓은 부지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싶다.

전주의 서부신시가지는 1993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전북도청과 전북지방경찰청, KBS전주방송총국 등이 들어섰다. 이제는 고층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곳곳에 있는 전주의 신도심이 됐지만, 개발 초기에 지지부진한 틈을 타 대한방직이 공장부지를 매각하지 않고 버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알짜배기’ 땅으로 거듭난 대한방직 전주공장이 매각 절차에 돌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자광이라는 작은 회사가 나타나 1980억원에 이 땅을 사들였는데, 이 회사는 자본금 10억원의 작은 중소 건설시행사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수상한 움직임이 계속 포착됐다.

자광의 주된 거래는 롯데건설이었고, 대한방직 부지의 계약 보증 역시 롯데가 해준 것이었다. 자광은 사실상 적자기업이면서 롯데의 ‘껍데기’가 아니냐는 의문이 이때부터 나돌았다. 전주지역은 한때 전주경기장 개발문제를 놓고 롯데와 갈등을 겪기도 했으며, 호남은 지역 특성상 대기업이 들어오면 지역상권을 망가뜨린다는 인식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자광은 매입한 부지에 ‘143 익스트림 타워 복합단지’를 짓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어딜봐도 롯데타워가 떠오른다. 143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건데, 마천루를 지어서 상업지구를 형성해 돈을 버는 행위는 롯데식 경영의 특징이다.

또 이러한 사업 규모는 2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음에도 자광의 당시 연매출은 모기업 자광건설이 고작 700억원 수준이었다. 이쯤되면 당시 언론과 지역민이 얼마나 이 사업을 의심했을지 예상이 될 것이다.

그러자 당시 자광은 지역 내 최대 일간지였던 전북일보를 사들이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자광은 전북일보 주식 45%를 사들여 대주주가 됐다. 이를 두고 ‘언론 길들이기’를 지적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 문제가 본격화된 건 지난 2018년으로 벌써 해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당초 자광의 예상대로라면 2023년에 공동주택 3000세대, 복합쇼핑몰, 430m 높이의 익스트림타워, 호텔, 문화시설 등이 건립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전주시에서 자광의 방안이 장기적 도시 개발계획 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안서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이어 전주에선 시민공론화위원회가 구성돼 논의가 이어졌고 지난해 3월 권고문을 내놓았다. 권고문의 핵심은 ‘전체 부지의 40%(9만2000㎡)를 환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광 측이 전주시에 입장을 전하지 않아 이 문제는 또 해를 넘겨 2022년이 됐다. 당초 자광도 개발이득으로 부지의 18%를 기부체납할 예정이었지만, 40%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 배가 아픈가 보다. 완벽하게 남들을 속이고 멋진 마천루를 지을 수 있었는데 어그러졌으니 억울할 법도 하다.

이게 정말 억울하다면 영화 ‘타짜’에서 나온 고니의 명대사를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스려보면 어떨까 싶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고니는 마지막 도박에서 이긴 후 “난 딴 돈의 반만 가져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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