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 국내 영화 관계자나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해외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이 지난 11일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제 228호 뉴스엔뷰] 김기덕 감독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미투 사건 논란 후 해외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이 최근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입국한 김기덕 감독은 이달 5일부터 연락이 두절, 지인들이 수색에 나서 코로나19로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기덕 필름 관계자는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사망한 게 맞다"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후 2일 만에 사망한 걸로 알고 있다. 가족들도 몰랐던 소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역시 "11일 새벽 우리 국민 50대 남성 1명이 코로나19로 병원 진료 중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주 라트비아대사관은 우리 국민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파악했다"며 "국내 유족을 접촉해 현지 조치 진행 사항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 거주중인 김기덕 감독의 유족은 코로나 19로 국가간 이동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라트비아 현지에서 장례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화장을 진행한 후, 국내로 유골이 송환될 예정이다. 

[뉴스엔뷰]지난 2018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 국내 영화 관계자나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해외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이 지난 11일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뉴스엔뷰]지난 2018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 국내 영화 관계자나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해외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이 지난 11일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국내 유일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국내 영화계는 침묵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 2017년 영화 촬영 중 여배우를 폭행하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한 그는 배우 조재현과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내 영화계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한 영화 관계자는  <뉴스엔뷰>와의 통화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적 작품성을 별개로 그가 행한 행위들의 실체는 범죄다. 영화계가 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애도하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개인적으로도 그의 죽음이 슬프지만, 행한 행동 자체는 아직까지 용서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했다가 다시 비판받고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공식적인 사과도 없이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자신의 일을 이어나가려고 했다"면서 "죽음과 별개로 그것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김기덕 감독은 사건 이후 작품세계까지 비판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는 폭력, 여성혐오, 왜곡된 윤리관이란 말이 꼬리표 처럼 붙었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소유욕을 보여준 <나쁜남자>, 간첩 잡는 공을 세우겠다는 삐뚤어진 욕망을 드러내며 광기에 시달리는 군인의 이야기를 다룬 <해안선>,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사랑하며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스토킹과 폭력, 납치를 저리는 남자의 이야기 <빈 집>, 사채업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엄마라고 속인 뒤 접근, 그의 앞에서 극단적 선택하는 내용을 담은 <피에타>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논란이 되면서도 작품성 면에서는 인정을 받아 칸(2011년 아리랑, 주목할만한 시선상), 베니스(2012년 피에타,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 베를린(2004년 사마리아,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했지만 미투 사건 이후, 그의 영화는 '김기덕 사건'과 '오버랩' 되며 또 다른 비판 거리가 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문제를 과거에서 찾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과 친분이 있는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기덕 감독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다"면서 "영화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감독들 처럼 정식 교육 과정을 거친 인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김 감독이 영화를 접한 것은 30세가 넘어서였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수료원등을 통해 시나리오를 내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영화계 인사들에 대해 불편함이 존재했다. 그리고 김 감독은 이를 불편해했다"면서 "더욱이 이상한 강박관념과 자격지심 등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심리적인 요인이 과거 불미스러운 사건의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 감독은 구로공단, 청계천 일대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다, 30세 돌연 프랑스 파리로 떠나 그곳에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우고 노숙하며 생활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우연히 영화를 접한 김기덕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을 수료,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영화감독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김기덕 감독은 학력과 출신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을 이끌던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은 미투 사건과 비판 속에서 한국을 떠나 라트비아에 정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인 유럽에서 영주권을 획득해 작품활동을 이어가려던 김기덕 감독은 결국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작품이 훗날 관객이나 영화계에서 어떻게 평가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영화계 관계자들은 "김기덕에 대한 회고작 등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바라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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