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전 세계 오대양 바다를 앞마당처럼 누비며 사는 바다 최강의 포식자로서 마치 육지에서 사자나 호랑이 혹은 코끼리에 비견되는 동물이야. 그런데 감히 너희 인간들은 그런 바다의 왕을 좁은 수조에 가두고 심지어 알량한 생선쪼가리로 재주넘기나 시키며, 그걸 보고 즐기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생각이라도 해보았니? 

[제229호 뉴스엔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너희 인간들이 무척 좋아하는 책 알지? 바로 우리 범고래와 범고래 조련사 이야기야. 물론 우린 인간 다음이라 할 만큼 영리한 동물이라 우리와 열심히 우정을 나누려 한다면, 우리도 그 정성에 탄복해서 너희가 원하는 대로 동작을 취해 줄 수도 있어. 그런데 너희들이 그 멋드러진 이야기가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모독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너희들은 혹시 알고 있니? 

우린 전 세계 오대양 바다를 앞마당처럼 누비며 사는 바다 최강의 포식자로서 마치 육지에서 사자나 호랑이 혹은 코끼리에 비견되는 동물이야. 그런데 감히 너희 인간들은 그런 바다의 왕을 좁은 수조에 가두고 심지어 서커스단의 원숭이마냥 알량한 생선쪼가리로 재주넘기나 시키며, 그걸 보고 즐기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생각이라도 해보았니? 

혹시 세상 모든 고래들의 수족관 쇼를 반대하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한 범고래 ‘틸리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틸리쿰(원주민어로 친구란 의미)은 두 살 때, 사람의 폭약을 이용한 포경 사냥으로 어미를 잃고 미국 최대의 수족관인 ‘씨월드’에 팔려왔어.

거기서 그는 갖은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조련을 받아 하루 8차례 강제 공연을 해야 했고, 나중엔 공연용의 범고래 새끼를 얻기 위해 씨를 공급하는 불행하게 갇힌 고래로 일생을 살아야만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어미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와 조련 중 쌓인 스트레스로 때문인지 잘 모르지만, 16년을 같이 식구처럼 돌봐준 조련사를 해치고 그 후에도 추가로 2명의 조련사 죽음과도 관련된 사건을 일으켰어.

그 후 36년의 비교적 짧은 생(원래 50~60년을 삶)을 폐렴으로 마감했고, 그의 불행한 삶의 이야기가 영화 ‘블랙 피쉬’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 사실 자기를 인식하는 자아가 있는 우리 범고래에게 수족관의 쇼 동물로 살라고 하면 틸리쿰처럼 반항아로 변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현상일 거야. 
 

물 속 최강 포식자를 수조에 가둬놓다니


자자! 무서워하지 말고 가까이 와서 우리 이빨 한 번 들여다볼래. 마치 사자의 송곳니같이 뾰족하게 생긴 창 같은 이빨들이 위아래로 촘촘히 박혀있지! 우린 그런 이빨로 물개나 물범, 상어 그리고 심지어 우리보다 큰 고래까지도 끝없이 추격하고 사냥하며 사는 진정한 바다의 킬러(킬러고래)들이거든.

그런데 우리를 그 좁고 밋밋한 수영장에 가두고 관중들 앞에서 재주 넘기나 하는 한낱 구경거리 초라한 동물로 전락시켜 버리고는 우리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징글징글한 인간들의 오만함이지. 


우리를 비롯한 세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고래들은 대개가 영리하며 그래서 또 아주 예민한 동물들이기도 해. 우리가 사는 바다에 오염이 되거나 조금만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도 자신도 모르게 그걸 피한다고 ‘스트랜딩(stranding)’이라고 부르는 뭍으로 올라와 다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자살’같은 짓을 해버리는 거야. 


우리 큰 고래들은 워낙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바닷물이 몸 깊이까지 들어오지 않는 한은 다시는 헤엄쳐 돌아갈 수 없고 육지에 오래 있으면 폐가 우리의 엄청난 몸무게에 눌려서 얼마 못가서 그대로 죽어 버리는 거지.

몇몇 착한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나 미미하고 그나마 대부분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곤 하지.

너희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 고래들은 때론 아예 바다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숨 쉬러 부상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죽는 질식사 방법의 자살을 택하기도 한단다. 


현재 우리의 터전인 바다의 오염은 정말 심각할 지경이야. 온갖 인간 세상의 오물과 쓰레기들을 바다가 넓고 티가 안 난다고 매일 마구마구 쏟아 버리고 심지어 도시 사람들이 싸놓은  분변더미를 커다란 배에 실어다가 혹은 육지에서 기다란 관으로 연결해서 먼 바다에 지속적으로 투척하기도 하지. 


그래도 인구가 적고 조금씩만 버린다면 큰 바다에선 자연 정화라도 할 수 있겠지만 지속해서 감당하기 힘든 양이 들어온다면 그 버려지는 지역의 바다 생태계가 너무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물위에 쓰레기와 악취, 병균들이 둥둥 떠다니는 나중에는 사람조차도 접근하기 힘든 냄새나고 더러운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린단다. 


바다가 넓다고는 하지만 바다 역시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흐르고 있지. 물에 버리면 잉크처럼 온통 확산되어 나갈 것 같아도 바다에도 해류라는 물길이 있어 물이 꼭 그 길로만 따라 흐르거든.

그래서 망망대해 같은 바다도 결국 강같이 어느 한 쪽이 오염이 되면 그게 해류를 타고 다니며 한 지점에 계속 쌓여 언젠가는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 만들어져 버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분해되어 나온 플라스틱 같은 걸 먹은 수많은 해양 생물들은 먹이 연쇄상으로 소화 불량과 질병에 걸리고 그물이나 페트병 같은 것에 몸 한쪽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서서히 죽기도 한단다. 

우리를 가두고 눈요기 감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 아예 우리 고래나 수많은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원천인 바다를 지배한답시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는 인간을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는 결코 용서치 않을 거야. 
 

바닷속 초음파로 800m 밖 물체 식별

 

큰 바다를 바라보면 왠지 막막하거나 허전하다 생각되지 않니? 그런 곳에 우리 커다란 범고래 여러 마리가 갑자기 짠하고 물위로 튀어 오른다면 정말 환상적이고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런 즐거운 상상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프리윌리’야. 윌리는 수족관에 갇혀 살던 범고래인데 한 소년이 그를 탈출시켜 넓은 바다로 돌려보내주었고, 윌리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해주고 자기를 잡아가둔 나쁜 인간 포경꾼들에게 화끈한 복수도 한다는 이야기야. 


우린 몸 무늬는 너희들이 정말 좋아하는 팬더 모양 같이 생겼어. 까만 몸에 눈 위쪽과 등의 일부 배 부분이 새하얗고 미끈한 방수복 같은 아름다운 피부를 가지고 있지.

몸무게는 6~10톤, 몸길이 7~10m정도로 중간급 고래에 속하지만, 삼각형의 무자비한 이빨을 무수히 가진 바다의 폭군 백상아리(백상어)도 두세 배 큰 대왕고래마저도 무리로 공격하여 사냥하는 바다의 킬러 혹은 바다의 날강도라고까지 불리지.

바다 속에선 공기 중의 레이더처럼 방향전위(초음파)를 쏘아 800m 떨어진 곳의 물체도 정확히 무엇인지 식별하여, 사냥감들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다가간 우리에게 순식간에 당하게 되는 거지.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녀석들은 혼자서도 잘 살지만 대개 가족들과 함께 모계중심사회를 이루고 무리지어 살며 전 세계 대양을 지칠 줄 모르는 핵잠수함처럼 누비고 다녀. 사냥할 땐 마치 사자들처럼 서로 협력하여 사냥감을 몰아붙이기도 해. 가까운 해안가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방심한 물개나 물범들을 ‘해변돌진’이란 방법으로 해병대처럼 해안으로 기습하여 사냥하는 아슬아슬한 전술도 구사한단다. 


고래 종류는 크게 나누면 수염고래와 이빨고래가 있는데 우린 이빨고래에 속하고 등 앞부분에 있는 하나의 숨구멍에서 한 가닥의 물줄기를 내뿜지.

수염고래는 그 구멍이 두 갈래야. 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배고 16~17개월의 임신 기간 끝에 새끼를 낳아 1년간 물속에서 데리고 다니며 젖을 먹여. 우린 하루에 200kg 이상의 육식성 먹이를 먹는데 사냥감은 주로 물고기나 오징어, 물개나 물범, 심지어 펭귄 등 매우 다양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매일의 사냥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은 워낙 위험한 동물임을 선행 학습과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미리 알기에 거의 공격하지 않고 피해 다니지.

우린 사람들을 적대시하기보단 오히려 진정 평화로운 공존과 우정을 나눌 수 있길 바라는 평화의 제스처를 돌고래들처럼 늘 보내고 있어. 그런 우리를 조련용으로 역이용하지 말고 진심어린 신뢰와 감동으로 받아줄 순 없겠니? 마치 ‘프리윌리’의 소년과 범고래의 우정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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