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이를 잃어버리고 10년 동안 문을 잠가본 적이 없다. 늘 대문을 열어뒀다. 특히 밤이 되면 노이로제 걸릴 만큼 외부 소리에 민감해 진다. 개가 조금이라도 짖으면 혹시나 해 나가보거나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을 본다거나 한다. 조그만 소리도 희망이고, 그 희망이 절망이 되고 고통이 되는 생활을 했다.”

[제231호 뉴스엔뷰]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이가 있을 법한 곳부터 상상도 못 했던 장소를 찾아다녔다. 파출소나 경찰서에 없어서 혹시 시설로 보내졌을까 싶어서 전국의 시설도 다 갔다. 또한 혹시나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나, 아니면 이미 죽어서 장례식장에 있을까 싶어서 온 곳을 뒤졌다. 그런데 못 찾았다. 이 과정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충격을 받았다. 그때가 4월 즈음이었는데 날씨가 따뜻하니까 폐차장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신앙인이어서 그런지 이런 아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끊임없이 신에게 물었던 것 같다. 왜 이 아이들을 제게 보여주시느냐고. 이때부터 내 아이를 찾는 것과 동시에 길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돌보고 실종아동을 찾아주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당시 현행법으로는 실종된 아이를 찾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한 후  지난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시작으로 수차례 법 개정을 이뤄냈다.  사진/성혜미 기자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당시 현행법으로는 실종된 아이를 찾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한 후  지난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시작으로 수차례 법 개정을 이뤄냈다.  사진/성혜미 기자

지난 1994년 4월 27일 전북 남원시 향교동 인근 놀이터에서 희영양이 사라진 뒤 서기원 대표가 딸을 찾는 과정에서 겪은 현실은 ‘제도의 부재’였다. 당시 미아보호법은 8세 미만 아동이 실종됐을 때 부모가 파출소로 아이를 찾으러 와야지만 인수인계해주도록 했다. 경찰서나 파출소는 아이의 보호자를 찾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24시간 동안 보호하고 있다 부모가 찾아오지 않으면 임시 보호시설로 넘겼다. 임시 보호시설 등으로 넘겨진 아이들은 나이가 어릴 경우 외화벌이 목적으로 해외입양 되거나, 성장한 아이들은 서울에서 부산 등 지방으로 다시 보내버리는 시스템이었다.

지난 2000년 초반부터 서 대표는 국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입법을 통한 실종 아동에 대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나선다.  그는 “법이나 제도가 실종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면서 “수사 기관도 24시간만 보호하고 시설 등으로 보내면, 8세 미만은 미아 그 이상은 가출인으로 등록되어 경찰은 수사를 할 의무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희영이를 찾아다니며 관련 법이 없으면 찾을 수가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많은 아이가 실종되고 있지만 수사하지 않으면 부모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와 실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안이 있어야 실종 아동 한 명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 같아 다른 실종 가족들과 힘을 모아 각자 자리에서 입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고 덧붙였다.

실종아동 가족들과 서 대표의 노력이 만들어낸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2005년 제정, 이하 실종아동법)’의 효과는 컸다.

“실종아동등의 발생을 예방하고 조속한 발견과 복귀 및 복귀 이후의 사회적응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실종아동등과 가정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은 실종아동에 대한 수사는 물론, 유전자 검사 실시 등을 제도화했다. 법 제정 이후 장기실종아동에 대한 수치는 대폭 줄어들었다.

인식 변화도 있었다. 과거 실종아동에 대한 언론보도는 ‘부모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위기였으나, 법 개정 이후로는 ‘잃어버린’ 개념이 아닌 ‘사라졌다’는 의미에 중점을 두게 됐다.

서 대표는 “당시 미아(迷兒)는 부모 부주의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개념으로 사용됐고 실제 당시 언론에서 부모에게 책임을 묻거나, 부모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동이 실종됐다면 경찰이나 파출소에서 부모를 찾아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라면서도 “법 제정 이후 미아라는 표현 대신 ‘실종 아동’을 쓰게 됐다. 그 시절에는 시설이 해외입양을 암암리에 보내던 시기였다. 범죄 연루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부모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법의 허점이 있었다. 지난 2007년 홍익대 여대생 실종·사망 사건 당시 실종된 A양(만 18세)이 실종된 뒤 18개월만에 변사체로 발견됐으나, 경찰은 관련 데이터베이스 부족 등으로 유족을 찾을 수 없었다. A양은 실종 뒤 가족들이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병원에서 신원이 확인돼 가족에게 인계됐다.


서 대표는 이와 관련해 “홍대에서 만 18세 청소년이 실종 직후 변사로 발견된 이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사망한 아이는 14세 이상이기 때문에 ‘아동’이 아니었고 19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주민등록이 된 성인도 아니었다. 공중에 떠버린 것”이라면서 “당시 14세에서 18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 실종돼 사체로 발견되어도 정보가 없어 가족이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 대표와 실종가족들은 다시 국회를 찾아 법률 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고,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실종아동의 범위는 실종 당시 18세 미만인 아동으로 확대된다. 

서 대표는 “이유없이 실종됐고 시체까지 찾을 수 없을 때 범죄에 연루된 게 아닐까하고 의심을 한다. 장기실종은 거의 범죄와 연관돼 있다. 이는 어린아이나 청소년 성인 모두 마찬가지”라면서 “성인 실종의 경우에는 성인은 실종과 범죄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수사요청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로 서 대표는 현재 실종아동 관련 법안의 외연 확대에 집중한다. 그는 “현행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치 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찰의 위치추적과 수색수사가 가능한 대상자는 18세 미만과 지적장애인, 치매환자 등 특정인에 국한돼 있다. 성인은 실종과 범죄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수사요청이 어렵다. 이 대상에 성인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는 실종법 자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실종자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가출인, 가출인의 경우 7년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다. 이 법이 지금 실종자에게 적용된다”면서 “공소시효가 지나면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범죄 사실에 연루된 심증은 있지만 정확한 물증도 없어 이 7년이 지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영이를 잃어버리고 10년 동안 문을 잠가본 적이 없다. 늘 대문을 열어뒀다. 특히 밤이 되면 노이로제 걸릴 만큼 외부 소리에 민감해 진다. 개가 조금이라도 짖으면 혹시나 해 나가보거나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을 본다거나 한다. 조그만 소리도 희망이고, 그 희망이 절망이 되고 고통이 되는 생활을 했다. 제정신이면 오히려 이상하다. 모든 실종부모들의 삶은 이렇게 망가진다. 국가가 법을 좀 더 세밀하게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더욱 국가가 실종 아동들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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