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바야시와 마두라 섬 사이의 마두라 해협을 연결했다고 하여 명명된 ‘수라마두 교’는 중국의 자본으로 2003년 착공해서 2009년 완공되었으며 길이는 5438m정도 된다.

[제 226호 뉴스엔뷰] 여러 인도네시아 섬을 조사해 오고 있지만, 육지와 연륙이 된 섬은 처음이다. 마두라 섬(Pulau Madura)은 인도네시아 자와 섬 동북부에 있는 큰 섬이다. 면적은 5,025 km²,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3,720,000명으로 인도네시아 수많은 섬 중에서도 인구가 많은 큰 섬에 속한다. 이 섬은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수라바야 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건설된 연륙교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수라바야시와 마두라 섬 사이의 마두라 해협을 연결했다고 하여 명명된 ‘수라마두 교’는 중국의 자본으로 2003년 착공해서 2009년 완공되었으며 길이는 5438m정도 된다. 마두라 섬의 민족은 대부분 마두라족으로 구성되었다. 역사적으로 자바부족의 식민지였기만, 독립심이 매우 강하고 생활력이 강해서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분포하여 생활한다. 마두라족 한사람이 어딘가 이주해서 살게 되면, 이후에 차츰 차츰 마두라족이 늘어나 30~40년쯤 지나면 마두라족이 그 지역을 점유하게 된다고 한다.

수라바야시 어촌마을에서 서 바라본 수라마두 브릿지
수라바야시 어촌마을에서 서 바라본 수라마두 브릿지

인도네시아는 크게 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레서 순다 등으로 구분되고, 지질지형에 따라 토양과 식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생물다양성도 달라진다. 토양비옥도가 풍부한 자바에 비하여 석회암지역으로 된 마두라섬은 환경이 척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DNA가 마두라족에게 남겨졌다고 본다.

마두라섬은 수라바야와 다리로 연결되어 상당한 섬 인구가 자바로 이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인구가 줄지 않은 것은 조혼, 다산을 하는 부족의 전통풍습 때문이다. 보통 14~17세에 결혼, 4~5명의 아이를 낳고 키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여기 주민들 이야기로는, 다리가 연결되어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마두라족의 독특하고 강인한 정체성은 점차 변할 것이라 생각된다. 마두라족의 칼도 자바섬과 다르게 매우 독특하다.

마두라섬의 주요 산업은 어업과 염업, 그리고 옥수수 생산 등 농작물이다. 염전은 건기(6~9월)에 소금을 생산하고, 나머지는 물은 대어서 새우양식장으로 이용한다. 농업은 주로 밭농사가 많은데, 옛날부터 마두라섬 토양이 척박하여 옥수수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기엔 옥수수, 건기엔 담배를 심어서 소득을 올린다. 계절을 잘 이용하여 전통농어업을 계승하는 마두라섬 주민들의 지혜이다.

마두라족의 칼은 자바섬과 다르게 매우 독특하다. 마치 낫처럼 생겼는데, 풀베기도 쉽고, 또 전시에 적의 머리를 자르기도 쉽다고 한다. 염전 주변에는 망그로브 숲이 잘 발달하여 그곳에 서식하는 게를 잡아서 가공, 자바로 보내는 곳이 많다. 이처럼 소금, 어업을 이용한 가공식품에도 마두라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마두라섬의 주요 도시인 방칼란(Bangkalan)은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점유되면서 중국 상인도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섬에는 당시의 네덜란드 건축물, 중국식 건축물 등이 즐비하게 남아 있는데, 관리 부재로 황폐화 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가치가 있는 섬 도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과거 번성했던 무역항이어서 그런지 당시 건축도 많고, 다양한 종교시설물도 남아 있다. 중국 마조(媽祖)를 모시는 사당, 가톨릭 교회, 이슬람 모스크, 불교 사찰 등 다양하다. 이곳은 마치 “melting pot of diverse cultures(다양한 문화의 용광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멸치를 말리는 마두라 어촌마을
멸치를 말리는 마두라 어촌마을

필자는 마두라 섬 해안가 인근 어촌마을을 방문하여, 어민들이 방금 잡아온 어류들을 조사하고, 연륙교 영향 등에 대하여 주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침 정박되어 있는 어선들을 보니 배 그림들이 매우 화려했는데, 대만에서 본 듯한 느낌의 페인팅이다. 멋진 그림은 어부의 자랑이라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선박은 단조로운데 비하여 인도네시아 어선은 정말 화려하다. 섬 북부 해안가 주변에 많은 석회암 채석장이 있었고, 아직도 채석은 진행되고 있다. 일부 채광지역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어서 볼거리가 된다. 간석지와 맹그로브 군락이 발달한 남쪽해안과 다르게 석회암의 영향으로 화이트 비치가 아름다운 북쪽 해안은 아직 덜 개발되었지만, 조만간 대규모 관광지로 변할 것 같다.

연륙교에 대하여 주민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마두라섬의 경제, 문화가 변하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태생적으로 생활력이 강한 마두라족의 문화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다리건설로 인해서 부족이 더욱 단결하지 않겠냐는 것이 일부 결과이다. 척박한 지질 환경이라 옥수수만 먹었다는데, 자바에서 쌀농사를 배워 마두라 섬에도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사례를 봐서 “다리”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문화정체적 문제는 극복하리라 본다.

연륙교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인터뷰 중 한 가지 사례만 소개하고자 한다. 다리 건설 전에는 부두에서 짐꾼 일로 하루 30,000루피아(한국돈 3,000원 정도)를 받았지만, 다리가 생기면서 가게를 열어 잘 팔리는 시즌에는 하루 200,000루피아(한국돈 2만원)를 번다고 한다. 지금은 다리 주변에 많은 섬 주민들이 불법가게를 차려서 관광 상품을 팔고 있다. 조만간 정비가 들어가겠지만, 다리 건설로 인해서 마두라 섬사람들에겐 당분간 엄청난 수익의 기회를 준 것이다. 석유, 목재 등 엄청난 자원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공직자의 비리와 부패로 부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다리 건설을 계기로 마두라와 수라바야 해변에는 엄청난 신도시, 리조트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인근 원래 어촌 주민의 생활과 너무 큰 차이가 나서 글로 표현이 안 될 정도이다.

어디든 개발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마련이고, 늘 원주민은 그 그림자 밑에 있게 된다. 인도네시아 연륙된 섬 ‘마두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지, 자바인들조차 두려워하는 마두라 족의 강인하고, 독특한 생활문화와 자연자원 이용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변형될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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