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용진씨가 딸을 찾아다니는 모습과 이후 가족이 겪는 오해와 불화 등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강 경사가 무심코 던진 “찾는다고 다 행복할까…”라는 말은 장기 실종자를 둔 가족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제231호 뉴스엔뷰]  ‘증발’은 액체 형태의 물질이 기화되는 현상으로, 이는 물질의 형태가 변한 것일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닌 증발”은 20년 전 실종된 막내딸 준원이를 찾는 최용진(57)씨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증발(Evaporated, 2019)의 메인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증발(Evaporated, 2019)의 메인 포스터.

 

사라지지 않았으니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실종아동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증발> 속 용진씨는 흔들림이 없다. 감정적이지 않고, 준원이와 관련한 제보가 있을 때면 경찰들과 함께 동행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펼친다. <증발>의 김성민 감독 역시 “처음 만났을 때 마치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눌러 녹음 내용을 듣는 것 같았다”면서 “준원이 아버님은 자기 세계를 단단히 구축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증발> 촬영 시작 2년 뒤인 2016년 서울경찰청은 장기실종수사팀을 신설한다. 그리고 수사팀의 강 경장은 용진씨와 김 감독을 만나 “혼자 아이를 찾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큐로 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찰만의 노력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며 영화 출연을 결정한다. 영화는 강 경장이 국내외 입양리스트를 확인하고, 준원과 비슷한 외모의 자녀를 가진 집들을 방문해 DNA를 대조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또한 <증발>은 수사팀이 나이 변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성인이 된 준원의 몽타주를 추정해 만드는 모습을 담았다. 준원이 실종된 당시 뒤늦게 출생신고 된 아이들 중 일부를 전수 조사해 준원양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모습도 나온다. 

강 경장은 “그간 준원양 사건 관련된 수사 보고서만 A4 용지 400~500장이 담긴 바인더 5~6개였다. 처음부터 단순 가출이 아니라 납치·유괴 등으로 가정하고 수사했다”면서 “재수사하며 과거 수사관들도 만나봤지만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타주 활용 기법과 관련해서는 “실종자 가족에게 반드시 아이를 찾아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못해봐서 한이 되지는 않게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단순히 실종된 준원양을 찾는 모습만을 담지 않았다. 

용진씨는 딸이 실종된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준원의 사진이 담긴 전단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실종 당시만 해도 법적인 제도가 미흡해, 제보전화가 와도 용진씨가 직접 나서야 했다. 강 경사가 용진씨의 첫 모습을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이유다. 

용진씨도 “유치원을 한 달 다니고 사라진 것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또 건강하게 잘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이제는 아이가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고 밝혔다.

이어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우리는 준원이를 기다려야 했고 심지어 어디 흔적이 있지 않을까 도배도 못하고 있는 그대로 지내고 있다. 먼지도 치우기가 부담될 정도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20년의 기간 동안 남은 가족 역시 ‘지치고 외로워졌다.’ 동생 실종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준선씨는 영문도 모른 채 가져야 했던 죄책감, 어떤 감정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짓눌려야 했던 과거의 과정을 “나도 어느 순간, 내 자신이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로 표현한다. 

영화는 용진씨가 딸을 찾아다니는 모습과 이후 가족이 겪는 오해와 불화 등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강 경사가 무심코 던진 “찾는다고 다 행복할까…”라는 말은 장기 실종자를 둔 가족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용진씨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 딸이 실종됐을 때, 막내딸은 막 100일이 됐다. 엄마가 둘째를 유치원 데려다 줄 때 손을 잡고 갔어야 했는데,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막내도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가게 내버려둔 셈이다. 그렇게 방치하다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이다. 둘째 딸을 잃어버리고 우리 가족은 해체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부모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내가 한 것 이상으로 했을 것이다. 표현을 못 했을 뿐 그냥 하루하루 지옥 속에 산다. 그래도 큰 애는 저보다 강하고, 우리 막내는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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