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정부는 투만독 선주민뿐만 아니라 필리핀 곳곳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초법적 살인을 진행했다. 국제사회는 두테르테 정부의 이 같은 행위를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했으나, 초법적 살인이 필리핀 선주민들에게도 발생한 것이다.

[뉴스엔뷰] 지난 12월 30일, 필리핀 파나이 섬 카피즈와 일로일로 주에서 진행된 군·경 합동작전으로 인해 투만독(Tumandok) 선주민 지도자 9명이 살해당하고 17명의 주민이 연행됐다.

필리핀 경찰과 군은 총기 및 폭발물 불법 소지 혐의를 받는 필리핀 공산당과 신인민군 지지자 및 당원들에 대한 28건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군·경은 투만독 선주민 주거지에 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사진/뉴시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사진/뉴시스.

두테르테 정부는 투만독 선주민뿐만 아니라 필리핀 곳곳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초법적 살인을 진행했다. 국제사회는 두테르테 정부의 이 같은 행위를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했으나, 초법적 살인이 필리핀 선주민들에게도 발생한 것이다. 

이번 투만독 선주민들에 대한 학살에 한국 시민사회가 주목하는 이유는 투만독 주민들이 ‘필리핀 할라우강 다목적 사업(2단계) (Jalaur Mega Dam project)’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필리핀 할라우강 다목적 사업(2단계)’은 지난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유상원조로 2천 5백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댐 사업으로 인해 직·간접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은 지진 발생 위험성, 비자발적 이주 발생, 조상 묘지 훼손, 필리핀 국내법 및 국제법 위반 등을 이유로 댐 건설을 반대해왔다.

할라우댐 사업을 오랫동안 반대하고 저항해 온 투만독 선주민들과 필리핀 활동가들이 결성한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 소속 활동가와 지역 주민은 지난 2018년 4월과 12월 한국을 방문, 할라우댐의 문제점을 알리고 선주민의 피해에 대해 호소한 바 있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은 필리핀 경찰과 군대에 의해 초법적 살인을 포함해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댐 사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선주민 거주 지역에 무장한 군대가 주둔하고, 해당 사업을 반대한 선주민 지도자들이 살해당하고 이로 인한 공포로 주민들은 거주지를 떠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는 지난 2017년 한국 기업들의 국내외 활동으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에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공공금융기관들이 기업들과 사업 프로젝트에 보조금 지급 및 원조 융자를 해줄 때에 인권 관련 사항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는 대규모 개발원조사업이 미치는 악영향을 예방하고 지역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세이프가드’를 수립하고, 해당 사업에 적용하고 있지만 EDCF 세이프가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필리핀 활동가 존 알렌시아가와의 인터뷰 내용

몇일 전(지난 12월 말) 투만덕(필리핀 비사야 섬 파나이 산악 지대에 사는 원주민) 원주민 9명이 숨지고 16명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필리핀 정부는 정부 비판자와 반대자, 시민 운동가, 심지어 언론까지도 국가에 대한 적으로 간주하면서 그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의 원인은 사회정치적, 경제적 위기다. 정부 비판자와 반대자들, 운동가들은 정부를 향해 초법적 살해를 근절하고 모든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를 세우며,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라는 시민으로서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다.

지프니 폐지 정책 중단, 쌀 자유화 법 폐지, 부패 근절과 인권존중 또한 현 정부에 대한 당연한 요구이지만, 두테르테 정권은 이러한 정당한 요구들을 억압하고 있다.

현정부는 개혁과 국민들의 곤궁을 해결하라는 요구에 응답하지 않은 채, 오히려 50년 동안의 고통의 원인을 국민들 사이의 내부 갈등으로 돌리고, 이 갈등을 유발하는 집단이 정권 반대자들이라고 매도하면서 이들을 탄압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 결과, 두테르테 대통령 치하에서 이미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초법 살인을 당했고, 2020년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불순분자로 낙인 찍고 있다. 불처벌 (Impunity)의 문화가 정부가 공산당과 신인민군들 혹은 그들의 지지자들이라고 고발한 시민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예를 들면, 중앙정부는 저항하는 농민들과 원주민들이 항복하도록 하기 위해 농촌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이후 정부가 선정한 판사에게 수색영장을 신청하고 10일 이내에 경찰과 군의 합동작전통제실(SEMPO)을 설치한다.

영장 송달은 피해자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 1시에서 5시 사이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서 난라반 (희생자들의 저항) 이야기는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공작원들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 전에 희생자들에 대한 비난과 모욕 등을 조장했다. 운동가들의 경우는, 용공 혹은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면책되고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투만덕 원주민들의 땅과 생계를 파괴하는 파나이강 댐 프로젝트에 필리핀과 한국수출입은행이 관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지역 원주민들과 생태 문제에 대해 설명해달라

투만덕 지역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그들 조상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와 기본권인 민주적,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워 왔다. 굶주림과 빈곤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다. 최근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인해 농업 생산이 매우 불안정하다.

정부는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1962년 12월, 당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은 카피즈 지방의 타파즈와 자민단 시에서 33,310 헥타르 이상의 투만덕 원주민 땅을 군사보호구역으로 선포했다.

투만덕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기 위해 투마도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람부나오에 있는 조상들의 땅과 일로일로에 있는 칼리녹은 삼림 보호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정부는 농지를 목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했다. 투만덕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농사를 계속 지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상해를 입고 투옥되었다. 70년대에 투만덕 원주민들은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을 끝내고 정부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공격은 강화되었고 계엄령 기간 동안 라후그 마을을 포함한 많은 투만덕 원주민 마을들은 “무인지대”가 되었다. 많은 투만덕 지도자들이 죽었고 일부는 정부군에 의해 참수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투만덕 사람들은 그들 지역사회의 주민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프로젝트들에 저항해 왔다. 2011년, 그들은 한국 수출입은행 등이 주도하는 할라우 메가 댐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그들은 자유 의지와 사전정보공지를 동반하지 않은 강제 동의, 투만덕 매장지 및 성지 훼손, 협박, 괴롭힘, 뇌물, 날조 등 원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한 정부의 행위를 폭로했다.

한국 시민사회의 지원으로 투만덕 원주민들은 한국수출입은행, 계약업체 ㈜대우, 한국정부 대표에게 이 사업을 중단하라고 로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 캠페인으로 댐 건설은 2019년 1분기까지 지연되었지만, 필리핀 정부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한국에 와서 로비활동을 벌인 주민들은 칼리녹 시로부터 기피대상 (person-non-grata)이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요시찰 인물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소셜 미디어에서 수 없이 모욕 당했으며,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악의적인 용어들 (마약, 인격 파탄, 용의자, 요주의 인물 등)이 이들을 향해 많은 기자회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작년 10월 제45차 유엔인권위원회는 필리핀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 45/L.38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결의안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정부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떤가?

유엔인권이사회 (HRC) 결의안 45/L.38은 유엔인권고등판무관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OHCHR)이 필리핀 정부에 경찰폭력에 관한 조사와 자료 수집, 시민사회의 참여, 정부보고와 후속조치에 대한 시스템 개발, 테러리즘 대응 법제화 작업, 약물 통제 정책에 대한 인권적 접근적 등의 영역에서 기술과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 했다.

이 결의안은 OHCHR의 필리핀 인권 상황 보고서(A/HRC/44/22)에 대한 HRC의 대응으로, 조직적 인권 침해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보고서 (예: 초법적 살인, 임의 체포, 구금, 처벌, 시민권 침해,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위협, 시민 공간에 대한 제한) 요약본이 포함되어 있다.

OHCHR은 “초법적 살인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메커니즘이 실패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으며, 인권침해에 대한 불처벌 (면책)의 문화가 만연한 관계로 정의를 올바로 세우는 데 있어 실질적인 장애는 거의 극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OHCHR은 보고서는 HRC 결의안 45/L.38에 포함되지 않은 다음과 같은 다수의 권고안을 포함하고 있다.

(i)국가 안보 및 반폭동 정책의 철회 또는 검토 (ii) 초법적 살인과 국제 인도주의법 위반에 대해 공정하고, 철저하고 투명하게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 설치 (iii) 인권운동가, 정치적 반대자, 언론인들에 대한 정치적 동기에 근거한 고발 취하 (iv) 원주민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모든 단계에서 수수료, 사전 정보 공유, 동의 등을 포함한 참여 보장 (v) 유엔 특별 절차 감시 전문가를 초청하여 인권문제를 감시하고 국제사회와 UNHRC에 보고 (vi) 신뢰할 수 있는 국내 메커니즘의 결여 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메커니즘 선택. 따라서 HRC 결의안 45/L.38은 필리핀의 인권 악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는 극히 제한적이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결의안이 발표된 이후, 수십 명의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과 운동가들이 조작된 혹은 잘못된 증거를 바탕으로 살해되고, 체포, 구금, 기소되었다. 반폭동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정부 조직인 군대와 지방 공산무장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 태스크 포스는 계속해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시민 사회 단체들을 무장 지하운동의 회원 또는 지지자로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2020년 12월 30일 정부군의 공격을 받은 투만덕 원주민들에게 역시 불순불자, CPP-NPA (필리핀 공산당-신인민군) 지지자라는 근거 없는 꼬리표가 달렸다.

필리핀인권국제협의회 (ICHRP)와 같은 시민단체는 “인권조사 독립기구”를 조직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국 시민사회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연대를 보탤 수 있을까?

우리는 국가 폭력의 만행을 폭로하고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강조해야 한다.

인권 침해에 대한 민간의 독립적 조사는 투만덕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람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용이하게 할 것이고 정부를 더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필리핀의 초법적 살인문화가 종식되기를 바란다.

죽음을 조장하는 불처벌 (impunity)의 문화는 근절되어야 한다.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지역사회 전체가 인권침해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지역사회와 국내외 차원에서 진상규명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원주민 권리 옹호자들, 환경 운동가들, 인권 옹호자들이 필리핀에서 살인 행위가 중단되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를 요청 드린다.

또한 즉각적으로 독립적 조사단을 설치하고 학살 책임자들을 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한다.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투만덕 주민들은 의약품, 식품, 의류, 수면 매트 등이 당장 필요하다. 아울러 체포된 이들에 대한 법률 지원도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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