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성교육은 인권과 평등에 기반한 교육이다. 단순히 몸에 대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성적인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지, 심리, 문화, 정서적인 것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가족, 관계, 재생산, 몸, 섹슈얼리티 등 전반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성에 대한 태도를 갖추게끔 지식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것을 함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제232호 뉴스엔뷰] 최근 성소수자 편견과 차별, 혐오에 공개적으로 맞서 싸운 트랜스젠더들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달 24일 세상을 등진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38)에 이어 이달 3일 첫 트랜스젠더 직업군인 변희수 전 육군 하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스스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공개한 뒤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이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반대 투쟁을 해왔다. 우리 사회 일부는 이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차별과 혐오를 쏟아냈다.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의 비틀린 인식이 이들에겐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김 위원장과 변 전 하사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로 불리는 이유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엔뷰>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 혐오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중·고 시절 성적 감수성을 높이는 인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국가인권위원회 자료 참조) 것과 관련, ‘아동·청소년들의 건강한 성 가치관 조성’을 위해 지난 1995년 설립된 ‘탁틴내일’에서 활동했던 이상은 시립은평청소년성문화센터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센터장은 최근 사망한 두 명의 성소수자에 대해 “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 중에 하나일 뿐인데, 다른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주변사람과 사회로부터 모두 거부당했다. 존재 부정을 당한 것”이라면서 “(결국) 유령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당신들의 잘못이다’, ‘당신이 문제다’라고 만든다. 성소수자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 한다”고 지적했다.

‘유령 같은 존재로 만든다’는 이 센터장의 지적처럼 김기홍 위원장은 사망 직전 남긴 글에서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다”(페이스북),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맥락 따위 사라진 채 없다시피 왜곡된 말도 … 계속 고립되어 있다”(유서 내용 일부)고 밝힌 바 있다.

변희수 전 하사 역시 군의 철저한 무시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개연성이 있으니 전역심사를 3개월 연기하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군은 그를 강제전역으로 내몰았다. 전역 후 “훌륭한 여군이 되어 나라를 지킬 기회를 달라”며 제출한 변 전 하사의 군 인사소청 역시 기각 당했다. 결국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진행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변 하사의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며, 육군참모총장에겐 전역 처분을 취소할 것, 국방부장관에게는 성전환 수술 장병을 배제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지만, 돌아온 답은 ‘권고 불수용’이었다. 변 전 하사가 사망한 직후에도 군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이 입장을 낼 것은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인 바 있다.

이 센터장은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들의 가장 쉬운 논리가 있다. 동성애는 후천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치유가 가능하다고 여긴다”면서 “하지만 동성애가 선천, 후천이라고 딱잘라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단순히 ‘후천적이고 고칠 수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편견과 차별을 낳고, 더 나아가 혐오가 된다. 성소수자들이 고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적인 시선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를 하려면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너무 많은 사람의 눈물과 피를 요구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벌써 최근 세 명의 죽음이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그칠 게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공부와 교육을 통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센터장은 “선진적인 성교육을 하는 나라들은 어릴 때부터 이를 실시한다”면서 “단순히 생물학적인 교육이 아니라, 포괄적 성교육이다”고 말했다.

그는 포괄적 성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괄적 성교육은 인권과 평등에 기반한 교육이다. 단순히 몸에 대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룬다. 관계, 가치, 문화, 성평등, 신체, 재생산 등 전반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의 능력을 높이게 되는데, 성에 대한 지식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것을 함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포괄적 성교육이 마주한 높은 장벽

하지만 이 같은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비난은 거세고, 뿌리가 깊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용 도서 7종을 전량 회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회수된 <엄마 인권 선언>과 <아빠 인권 선언>은 국제엠네스티 지원으로 출간된 도서로, 프랑스에선 3만부 이상 팔리고 10개 언어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또한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역시 스웨덴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등 유수의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페르닐라 스탈펠트 작가의 작품이다.

이상은 은평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인권과 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으로 나를 비롯한 세상과 어떠한 태도로 소통할 지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진/본인 제공.
이상은 은평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인권과 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으로 나를 비롯한 세상과 어떠한 태도로 소통할 지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진/본인 제공.

하지만 국내에서는 <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은 다양성을 강조한 장면에서 동성애를 미화·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센터장은 이에 대해 “유네스코에서는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은 특별하며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루고 있으며, 초등 저학년에서는 성적지향, 성 정체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시키거나 괴롭히는 것은 잘못됐음을 핵심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안돼’, ‘하지마’에 대한 교육으로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유네스코의 내용을 받아들여 국내 실정과 문화에 맞게 선진 성교육을 실시하려 했는데, 일부 단체들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양한 정체성을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동성애 교육을 해서 마치 동성애가 아닌 사람을 동성애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니다.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것에 대해 반대하는 집단이 얘기하는 것은 ‘그런 교육을 해서 동성애자로 만든다’고 한다. 심지어 ‘인권과 평등에 대한 교육을 한다고 해도 너희가 좋게 포장하는 것일 뿐 동성애 조장하는 교육이다’고 비난한다. 동성애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교육을 하면 바뀌는 것처럼 말한다. ‘네 자식 같으면 가만히 두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결국 부모님들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내 자식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안전하고 행복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결국 이 같은 ‘교육의 포기’는 또 다른 김기홍과 변희수가 선택한 길이 된다. 이 센터장은 “이미 학교에서는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중학생 406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성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으로 고민해본 학생은 각각 26.1%, 30.7%로 나타났다”면서 “‘동성애’가 나온다는 이유로 회수하는 건 그 친구들을 지워버리는 조치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도래될지 모두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보여주고 어른들이 보여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면서 “교육의 부재를 통해 누군가는 존중받아도 되고, 누군가는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나뉜다. 그야말로 편을 나누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관련 교육이 놓여있는 시스템이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현재 학교 내 성교육의 시스템은 수업 시수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장이나 보건교사의 재량에 따라 성교육에 노출정도가 학교 마다 차이를 보인다.

지난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51.1%는 ‘학교 밖에서 성지식과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주 경로는 SNS·유튜브 등 인터넷(22.5%)이었다. 편향되고 왜곡된 성지식이 아이들에게 흘러들어간다.

이 센터장은 “학교에서 성인권교육을 진행하는데, 10회 정도 실시한 아이와 받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는 확연하다.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감수성이 높다”면서 “하지만 이 교육은 지자체와 여성가족부에서 같이 하는 것인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 초등학교가 서울지역이 600개가 있는데 그 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15개 학교의 한 학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사례에서 보면 성평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높은 수준으로 강조된다. 스웨덴의 경우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며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면서 “이런 교육의 효과는 10대 출산율로도 정확히 드러난다. 스웨덴의 10대 출산율은 출산인구 100명당 0.98명으로 유럽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영국(3.45명)과 프랑스(2.30)명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또한 조기 성교육이 진행된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아이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혐오와 차별, 편견을 가질 확률이 낮다. 실제 우리도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어른들 보다 높은 편이다”면서 “아이들이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과거처럼 순결주의를 강조하면서 ‘안된다’만 강요한 교육 안에서는 이런 아이들의 성인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여러 가지 정보를 주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결국 이것이 다른 이를 존중하고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는 교육의 첫 걸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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