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는 1기가 인터넷 상품이면 속도 측정시 800메가 이상 나와야 개통을 해줬다면, 지금은 600메가만 나와도 개통이 가능하다. 기가인터넷보다 더 저렴한 500메가 상품을 가입했을 때보다 사실상 100메가 밖에 속도 차이가 안 나는데 소비자들은 이를 모르고 쓸 수밖에 없다.”

[뉴스엔뷰] 최근 불거진 KT인터넷 속도 저하 논란 원인에 민영화 전환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터넷 설치 시 일정 수준 이상 속도 측정이 되지 않더라도 본사 영업압박에 못 이겨 개통부터 한다는 게 현장 관계자 얘기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소비자가 직접 속도측정부터 보상요구를 해야 하는 약관내용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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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KT새노조, 희망연대노조 KT서비스지부,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하 시민단체)는 1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 인터넷 속도저하 사건의 원인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유명 IT전문 유튜버 ‘잇섭’은 자신이 사용 중인 KT 10기가(10Gbps) 인터넷 요금제의 인터넷 속도를 측정한 결과 10분의 1수준인 100Mbps로 측정된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비슷한 서비스 장애를 호소하는 이용자가 등장하자 나흘 뒤 KT는 임직원 명의의 사과문을 올린 바 있다.

일시적인 오류로 끝날 것 같던 ‘인터넷 속도 저하 논란’은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다시 불거졌다. KT가 민영화 이후 수익극대화 경영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통신서비스 품질이 저하됐고, 인터넷 속도 저하는 그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단체 등은 “KT는 민영화 이후 끊임없이 비용절감과 수익극대화 전략을 취하면서 인건비와 시설투자비를 줄여왔고 KT직원이 하던 인터넷 개통과 AS업무를 KT서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외주화했다”면서 “최근 이동통신사 3사가 저마다 ‘탈(脫)통신’을 강조하고 KT역시 투자비와 연구비, 시설투자비를 계속 줄여온 구조적인 문제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터넷 개통 시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가 나올 때까지 설치 작업을 보강해야 한다. 그러나 실적과 성과급 압박, 열악한 노동환경과 밀어내기 개통처리로 인해 이러한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러다보니)고객에게 정확하고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개통 설치 시 고객이 약정한 상품보다 낮은 품질의 서비스가 제공되더라도 ‘선 개통 후 처리’하는 등 빨리 빨리 업무구조를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KT 인터넷 설치기사도 품질 저하 서비스 제공 배경에 본사의 고강도 영업압박이 있음을 증언했다. 인터넷 설치기사 A씨는 “현장 기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 상황에서 돈이 걸린 문제니까, 영업압박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 “회사 내부에서는 ‘영업해서 연봉 1200만원 더 받아가자’는 캠페인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오주헌 KT새노조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KT는 비용을 절감하고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혀 속도가 나오지 않는 곳에서도 마구잡이로 기가인터넷을 팔고 이를 편법을 동원해 개통처리한다”면서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기가인터넷 개통을 부풀리면서도 내부 통제장치나 거버넌스 부재로 이를 견제하거나 개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위원장 역시 “KT의 인터넷 개통업무는 KT의 자회사인 ‘KT서비스’가 맡고 있다. KT서비스는 2000년대 초반 AS직군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이 단행된 후 협력업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서 설립된 KT 자회사”라면서 “KT서비스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인센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최저임금 이상 벌기 위해서는 인터넷 신규 개통을 무리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근 KT서비스북부는 인터넷 개통 속도 기준을 기존 80%에서 60%로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호계 KT새노조 사무국장은 “기존에는 1기가 인터넷 상품이면 속도 측정시 800메가 이상 나와야 개통을 해줬다면, 지금은 600메가만 나와도 개통이 가능하다”면서 “기가인터넷보다 더 저렴한 500메가 상품을 가입했을 때보다 사실상 100메가 밖에 속도 차이가 안 나는데 소비자들은 이를 모르고 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소비자 불리하게끔 설계된 약관내용

또한 이 같은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약관상 소비자가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보상받을 수 있는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통신사들은 인터넷 서비스 약관에 공통으로 ‘30분 동안 5회 이상 측정해 3번 이상 최저속도(KT의 경우 60%이상)에 미달할 경우 해당일 이용 요금을 감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범석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분과장)는 “현재 약관에 따르면 인터넷 속도 저하 현상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가입자인 국민들에게 있을 뿐 아니라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면서 “일반 가입자들이 실제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일일이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 그때마다 보상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설사 그렇게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 그 해당일의 요금만 감면하기 때문에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3천원 수준에 불고하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당연히 낸 요금만큼의 서비스를 받아야할 소비자가 일일이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 보상을 받아야 하는 약관은 명백하게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이라며 “이동통신사 3사는 본인들이 받아가는 요금은 매월 꼬박꼬박 고지하면서 본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와 고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요금은 월 8만 8천원을 받으면서 6만 원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동통신서비스 품질 전수조사 ▲불공정한 약관개선, ▲서비스품질에 대한 고지안내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동시에 국회에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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